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계일주 Oct 26. 2023

마음이 가난해서일까?

일상 10. 숨 막히는 답장


"엄마, 나 고민이 있어."


"무슨 고민?"


"친구들이 생일이라고 카톡으로 생일 축하 쿠폰 선물을 보내줬어."


"응. 좋겠다. 그럼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 왜?"


"그게 내가 생일 선물을 주지 않은 친구들도 카톡으로 선물 쿠폰을 보낸 거야. 앞으로 생일인 친구는 축하해 주면 되는데 이미 생일이 지나간 친구들도 있어. 나는 주지도 못했는데 받으니까 마음이 불편하고 미안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렇다고 그 친구는 생일이 지났는데 내가 고맙다고 하면서 나도 생일 축하 쿠폰을 주는 건 이상하잖아. 그게 고민이야."






나도 봄이처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다. 

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마음이 가난해서일까?



남편이 텃밭에서 캐 온 고구마가 생각보다 많았다. 주변에 사는 이웃과 서로의 직장동료에게도 조금씩 나눠주었다. 마트에서 파는 상품처럼 매끈하고 크지는 않지만 고구마가 달고 맛있었다. 상대에게 뭘 바라고 베푼 것은 아니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마음이었다.



겨울이가 입던 작아진 옷을 나눔 하거나 책을 나눔 할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에는 이제 쓸모가 없어진 물건이지만 상대에게는 유용하게 쓰일 수 있을지도 모르니 혹시 필요한지 물어보고 나눔 한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었을 뿐인데 받는 사람이 고마워하고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내 마음이 부자가 된다는 걸 안다.



문제는 내가 받는 입장이 되면 달라진다는 데 있다. 안절부절못한다. 어떤 걸로 보답해야 할지 고민부터 든다. 윗집에서 직접 키운 옥수수를 친정 부모님이 많이 보내주셨다며 한 아름 갖다주셨다. 고마운 마음보다 걱정부터 앞섰다. 다음날 마트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감사 인사를 하고 왔다. 한 번은 지인이 홍시를 갖다 주었는데 고맙다는 마음을 전하고도 받는 마음이 불편해져서 다음날 빵을 사서 답례를 했다.



내가 베풀 때는 상대방이 맛있게 먹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반대로 받는 입장일 때는 상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불편해져 쏜살같이 답례를 하곤 한다. 지금 이 글을 쓰다 보니 어쩌면 상대에게 숨 막히는 답장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의 호의를 자연스럽게 받지 못하는 것일까. 마음이 가난해서일까? 대가 없는 사랑을 많이 못 받았기 때문일까. 봄이도 나를 보며 자랐으니 누군가에게 뭘 받으면 다시 돌려줘야 할 것 같이 걱정이 들었나 보다. 나도 종종 고민한다. 지인에게 뜻하지 않은 카톡 생일 쿠폰을 받았을 때 고마운 마음도 들지만 덩달아 나는 뭘 보내줘야 할까라고 봄이처럼 말이다.



봄이 얘기를 들으며 다른 사람의 호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얼른 되갚으려는 내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봄이야. 음.. 엄마 생각에는 친구들이 보내준 생일 축하 선물이 고맙다고 네 마음을 우선 충분히 전하고. 지금 당장 답례를 하는 것보다 그 친구 생일은 지났으니 나중에 특별한 날에 선물을 주면 좋을 거 같아. 예를 들면, 곧 빼빼로데이도 있고 수능도 다가오고 하니. 어때?"



2023.10.19 꿈꾸는 일기







매거진의 이전글 기록의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