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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계일주 Feb 21. 2024

이방인

독서 16. 누구나 서로에게 이방인이 아닐까

제목 이방인 /저자 알베르 카뮈 / 출판 민음사 / 발매 2019.09.02 / 세계문학전집 266





책 정보


지은이 : 알베르 카뮈

옮긴이 : 김화영(2019년 9월 새 번역)

펴낸곳 : 민음사 / 세계문학전집 266

1판 1쇄 펴냄 - 2011년 3월 25일

1판 40쇄 펴냄 -2019년 5월 24일

2판 1쇄 펴냄 -2019년 9월 2일

2판 15쇄 펴냄 -2022년 12월 14일







저자 소개 : 알베르 카뮈


1913년 11월 7일 알제리의 몽도비에서 태어났다. 포도 농장 노동자였던 아버지가 전쟁에 징집되어 목숨을 잃은 뒤, 가정부로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아래에서 가난하게 자란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선생님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재능을 키우다,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대학에 갈 기회를 얻는다. 알제 대학교 철학과 재학 시절, 생계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도 창작의 세계에 눈을 떠 가는데, 무엇보다 이 시기에 장 그르니에를 만나 그를 사상적 스승으로 여긴다. 1934년 장 그르니에의 권유로 공산당에도 가입하지만 내면적인 갈등을 겪다 탈퇴한다. 교수가 되려고 했으나 건강 문제로 교수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고, 진보 일간지에서 신문기자 일을 한다. 1942년에 <이방인>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으며, 에세이 <시지프 신화>, 희곡 <칼리굴라>등을 발표하며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한다. 1947년에는 칠 년여를 매달린 끝에 탈고한 <페스트>를 출간하는데, 이 작품은 즉각적인 선풍을 일으키고 카뮈는 비평가상을 수상한다. 마흔네 살의 젊은 나이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지만, 그로부터 삼 년 후인 1960년 1월 4일 미셸 갈리마르와 함께 파리로 떠나다가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옮긴이 : 김화영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대학교에서 알베르 카뮈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문학 평론가, 불문학 번역가로 활동하며 팔봉 비평상, 인촌상을 받았고, 1999년 최고의 불문학 번역가로 선정되었다. 







차례


2019년  새 번역에 부치는 말 -김화영 7

1부  11

2부  79

[이방인]에 대한 편지 - 알베르 카뮈 149

미국판 서문 - 알베르 카뮈 153

[이방인]을 다시 읽는다 - 로제 키요 157

작품 해설 179

작가 연보 230







한 줄 평 : 누구나 서로에게 이방인이 아닐까.


제목도, 저자도, 첫 문장도, 이미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이제야 읽었다. 책은 잊힌 책과 남은 책.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기억에 남은 책으로 남겨두고 싶어서 기록해 보기로 한다. 이방인, 낯선 곳에서 온 사람, 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읽었다.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접하기도 했고, 이방인이라는 단어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컸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니 같은 사회나 울타리 안에서도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이방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은 흥미롭게 읽었는데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찾는 건 무척이나 어려웠다. 파도 파도 파헤칠 게 많은 소설. 







1부 : 엄마의 죽음에서 살인까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 양로원으로부터 전보를 한 통 받았다. '모친 사망, 명일 장례식. 근조(謹弔).' 그것만으로는 아무런 뜻이 없다. 어쩌면 어제였는지도 모르겠다. 13p. 뫼르소



엄마의 죽음을. 아니, 어쩌면, 어제일지도 모른다는 첫 문장부터 서글펐다.  양로원의 전보 한 통으로 이 이야기가 시작된다. 3년 전, 어머니를 부양할 처지가 안 되는 뫼르소는 양로원에 어머니를 모셨었다. 어머니의 사망 전보를 듣고 양로원에 찾아간다. 


주인공 이름은 뫼르소성별 남자. 회사에 다님. 어머니를 부양할 능력이 없어 양로원에 모심. 1인칭 화자이며 주인공인 뫼르소 이야기는 이 책의 첫 문장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처럼 무심하게 이어진다.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사람처럼 비친다. 오열하거나 눈물을 참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의 일인 양. 그러니, 회사를 이틀 빼야 하는 일, 두 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와야 하는 수고가 드는 일이 된다. 장례 치르는 동안 관 속 마지막 엄마의 모습도 보지 않는다. 밀크 커피도 마시고, 담배도 피운다. 엄마의 정확한 나이도 모른다. 장례식 다음날, 바다로 간다. 항구 해수욕장에서 수영을 하다 마리를 만나고, 함께 영화를 보고, 저녁을 먹고, 잠도 잔다. 뫼르소의 일상은 그냥 되는대로 지내듯이 보인다. 지금의 생활에 불만이 없고, 삶이란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별다를 거 없다는 식으로 지낸다. 엄마를 잃은 슬픔이 이 정도의 무딤이라면 그는 이미 허무주의에 빠진 걸까, 아니면 감정이 없는 소시오패스일까. 




나는, 언제나 다름없는 일요일이 또 하루 지나갔고, 이제 엄마의 장례식이 끝났고, 나는 다시 일을 하러 나갈 것이고, 그러니 결국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37p. 뫼르소






뫼르소와 같은 층에 사는 이웃, 살라마노 영감은 개를 키운다. 어느 날, 개가 없어진다. 아내가 죽은 뒤에, 그 개가 아주 어릴 때부터 키우기 시작했다. 성미가 나쁜 개였지만 좋은 개였다고 한다. 아내와 살 때 행복하지 못했지만 아내에게 길들여있는 것처럼, 그 개에게도 길들여져 있던 것이다. 피부병에 걸린 개에게 연고도 발라주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 개의 진짜 병은 늙음인데 늙음은 낫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늙고 병든 개를 잃은 살라마노 영감은 슬퍼했다. 마치 가족을 잃어버린 듯이. 양로원에서 지내다가 돌아가신 뫼르소의 엄마가 떠올랐다. 




오늘 밤은 제발 개들이 짖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늘 그게 내 개인 것만 같아서요. 63p. 살라마노 영감







또 다른 같은 층에 사는 이웃 레몽은 창고 감독이라고 말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가 여자들을 등쳐 먹고산다고 한다. 레몽은 뫼르소에게 그의 정부에게 줄 편지 대필을 부탁하고, 뫼르소는 들어준다. 레몽은 그의 정부를 때리고, 정부의 오빠인 아랍인이 화가 나서 찾아와 싸움 끝에 레몽을 칼로 벤다. 며칠 후, 다시 아랍인을 만났을 때 뫼르소는 레몽이 건네준 권총으로 아랍인을 쏜다.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에 다시 네 발을 쏘았다. 총알들은 깊이 박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리는 네 번의 짧은 노크 소리와도 같았다. 78p 뫼르소






같은 층에 사는 세 남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상실이다. 뫼르소는 어머니를 잃었고, 살라마노 영감은 개를 잃어버리고, 레몽은 아랍인 정부와 헤어진다. 뫼르소는 엄마의 죽음으로 달라진 건 없다고 하지만 불쑥불쑥 어떤 상황에서 어머니가 생각난다고 읊조린다. 살라마노 영감은 개를 잃고 찾아보기도 하고, 분노하다가,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슬퍼한다.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레몽은 그녀가 그의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음에 분노를 느끼고 때리면서도, 그녀가 자기에게 다시 돌아와 주길 원하고, 그런 그녀를 다시 걷어차버릴 복수까지 꾀한다. 







2부 : 살인에서 사형 선고까지



뫼르소는 살인죄로 체포되어 여러 번 심문을 받게 된다. 뫼르소는 감정이 어떤지 살펴보는 습관도 없었고, 엄마를 사랑했겠지만 그런 것은 의미가 없고, 정상적인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바랐던 적이 있을 거라 한다. 장례식 날 냉담한 태도를 보인 뫼르소는 심문을 받는 중에도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대답으로 변호가 점점 더 불리해진다. 



그렇게 잠자는 시간, 기억하기, 사건 기사 읽기, 그리고 빛과 어둠의 교차로 시간은 지나갔다. 감옥에 있으면 시간 개념을 잃게 된다는 것을 나도 분명히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얘기가 별로 의미가 없었다. 하루하루의 날들이 얼마나 길면서도 짧을 수 있는지 나는 예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하루는 지내기에는 물론 길지만, 하도 길게 늘어져서 결국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 나고 말았다. 하루하루는 그리하여 제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101p  뫼르소



감옥에 들어온 뫼르소는 바깥에서와 달리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낀다. 처음에는 해방을 상상하며 감옥의 벽이 가깝다 느꼈지만, 몇 달이 지나자 죄수로서의 생각만 하게 되고, 그는 마음속으로 기억들을 끌어내며 시간을 보낸다.






법정에 선 그는 변호사와 판사, 검사, 배심원들 앞에서 사회적으로 파렴치한 이방인이 된다. 그는 아랍인을 죽인 죄보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죄가 더 커졌다. 후회하지 않는 태도와 도덕적 원리를 크게 꼽았다. 검사는 뫼르소의 심리적인 공허가 사회 전체를 삼킬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정신적으로 어머니를 죽인 인간은 아버지를 제 손으로 직접 죽이는 인간과 마찬가지이며, 그러한 행위를 예고하고 정당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검사의 주장에 뫼르소는 있는 것은 있다고, 없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정직하다. 





재판 과정에서 그에게 죄를 묻는 역할을 했던 이들이 오히려 사회적 이방인이 아니었을까. 죄를 묻기 위해서 의도한 대로 추궁하고, 원하는 대답을 얻기 위한 질문을 하고, 이런 성향이라면 충분히 다른 범죄로 이어질 수 있음을 추측하고, 그것을 기정사실로 공론화시키는 일들이 아무렇지 않은 이들 말이다. 또 그 과정을 관습처럼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배심원들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도 포함해서. 보이지 않는 관습의 결속력이 정당하다고 믿는 자체가 오류는 아니었을까. 





엄마의 죽음에서 시작해서 뫼르소의 사형 선고로 끝나는 결말이다. 사제는 뫼르소가 죽기 전에 삶을 회고할 시간을 준다. 뫼르소는 처음으로 마음속 기쁨과 분노를 표출한다. 지금껏 삶과는 상관없던 다른 세계로의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또,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가 없다고 말한다. 죽음의 시간이 가까워져 있는 엄마는 해방을 느꼈을 것이라고. 그 또한 다시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태어나는 것은 축복과 기쁨이고, 죽는 것은 비극과 슬픔이라 단편적으로 생각했는데. 뫼르소는 죽음을 비극만으로 여기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가 말하는 정답을 찾고자 노력했는데 못 찾았다. 어쩌면 인생이란 딱 떨어지는 정답이 없는 것 같기도. 누구나 서로에게 이방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뫼르소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처음으로 나는 엄마를 생각했다. 그토록 죽음이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엄마는 마침내 해방되어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준비가 되었다고 느꼈던 것 같다. 아무도, 아무도 엄마의 죽음을 슬퍼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모든 것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147p. 뫼르소






그가 생각할 때 우리는 모두가 다 사형수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오늘 당장 죽지 않는다 하더라도 당신은 장차 언젠가는 죽어요. 그때 가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될 거예요. 그 무서운 시험을 어떻게 감당할 건가요? 1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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