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full-time faculty로 첫 출근을 하고 120여 명의 학생들과의 첫 주 수업을 마쳤다. 지난 2주가 순식간에 지나갔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2주가 지나있다. 생각보다 바쁜 일정에 숨 가쁘게 달리느라 글을 쓸 여유가 없었다. 개강 전 1주일을 출근을 하면서 강의계획서도 마무리하고 이캠퍼스를 만들 시간이 있을 줄 알았다. 그 작업을 하기에 1주일은 충분한 시간이란 생각을 했다. 아마 아무 일정 없이 개강준비만을 했다면 충분한 시간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막상 출근을 하니 해야 할 일이 훨씬 많았다.
출근 전날 저녁이 되니 나는 아직 연구실의 열쇠도 받지 못했음을 깨달았고 9시 정도까지 학과장 선생님 연구실로 출근을 하기로 마음먹고 잠들었다. 학과장 선생님은 친절히 연구실까지 안내해 주고 같은 복도에 연구실이 있는 영문과 선생님들에게 소개를 시켜줬다. H라는 선생님은 벌써 5년째 full-time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했고 C 선생님은 1년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다가 올해 full-time으로 전환이 됐다고 한다. 둘 다 나와 나이가 비슷하고 이번 학기에는 가르치는 과목도 같아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그 복도 끝의 연구실에는 한국인 선생님 J가 있었다. 학교의 교수진의 80%가 백인인 학교에서 같은 복도에 한국인이 있다는 게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었다. 그는 이전에 4년제 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 지금은 이곳 전문대에서 5년째 근무 중이라고 하였다. 그에 더불어 인터뷰에서 잠시 인사를 나눈 아시아계 여자 생물학 선생님 A도 우리 복도에 연구실이 있는 게 아닌가!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복도에는 영문과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수학과, 생물학과, 그리고 수화 프로그램 선생님들의 연구실이 자리한 꾀나 다분야 선생님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청각장애인인 B라는 수화 선생님은 20분 동안 급조된 수화문화와 에티켓을 가르쳐주었다. 내가 수화로 아무 말도 못 한다는 사실에 부끄러웠고 당장 집에 가서 유튜브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게 2주 전이다.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강의계획서와 이캠퍼스 작업을 하기 위해 연구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컴퓨터 로그인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옆건물에 위치한 IT 센터를 방문해서 도움을 청했고, 한 30분 만에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IT 센터 직원분은 미시간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거기서 보내고 부모님의 직업상의 이유로 고등학교 때 이 동네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고 한다. 30대 중후반의 남자는 어언 10년은 이 동네에 살았을 것 같은데도 미시간의 고향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해주었다. 온 김에 연구실 전화도 연결을 해주었고 드디어 나는 일을 할 준비가 되었다.
그렇게 이메일을 확인하면서 보니 다음 날은 전 교원 소집회의가 예정되어 있었고 하루를 통째로 날릴 스케줄이었다. 강의계획서와 이캠퍼스 셋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새로운 학교 포털시스템을 사용하는 것은 모든 게 손에 익지 않아 오래 걸렸다.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부터 다른 선생님들의 강의계획서를 찾아보는 것 등등 모든 것이 더디게 느껴졌고 아니나 다를까 아직 강의 계획서의 주된 항목인 학기 계획서는 아직 확정도 못 지은 상태였는데 벌써 5시가 된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첫 출근은 시시하게 끝이 났다.
그다음 날은 학생문화센터에서 단체 조식으로 시작되었다. C 선생님이 먼저 아침식사를 하는 것을 발견하고 같이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중 H 선생님도 합류를 하게 되어 또 수다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인터뷰 때 봤던 R 선생님이 다가오더니 여긴 완전 고등학교 급식실 같다며, 아는 얼굴이 없어서 위축이 된다며 우리 테이블이 앉았다. H와는 이미 친한 사이 같아 보였고, 나는 다시 인사를 하고 내 소개를 했다. R은 교육학과 선생님인데 이번학기에는 ‘독해와 글쓰기'라는 수업을 몇 개 맡는다고 했다. 이 수업은 아직 대학 수준의 독해와 글쓰기 실력이 안 되는 학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수업인데, 보통 1학년 글쓰기 수업과 짝을 지어 글쓰기 수업에서 학생들이 성공적으로 수업을 수강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는 수업이라고 했다. 그렇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10년째 이 전문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는 M과도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여름 방학 동안 딸과 미시간에 있는 친정에 다녀왔다고 한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사연들로 이 동네에 모여 살고 있고, 어떤 인연이 닿아 이렇게 같은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새로이 만나는 것은 너무나도 오랜만이어서 그저 신기했다.
그렇게 조식이 끝나고 우리는 강당으로 들어갔다. 저명한 교수법 저자의 기조연설을 앞서 총장님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 인사말은 생각보다 길었는데, 전문대에 대해서 많은 걸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이 전문대는 우리 동네의 캠퍼스와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의 메인 캠퍼스 외에도 2개의 분교가 있으며 올해 예산이 늘어서 5번째 캠퍼스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했다. 생각보다 큰 캠퍼스 시스템에 감탄하고 나름의 자부심도 생기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기조연설은 학생들의 수업 참석률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코로나 이후 집에서 편하게 강의를 듣는 것이 학교 생활의 표준으로 인식을 하게 된 지금의 대학생들이 다시 대면으로 강의를 듣고 대면강의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것들(다른 학생들과의 만남과 토론 등)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하려면 교수진은 어떤 자세로 강의에 임해야 하는지에 대한 유용한 내용이었다.
나도 많이 고민하고 있던 내용이다. 문학 전공이지만 실상은 대학원생으로서도 글쓰기 수업을 많이 맡아왔는데 글쓰기란 내가 계속 말로 설명한다고 느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끼리의 대화가 필요하고 서로 글을 봐주면서 더 많은 글쓰기 연습을 해야 하는데, 화상으로 강의를 하면 카메라를 켜놓으라고 해도 뒤로 누워서 자는 학생, 대놓고 고개 돌려 가족/룸메이트와 떠들고 노는 학생, 자리를 비우는 학생들과 같이 수업에 집중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항상 있다. 그리고 자리는 지키더라고 마음이 나와 함께인 학생은 많지 않다. 그런데도 21년부터 대면강의를 할 때면 화상 옵션이 없는지 묻는 학생이 꼭 한 명씩 있었다.
연설자는 학생들이 강의에서 사라지는 다양한 이유들을 설명해 준 후 결국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학생들이 자기 조절학습 self-regulated learning을 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게 돕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자기 조절학습이란 학습의 인지적, 동기적, 감정적 측면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인데 궁극적으로 학생들이 1) 스스로 해야 할 일을 파악하고 목표를 세워서 전략적으로 배움에 임하고 2) 스스로 시간관리를 하고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해 가면서 자신의 학습 방법을 파악해 가는 것이다. 그 후 3) 자신이 배운 것에 대해 스스로 평가를 해보고 성공적이었는지, 성장이 있었는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학습법을 가르칠 수 있다면 학생들은 학교에 남을 수 있는 지구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내 나름 티칭에 대해 많이 고민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나, 역시나 배울 것은 많다. 사실 전문대에서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전문대 선생님이던 대학원 동기와의 대화 이후 생긴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다. 그 동기는 전문대에서 오래 강의를 했었고 글쓰기를 가르치는 자세부터 남다르다는 생각을 한 기억이 난다. 글쓰기 과정을 잘게 잘게 나눠서 학생들이 하나하나 익혀갈 수 있게 인내심을 갖고 티칭에 임하는 자세를 나도 배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진짜 그럴 수 있는 기회가 펼쳐진 것이다. 지난 2주만 해도 배운 것이 너무 많다. 이번학기를 지내고 나면 나는 어떤 선생님이 되어있을지 궁금하다. 조금 더 성장한 선생님이 되길 바라며 내일 강의 준비를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