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 요즘 생각처럼 유튜브 조회수가 나오지 않고 끊임없이 수익화에 대해, 사업화에 대해 고민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래서 어제는 내 조급함에 치여 아이들 저녁거리 챙겨주는 것조차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잠들기 전까지 내내 짜증을 냈던 것 같다.
원인이 뭘까.
나는 게임을 개뿔도 모르지만 요즘 페이커에 빠졌다. 얌전해 보이는 한 청년이 전 세계를 제패한 것에 대단한 경외심을 느꼈다. 하지만 이런 인물들을 볼 때면 뽕이 차오름과 동시에 묘한 감정이 든다.
난 그때 뭐했지? 난 여기서 지금 뭐하냐?
나 자신이 하찮게 여겨지는 것. 물론 그들이 그렇게 월등한 이유는 9할이 유전자다. 좋은 유전자를 타고났다. 에디슨이었나 99%의 노력과 1%의 영감?
응. 그 1%가 존나 사기야. ^^
페이커도 어릴 때부터 뭐든 배우는 게 빨라서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알아봤다고 한다. 걍 좋은 머리는 타고난 거지.
프로게이머가 되려면 뭐 아카데미 다니면서 특훈 받고 이래야 된다던데? 페이커는 국내 롤게임 1등 먹고 바로 스카웃됨. 그냥 재밌어서 한 일이 알아서 길을 열어줬다.
만약 아빠가 게임하지 말고 그 좋은 머리로 공부하라며 컴퓨터 다 갖다버리고 뚜까팼다면?
공부를 해도 잘 됐겠지만 지금만큼 세계 최정상 자리에 오를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 공부 잘해봤자 의대 가는 건데 그게 연봉 최소 50억 프로게이머랑 비교가 되냐고. 여튼 이게 진짜 희소한 운과 재능이 지금의 그를 만든 거다.
그렇다고 그가 뭐 그냥 진짜 신마냥 다 잘 풀렸냐?
등가교환의 법칙이란 게 있다. 인간은 절대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으며 성공한 만큼의 희생이 반드시 따른다.
학교 자퇴. 오직 게임만 하고 살아서 아직까지 연애 못함. 게임하느라 그 나이대 남자들 다 아는 아이돌도 아예 모름. 애들 청춘을 불태우느라 놀 때 게임만 함. 그냥 게임만 함. 또 게임만 함. 그러다 게임만 함. 하지만 게임만 함. 끝으로 게임만 함.
취미는 독서랜다. 그것도 게임에 도움이 됐다는 걸 보니 뭘 하든 게임으로 다 연결시킬 괴물이다.
그리고 페이커 팬들은 알겠지만 그도 부진했던 침체기가 있었다.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스트레스를 받았을 건데 그걸 이겨내고 최근에도 월즈에서 우승을 했으니 숭배하지 않고 배기냐.
어쨌든 갑자기 페이커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결국 뭔가를 이뤄내는 사람들의 특징은 다 똑같단 거다.
1. 타고난 재능 2. 절대 포기하지 않는 끈기
이거 2개다.
1번은 어떡하냐고? 별 수 있냐. 그냥 타고났다고 믿어라.
1번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 결국 중요한 건 2번이다. 보통 슬럼프를 만나거나 난관에 부딪히면 백이면 백 포기한다. 지금 스트레스를 받으면 도망칠 생각부터 한다.
인간은 다 놀고 싶다. 똑같다. 뇌는 에너지 쓰는 걸 싫어한다.
여기서 포기하고 지면 그냥 세상에 지는 거다. 내가 하찮은 존재라고 인정하는 거다.
넘을 수 없는 산을 만났을 때? 그 산이 얼마나 높은지 고도는 어떤지 이미 넘어간 사람은 있는지 가다가 내가 죽을 확률은 몇 퍼센트일지 분석하고 앉아있지 마라.
그냥 해라. 하기로 했으면 생각 말고 하는 거다. 뇌가 자꾸 하지 말라고 하지? 자꾸 꼬시지? 그럼 뇌를 버려라. 그냥 무뇌로 하는 거다.
자꾸 실패할 땐 이렇게 생각해라.
이건 서사다.
페이커의 서사를 봤잖아. 위기를 넘기지 않은 영웅은 없잖아. 1티어가 되기 위해선 반드시 서사가 필요하다.
그 미친 서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위기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극적인 서사가 만들어진다. 그 끝에는 많은 이들의 경외가 기다릴 것이다.
페이커처럼 전세계 1티어는 못돼도 하다 못해 동네 구멍가게 1티어는 될 수 있잖아?
이게 개인적 부나 명예 같은 성공을 떠나서 인생 모든 것에 적용되는 것 같다.
나는 첫째에 대한 걱정이 많았는데 오늘 유치원 발표회를 다녀오고 나서 깨달았다. 저 작은 아이가 서사를 써나가고 있다는 걸. 정말 놀랍도록 발전해 있었다.
정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넌 특별한 아이라고, 넌 대단한 인물이 될 거라고. 가스라이팅을 퍼부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영어 수업에서도 체육 수업에서도 이전과 다른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
이미 약효는 다 끝난 시간임에도 이런 피드백을 받을 정도로 이렇게 성장하다니.
나는 엄빠에게 "에이 니가?" "공부하면 뭘 얼마나 한다고" "니가 뭐 되겠니"라는 말을 들었던 게 잊히지 않는다.
수없이 좋은 얘기를 해줘도 이런 말 한마디만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말이 참 무섭다. 그 말은 내 머리 위로 유리천장을 만들었고 정말로 난 그 천장에 닿지 않을 정도로만 자랐다. 난 어릴 적에 정말 꿈이 많았는데 그 꿈은 유리천장 위 아득한 하늘로 날아가버렸다.
세상은 어차피 내게 의도적인 좋은 말을 해주지 않는다. 평가만 내릴 뿐이지. 그러니 가장 가까운 부모가, 지금은 내가 너의 우주니까, 나는 그런 말만 해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