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nefit of the Doubt
내가 생각하는 선생님의 마음이란 제대로 장착하고 실천하며 살기까지는 수년, 아니 수십 년의 세월이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 수련이란 그 어떤 수련만큼이나 꾸준한 노력이 필요한 듯하다. 하지만 지금, 티칭을 5년 해온 초보 선생님으로서 배운 것 한 가지를 얘기하자면 benefit of the doubt이라는 말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말은 똘이네(온라인 카페)에서 미드를 정주행 하던 대학 시절에 처음 접하게 된 표현이다. 어떤 드라마에서, 어떤 장면에서 누가 한 말이었는지는 기억자니 않지만, 의심이라는 뜻의 doubt와 이익이라는 뜻의 benefit이 만나서 ‘상대의 행동에 의구심이 생길 때는 일단 선의의 해석을 먼저 한다'는 뜻을 만들어내는 심박함에 반해서 단번에 뇌리에 새겨진 기억은 난다.
티칭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benefit of the doubt을 주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아니, benefit of the doubt를 줘야 하는 상황이 자주 일어난다. 학생이 아팠는데 병원 갈 정도는 아니었어서 doctor’s note가 없다고 할 때, 인턴쉽 인터뷰가 있거나 세미나가 있는데 증빙 서류가 없다고 할 때, 가족이 아프거나 family emergency가 있다고 할 때, 지인이 돌아가셨다고 할 때, 코로나에 걸렸다고 자가 진단 키트 사진만 보내올 때, 고양이가 집을 나갔다고 할 때, 분명 포털에 과제를 올렸는데 왜 제출이 안된 건지 모르겠다고 할 때 (업로드만 하면 안 되고 제출 버튼을 클릭해야 한다고 설명을 해줘도 왜 안된 건지 모르겠다고 할 때), 정신 건강상의 문제로 과제를 할 수 없었다거나 수업에 올 수 없었다고 할 때. 너무나도 많은 사연과 사정이 있다. 학생이 25명일 때는 그 한 명 한 명의 사정을 들어주고 제출일을 미뤄주고 편의를 봐주는 일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지난봄에 수업을 2개 해보니까 학생 수가 50명만 돼도 그 한 명 한 명이 쌓여서 너무 여러 명의 편의를 봐줘야 하는 게 선생님인 나에게는 큰 무리로 다가온다.
그래서 가을에 시작하는 일이 조금 두렵기도 하다. 2년제 전문대에는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 더 많은 거고, 가족을 돌보는 일을 해야 하는 학생도 많을 거고 그 외에도 내가 아직은 알지 못하는, 상상도 못 하는 일들을 겪고 감당하며 공부를 하려고 애쓰는 학생들이 많은 거다. 그 학생들을 위해서 내가 정신을 차리고 삶이 공부에 방해가 되지 않게, 공부를 삶에 맞춰가며 할 수 있게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뭐가 있을지 고민을 해야 한다. 엑셀 파일을 만들어서 사정, 필요한 조정 등을 적어서 기억해야 하나? 이제는 노트에 적어놓고 그때그때 기억하는 선에서 하는 건 불가능할 것 같다. 생각을 해봐야겠다. 강의를 한다는 것에는 내용을 가르치고 그레이딩을 하는 것 외적인 부분이 많다. 초중고 선생님들처럼 한 아이가 하나의 개인,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일을 하지는 않지만 학생이 교실밖에서는 학생이 아닌 자신만의 꿈을 향해 도전에 도전을 이어하는 청년, 부모가 의지하고 사랑하는 딸, 아들, 동생들을 돌보는 맞이, 때로는 일찍 아이를 갖은 나이 어린 부모, 그래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 등등의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함을 넘어 그 학생 고유의 현실에 맞춰 공부를 할 수 있게 내 선에서 도울 수 있는 찾는 것, 그게 강의를 하는 것의 부가적인 책임이다.
물론 학생 개개인의 사정에 강의의 모든 것을 맞출 수는 없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공유하는 강의 계획서는 학생들이 학기를 보내면서 그날 그날의 숙제가 뭔지, 과제는 언제까지 제출해야 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문서가 되기도 하지만 그 수업에서는 어느 정도의 공부를 하게 될지에 대한 감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학기 시작에 앞서 각자 해야 할 일을 파악하는 습관을 기르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수강하는 수업의 강의 계획서를 보고 각 수업의 과제들을 언제까지 제출을 해야 하며 자신의 개인 스케줄에 맞게 그 과제를 시간에 맞춰 할 수 있게 미리 시간을 빼놓고 수업에 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학업에 충실히 할 수 있다. 그런 시간과 여유가 없다면, 그 학기에 학기 등록을 하는 게 맞는지 여부도 고려를 해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법을 익히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트, “티칭 시니시즘에 대하여"에서 더 이야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