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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에도 유효한, 0에서 1의 성공 방정식

피터 틸의 <제로 투 원>을 읽고

by 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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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틸의 <0 to 1>을 읽었다. 피터 틸은 1998년 전자결제시스템회사 페이팔을 설립해 CEO로서 회사를 이끌고, 2002년 페이팔을 상장시켜 온라인 상거래 시대를 연 사람이다. 사업가로서의 성공 이후에 그는 페이스북, 팔란티어, 링크드인과 같은 회사들의 초기 투자자로 참여하였고, 실리콘 밸리를 움직이는 파워그룹을 일컫는 말인 ‘페이팔 마피아’의 대부라고 불리기도 한다. 그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창업하는 조건으로 장학생들에게 10만 달러를 지원하여 대학교 교육에 관한 전국적인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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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0 to 1>은 피터 틸이

어떻게 사업가로서 성공했고,

성공할 기업들을 알아볼 수 있었으며,

왜 대학교를 중퇴하고 창업하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교육보다 학습을 우선하라고 권하는지 설명하고 있다.


피터 틸은 자신이 0에서 1로 진보한 제품을 창조했기 때문에 성공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0에서 1로 진보할 제품들로 성공할 기업들을 알아보았기 때문에 미리 투자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0에서 1로 진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없는 대학 교육을 받기 보다는 창업을 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가 이야기하는 0에서 1로의 진보는 1에서 100으로의 진보와 구분되는 개념이다. 전자는 아무도 한 적이 없을 일을 해내는 것이고, 후자는 이미 효과가 입증된 것을 카피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개의 타자기를 보고 워드 프로세서를 만들었다면 0에서 1로 진보한 것이다. 한 개의 타자기를 본 다음 100개의 타자기를 만들었다면 1에서 100으로 진보한 것이다.


0에서 1로 진보한 제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지만 아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비밀을 발견(136쪽)”해야 한다. 피터 틸은 아예 “지속적인 가치를 창출하고 또 보유하고 싶다면,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으로 회사를 차리지 말라(37쪽)”고 조언한다. 그보다는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풍요로움을 소개함으로써 고객들에게 더 많은 선택권을 제공하는 창조적 독점 기업(47쪽)”을 만들 것을 권한다. 타자기 회사가 타자기를 싼값에 제공하기 위하여 출혈 경쟁을 계속하는 사이에, 워드 프로세서 회사는 시장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틸은 0에서 1로 진보한 제품을 창조하는 독점 기업은 “소규모가 아니면 (만들어내기) 불가능(20쪽)”하다고 말한다.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새로운 기술을 창조하는 회사가 이상하게도 보다 ‘현대적인’ 조직이 아니라 봉건적 군주제를 닮”아 있다. 그 이유는 “단 한 사람뿐인 독특한 창업자는 권위 있는 결정을 내릴 수 있고, 강력한 개인적 충성을 얻어낼 수 있으며, 몇십 년을 내다본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243쪽). 그는 아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비밀을 바탕으로 0에서 1로 진보하는 제품에 대한 비전을 소규모의 회사에 전파하는 카리스마 있는 창업가들이 있는 회사들에 주목하였다. 그 회사들은 페이스북, 팔란티어, 링크드인 과 같은 회사들이었으며, 그래서 그는 이 회사들에 초기 투자하여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그는 사업의 성공이나 투자의 차원에서 교육과 사회의 차원으로 자신의 논의를 넓힌다. 그는 “모범적인 대학생들이 미래의 위험을 회피하는 데 집착한 나머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듣도 보도 못한 각종 능력들을 수집하듯이 익히고 있는(122쪽)” 모습을 비판한다. 그들이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으로 경쟁 시장에서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1에서 100으로의 진보에 그치기 때문이다. 그가 보았을 때에 “사회를 위해서 정말로 좋은 일은 뭔가 남들과 ‘다른’ 일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이 새로운 시장을 독점해 이윤을 만드는 방법이기도 하다(217쪽).” 이렇게 0에서 1로의 진보를 만들어내는 일은 대학교에서 막연하게 수업을 들으면서는 결코 배울 수 없고 창업을 통해 구체적으로 차별화된 상품을 만들어내는 방법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대학교를 중퇴하고 창업하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교육보다 학습을 우선하라고 권했던 것이다.


피터 틸의 <0 to 1>은 0에서 1로의 진보라는 키워드로, 사업과 투자 그리고 교육에 대한 일관적이고 논리적인 관점을 보여준다는 점이 아주 매력적인 책이다. 한 명의 사업가에게는 사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한 지침서가 되어주고, 한 명의 투자자에게는 성공할 사업을 구분하는 안목을 길러주는 책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들의 성공에 열광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다음 세대를 무한한 경쟁으로 내몰면서 고리타분한 교육을 답습하고 있는 기성 세대를 지적하며 통쾌함과 씁슬함을 전해주기도 한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2025년은 AI 시대를 맞아 실리콘 밸리에 새로운 스타트업이 우수죽순 쏟아진다던 한 해였다. 내가 일하고 있던 회사에서도 AI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다. 돌이켜보면 우리 회사는 피터 틸의 강조한 소규모의 회사도 아니었고, 몇십 년을 내다본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매년 바뀌는 기획에 좌충우돌하였다. 회사 내부에서 서로 경쟁하며 자신의 지대를 유지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관료제적인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 경영진에서는 사업을 축소하기로 결정했으므로, 내가 만들어낸 상품은 아쉽게도 0에서 1로 진보한 제품은 아니였던 셈이다.


시간이 흐르면 AI 시대에서도 0에서 1로 진보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 창조적 독점 기업들이 점차 드러날 것이다. AI 시대의 승자와 패자가 궁금한 사람들에게, 인터넷과 관련된 새로운 스타트업들이 우수죽순 생겨나던 시기 한가운데에서 살아남은 그의 관점은 참고할만한 가치가 있다. 그의 주장은 그의 사업인 페이팔이나 IT 버블 시기 인터넷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무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숨겨진 비밀을 바탕으로 0에서 1로 진보하는 회사들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unnamed.jpg 제로 투 원을 읽으며 남기어둔 책갈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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