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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담 Jan 11. 2024

심리 부검

 

그를 좋아했다. 그의 목소리는 더 좋아했다. LSG.


그는 살아서 누렸던 명예를  가시면류관으로 바꿔 쓰고 우리 곁을 떠났다. 생각해 보니 오랫동안 영화 속 그를,  TV속 그를 미소 지으며 바라보았던 건 주어진 역할에 따라 보여준 선한 느낌 때문이었던 듯싶다. 여기에 더해 여유가 느껴지는 시크한 표정도.  


더욱이 아내를 대하는 그의 태도와 아내가 남편을 대하는 말투를 흉내 내며 남편과 함께 장난쳤던 나로서는, 그의 갑작스러운 스캔들과 비보가 남다른 감정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생각이 정지된 듯한 시간을 보낸 걸 보니 어지간히 충격이었던 듯하다. 


이제 찬찬히 그가 한, 그래서 그가 겪은 감정을 생각해 볼 용기를 낸다.


나는 그와 시간과 경험을 나눈 적이 없는, 오직 스타와 팬의 관계다. 그럼에도 '사후부검' 같은 감정 이해를 시도하는 건, 감정이 누군가에게 이입되었다면 그와의 인연은 만들어진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심리부검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지도 꽤 된 듯하다.


심리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란, 자살 유족의 진술과 기록 검토를 통해 자살 사망자의 심리 행동 양상 및 변화 상태를 확인하고, 자살의 구체적인 원인을 검증하는 체계적인 조사방법이다. 
                                    -보건복지부, <2021 심리부검 면담 결과 보고서>


폭로와 고발로 드러난 인간관계와 수사과정에서의 불법적이고 무자비(?)한 처리과정은 결과라는 형태로 건조하게 드러나겠지만, 심리부검을 실시한다고, 그가 겪은 모든 걸(마음 포함) 알 수 있을까?


슬픔이 생각을 밀어낸다.   LSG, 그가 겪었을 일들과 감정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마약을 건넨 의사와 유흥업소 여자와의 인연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죽음을 촉발시킨 스모킹 건은 무엇이었을까?


살면서 자주 생각하는 경구가 있다. 

'인간사 세옹지마(塞翁之馬)' 

불행은 대부분 좋고, 행복하고, 영예로운 순간에 잉태된다.  나 또한 겪어보았다. 


영화 '미나리'로 명예의 정점에 선 그에게 유혹은 뱀처럼 다가왔을 것이다. "꿈꾸는 것 같다"라고 표현했던 그의 말처럼, 기승전 스토리 없이 바뀌는 꿈의 현란함처럼 감정은 시소를 탔을 것이다.


이제는 이쯤 해도 된다는 허망함이 들었을까? 

내가 누군데, 이쯤은 뭐, 하는  자만감도 들었을까?


유혹은 늘 가진 자들에게 뻗는 마수이니, 유혹은 삶의 흔적을 되돌아볼 틈 없이 다가왔을 것이다. 


가상해본다. 그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상황은 생기지 않았을까? 

가진 것 없는 사람은 기피의 대상이 될 뿐이니 그럴 것이다.

정점의 순간에서도 다가오는 유혹을 알아보는 지혜가 있었다면? 

지혜는 메타 시각을 줬을 테니 그럴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는 나의 짐작이고 추측일 뿐, 생각 뒤 손가락은 나를 향해 있다. 그와 버금갈 명예도 성공도 가지지 못했으니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고 해도, 같은 크기의 절망이나 죽음의 고통은 없을 것이나 겪는 고통은 엇비슷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부지런히 마음을 들여다볼 일이다. 내 속의 '나'가 나를 속이지 않도록. 



사진;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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