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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계일주 Jan 18. 2024

인생은 순간이다

독서 15. 물병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인생은 순간이다 / 김성근 지음



82세 현역 감독 김성근 에세이

삶이라는 타석에서 평생 지켜온 철학


'어차피 안돼'에서 '혹시'로, '혹시'에서 '반드시'로

지은이 김성근 / 펴낸곳 다산북스 / 초판 1쇄 인쇄 2023.11.18 / 초판 1쇄 발행 2023.12. 1



저자 소개 : 김성근


80대의 나이에도 야구장에 꼿꼿하게 서서 선수들을 지도하는 대한민국 최장수 야구 감독. 태평양돌핀스, 쌍방울레이더스 등 꼴찌를 면하지 못해 이른바 '오합지졸'로 불리던 팀의 감독을 맡아 가을 야구까지 진출하며 야구계의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신생팀에 가까웠던 SK와이번스의 사령탑을 맡아 감독 1년 차, 단숨에 우승을 거머쥐었고 감독 재임 기간 내내 5번의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이라는 놀라운 성적을 내며 'SK와이번스 왕조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 최초의 독립 구단인 고양원더스의 감독을 맡고, 일본 지바롯데마린즈와 후쿠오카소프트뱅크호크스에서 코치를 하는 등 '야구'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하며 평생 야구와 함께 살아왔다. 현재는 JTBC <최강야구>에서 최강몬스터즈 감독을 맡고 있다.







본문 중에서




나는 '어차피' 속에서도 '혹시'라는 가능성을  무궁무진하게 상상하고 그것들을 '반드시'로 만들었다. 81p





이긴 것은 지나간 것, 대비해야 하는 것은 내일의 것.

실패에 붙잡혀 있든, 성공에 도취되어 있든 과거에 매여 있는 것만큼 미련한 짓이 또 없다. 87p




힌트란 건 세상 아무 데나 가도 있다. 그 힌트들을 어떻게 붙잡고 느껴서 자기 길을 만들어가느냐의 차이다. 힌트를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과 그걸 보고 순간순간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순간을 잡을 수 있는 집중력이 사람의 미래를 결정한다. 166p




거북이는 위기를 만나면 가만히 서서 고민한다. 머리도, 손도, 발도, 몸 안으로 깊숙이 넣고 멈춰 선 채 자기 안에서 답을 찾는다. 고민하면서 자신과 싸우고, 세상과 싸운다. 거북이가 길을 걷다 멈춰 기다리는 것은 무조건 참기 위함이 아니라,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함이다. 190p




거북이는 몸속으로 머리도 팔도 다리도 숨긴 채 때를 기다렸다가 자기 갈 곳을 찾아간다. 끝끝내 살 길을 찾아낸다. 그러고선 한 발 한 발 그저 앞으로만 묵묵히 걸어간다. 걸음을 내딛는 데 무엇이 필요한지를 배운다. 그래서 거북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의도, 인내, 아이디어 그 모든 것이 남는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프로세스를 찾아가는 것이다. 190p





물이 물병 바깥으로 나오면 물은 그대로 흩어져 버린다. 누구든 자기라는 물병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으면 된다. 비상식이 되든 뭐가 되든, 그 물병 속에서 물을 살려놓는 게 내 역할이다. 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그중엔 세상이 원하는 대로 타협하고 맞추는 사람은 없다. 자기 색깔이라고 하는 건 각자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그 뜻을 위해 타협이란 없어야 한다. 자꾸 자기 뜻을 꺾다 보면 나중에 떠날 때가 되어서는 남는 게 한스러움밖에 없을 것이다. 214p






"인생을 살아보니, 기회란 흐름 속에 앉아 있다 보면 언젠가 오는 것이었다. 내 인생에는 그런 기회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아니, 기회라기보다는 마치 순리처럼 내게 찾아온 일들이었다. 그러니 매일의 순간순간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되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내일이 있다는 것을 핑곗거리로 삼지 않았다. 내일이 있으니 오늘은 어떻게 되든 괜찮다는 마음가짐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내일이 와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


  - 인생은 순간이다. 김성근 -








책을 읽고 나서




김성근 감독님을 처음 뵌 건 'JTBC 최강야구'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 정도로 야구에 문외한이다. 우연히 티브이 예능을 봤는데, 마침 원성준 선수가 운동장을 계속해서 달리고 있고 감독님은 그 선수에게 신경 쓰지 않으시는 듯 보였지만 쭈욱 지켜보셨다. 별말씀은 없으셨지만 나중에 그 선수 몫의 햄버거 세트를 따로 남겨서 전달해 주었다. 한국의 무뚝뚝한 아버지 같았다. 겉으로는 엄하고 무섭지만 따뜻한 속내를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인생은 순간이다' 책을 읽으며 두 번째 뵙는다. 티브이 화면에서 뵈었던 김성근 감독님의 표정과 입말 그대로였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시는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는데 이 책 곳곳에서 어렴풋이 감독님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현재까지 야구를 하면서 살아온 삶의 철학이 담겨있다.




요즘은 교과서와 참고서가 없는 세상이라 각자 자기가 가진 재능을 찾아 꽃 피워야 하는데 길이 보이지 않으면 쉽게 걸음을 멈춰버리는 젊은이들이나 세상살이를 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책을 읽는 내내 김성근 감독님이 던진 공이 직구로 날아온다.




나처럼 야구를 모르는 사람도 밑줄을 계속 그어야 할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야구를 인생으로 비유한다.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태도와 마음가짐이었다. 내 연약한 의지를 다시 한번 다져본다. 나처럼 잠시 멈춰 서있거나 성장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김성근 감독님은 1942년 일본 교토에서 태어났다. 1959년에 재일교포 야구단에 선발되면서 한국 땅을 밟아보고, 1964년 스물두 살에 한국행 비행기를 탄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 가서 야구를 한다는 건 가족과 영영 헤어지는 큰 결정이었다고 한다. 고작 스물 남짓의 야구를 하는 학생이 어떻게 인생의 중대한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감독님은 어머님 덕분이었다고 한다. 어머님은 일본에서 열차 사고로 남편을 여의고 홀로 7남매를 키우셨다. 오늘 살아남지 못하면 내일을 생각할 수 없는 가난 속에서 사력을 다하며 살았고, 그런 성정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 같다고 하셨다. 뭐든지 자기 몫을 스스로 하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큰일도 큰일처럼 여기지 않으신 것 같다.




60년 동안 야구를 하면서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논어, 맹자 같은 고전, 리더들의 일대기, 처세술, 심리학, 경제서 등을 찾아 읽으셨고 배우는 데는 나이도 없고 가릴 것도 없다고 하신다. 공부는 영원해야 하는 것이라며. 뭐든지 열중해서 베스트를 하신다. 또, 세상에서 제일 나쁜 것이 만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부분에서 멈칫했는데 이런 신념 하나하나가 결국 지금의 자리에 있게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시끄럽다고 해서 거기에 맞춰 살지 말라는 말씀에 숨이 쉬어졌다. 조금만 문밖을 나서도, 작은 핸드폰 세상 속에서도, 나를 몰아세우고 밀어붙이는 다그침이 들려온다. 내 의견에 자신이 없고 중심을 잡고 있지 못함에서 오는 것이다.




"물병이 하나 있다고 해보자. 병 속에 있는 물이 나이고 바깥이 세상이다. 바깥이 시끄럽다고 해서 내가 밖으로 나가면 물은 그대로 흘러 사라져 버린다. '나'라는 인간이 온데간데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건, 밖에서 뭐라고 떠들건 나는 그 물병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209p




내가 나를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바깥을 보느라 물이 줄줄 새나가고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쉽게 타협하고 안주했다. 어린 시절에도 남이 날 어떻게 볼까 급급해했고, 결혼 후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도 바깥의 이야기에 이리저리 흔들린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 이야기에 끌려다니면 책임은 결국 내가 져야 함을,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그러니 소신이 있어야 하고, 소신을 세우려면 배우고 공부해야 함을, 세상이 비난한다고 해서 무작정 바깥으로 나와 거기에 따르면 이도 저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린다는 걸 깨닫는다.







학교를 졸업한 지 20년 이상 훌쩍 지났다. 내게 자기의 이득을 위해 꾀기 위함이 아닌 진심 섞인 조언을 해줄 진정한 스승을 못 만난 지 오래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무언가를 공부하거나 배우러 다니지 않으면 멘토가 되어줄 분이 없는데 김성근 감독님의 책을 통해 굳건한 신념을 배운다.




끝까지 해내는 근성. 왜 그럴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 속에서도 야구를 할 때가 즐겁다는 비관적인 낙천주의. 세상의 오해와 비난 속에서도 리더로서 중심을 잡는 책임감. 어머님께 물려받은, 애정이 있어야 가능한 비정한 리더십. 기회란 흐름 속에 앉아 있다 보면 오는 것이기에,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하다 보면 내일이 와 있는 삶을 살고자 했다는 다 아는 이야기 같지만 내심 토끼처럼 꾀를 부려 지름길로 가보려고 했던 내 비좁은 마음들이 들통난다. 실패한 근거를 찾으라고 하셨다. 거기서 반드시 '다음'이 생긴다고.




열중, 혹독, 비정, 비상식, 승부수, 절실, 반드시, 전쟁터, 타협, 절망, 인내, 희망, 준비, 비관, 낙천, 원통, 고민, 도전, 한계, 집념, 패배, 승리, 결정, 책임, 오늘, 내일, 기회, 용기, 정답, 공부, 배움, 야구, 행운아, 그리고 베스트. 감독님의 흐름 속에 있는 삶의 키워드를 과연 나는 얼마만큼이나 지켜내면서 살아왔고, 앞으로 얼마만큼이나 내 삶의 흐름으로 가져와 지켜낼 수 있을까.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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