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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Aug 19. 2022

‘꿈’이라는 볼드모트

제1호 태풍 H.O.T. 가 지나간 흔적

H.O.T.를 좋아한 것이 내 인생 반환점이었다. 좋아함은 무모함을 동반했다. 그 무모함은 내 운명을 바꿔놓았다.  엄마의 "서울로 이사 갈래?"라는 말에 무작정 H.O.T.를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YES"를 외쳤으니까. 고등학교 진학 문제로 혼자 먼저 상경하게 되었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16살부터 혼자서 살게 됐다. 외로울 때 그들의 마지막 콘서트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위안을 얻었다. 기운 없을 때, 집중이 안될 때에도 H.O.T. 노래를 들었다. 친구를 사귈 때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이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야?"였고, H.O.T.를 좋아한다고 하면 바로 내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좋아하는 색깔은 흰색이었다. H.O.T.의 풍선 색이 흰색이었으니까. 좋아하는 사탕은 박하사탕, 좋아하는 숫자는 23, 35, 7, 27, 48이었다. H.O.T.는 내 10대 시절의 정체성, 그 자체였다.


내 생애 마지막 연예인이 22주년 콘서트를 한다. 무려 18년 만이다. 2001년 2월 27일에 했던 마지막 콘서트 이후 다섯 명이 함께 하는 첫 콘서트다. 오늘 9월 7일은 H.O.T. 데뷔일이자 콘서트 티켓팅이 있 날이다. 운동을 다른 때보다 일찍 마치고 PC방으로 향했다. PC방으로 가야 인터넷 속도가 빨라서 티켓팅 성공 확률을 그나마 높일 수 있에 가야만 했다. 앉는 건 허리디스크 환자에게 아주 끔찍한 일이었으므로 절대 돈을 주고 자의로 의자에 앉지 않겠다던 결심도, 티켓팅 앞에서 흐물흐물 액체 괴물이 되고 말았다. 예매 시작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예매 사이트와  똑같이 구현된 연습 페이지에서 부지런히 시뮬레이션을 다. 더 빠르게 티켓을 쟁취하기 위해서 연습은 필수였다. 수영장에서 걷고 온터라 허리가 욱신거렸지만 꾸욱 참았다. 7시 55분, YES24 서버 시간 사이트를 찾아서 모니터 왼편에 두고, 오른편에는 YES24페이지에서 로그인을 해두고 기다렸다. 56, 57, 58, 59, 00.... 1초, 1초 지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이를 악물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터질듯한 심장에 라마즈 호흡을 했다가 손톱을 뜯으며 모니터를 응시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가 따로 없었다. 8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허리 아파서 어차피 가도 몇 분만 보고 나올 수 있는 공연에, 그 순간, 그 공간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날만큼은 하늘도 내 허리도 나를 도와줄 거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콘서트에 갈 용기를 냈다. 대학 때 수강신청을 한 번도 성공해보지 못한 똥손인 나였기에 섣불리 될 거란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07:59:59


00이 되는 타이밍에 맞춰 티켓 예매 버튼을 눌렀다. 대기중이라고 떴다. 하염없이 버퍼링 중인 사이트를 바라보며 멍 때렸다. ‘아, 하늘은 도와주지 않을 작정이구만?’이라는 마음도 잠시 정신 차리고 상황 파악을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혹시나 다른 사이트 열어서 인터넷 하면 YES24 접속이 느려질까 봐 컴퓨터는 만지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의 티켓 현황을 확인다. 1초. 이 1초 안에 이미 성공과 실패가 갈렸다. 암표상은 티켓팅이 끝나기가 무섭게 중고나라에 표를 사라는 글을 올렸다. 똥손이었던 난 포도알(콘서트 좌석표를 일컫는 팬들의 은어)을 구경조차 할 수 없었다. 내가  것 따로 있었다. 바로 무엇인가를 하겠다는 '열정'이었다.


열정, 그건 허리디스크 환자인 나에게 버거운 명사였다.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는 삶은 괴로웠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더 괴로울 것을 알기에 포기했다. 정신의 고통보다 더 급박한 육체의 고통을 다스리기로 했다. 그것이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 정반대 방향일지라도 나는 열정적인 이전의 삶과 헤어지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무욕의 삶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해리포터에서 그 누구도 '볼드모트'라는 이름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되는 것처럼 아픈 게 ‘꿈’은 볼드모트 같은 존재였다. 꿈꾸면 꿈꿀수록 내 몸이 괴롭고, 그 고통으로 인해 내 정신도 괴로워졌다. 무언가를 꿈꾼다는 것은 무엇인가 되지 못 고통도 함께 품는 것이었기에 더더욱 욕망할 수 없었다. 정해진 일과대로묵묵히 살아내는 변수 없는 일상을 지켰다. 부하고 운동하고 자고. 달이 지구를 돌듯 수영장과 집만 돌았다. 질서의 연속이었다. 아무도, 그 무엇도, 이 안에 들어올 틈은 없어 보였다.


항상성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던 내 삶에 태풍 H.O.T.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나는 동요했다. 아픈 몸을 생각하기도 전에 5명이서 함께 하는 콘서트는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무엇을 할 때의 기쁨보다 하고 났을 때 허리의 통증어른거려 괴로워서 애초에 무엇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세 글자는 꿈을 꾸게 만들었다. 꿈꾼다는 것은 고통이다. 동시에 희망의 증거일 수. 나는 희망했다. H.O.T. 콘서트에 가서 나의 10대 시절의 추억을 아름답게 포장하 내 가슴속에 품을 수 있기를. 열정을 불에 태워 재로 날려버리고 무욕망의 삶을 살고자 했지만 내 안에 행위하고자 하는 열정이 척추를 경유하여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마지막’의 힘은 이렇게나 강했다. 찌릿찌릿 내 몸에 흐르는 박하맛 통증을 이겨낼 만큼 짜릿한 것이었다. 제1호 태풍 '십대들의 우상(High-five Of Teenagers)' 지나갔다. 마침내 무엇이 올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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