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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몬스 Aug 12. 2022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허리디스크 환자의 공무원 시험 도전기 (2)

초등학교 운동회. 초미세먼지 130, 미세먼지 98. 흙먼지 가득한 운동장에서 100m 달리기 시합이 한창이다. 대기줄이 한 줄씩 사라질수록 점점 손에 땀이 스며 오른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괜히 입이 바싹 마르고 정신이 아득해진다. 발선에 서서 직선 레인 끝을 응시한다. 날듯이 저기까지 뛰어가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땅!' 총소리가 들린다. '와~~~ 아' 친구들의 함성소리와 함께 치고 나갔고 생각대로 직선 레인까지 날아서 1등으로 안착했지만 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커브에서 와다다 꾸라졌다. 야구가 아니라 달리기인데 손으로 슬라이딩하여 땅바닥에 제대로 안착했다. 순식간에 1등에서 꼴찌가 되었다. 벌떡! 생각할 겨를도 없이 넘어지자마자 일어나서 끝까지 달렸다. 끝나고 나니 긴장이 풀려 식은땀이 등에 주룩 떨어졌다. 무릎이 까손바닥에 모래가 박 가 나는데도 그것보다는 손목에 월계수 잎으로 감싸진 3이라는 숫자 도장만 보였다. 2등이랑 격차가 얼마 안 났는데 조금만 더 빨랐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넘어져도 울지 않고 오뚝 일어나 끝까지 달렸던 아이였다. 그 기질이 아직 남아있는 걸까. 인생의 골목마다 유달리 자주 넘어졌지만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며 툭툭 털고 일어다. 예전보다 넘어질  일어나는 시간이 점점 더 걸리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일어나서 달린다. 뛰지 못하면 걷기라도 한다. 그게 나였다.


허리디스크 습격과 수술 부작용 공격에 넘어져서 누워있다가 이제 조금씩 서고 걸을 수 있을 때쯤 시작한 것이 공무원 시험공부였다. 예전과 달 1등이 목표가 아니다. 15명을 뽑으면 15등이 목표다. 등을 목표로 무모한 저공비행 우며 날씨를 기대해본다. 사실상 운에 맡긴 전략이었다.

버리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국어 30분, 한국사 30분, 영어 30분, 택과목을 2시간 공부하는 게 하루 루틴이었다. 처음에는 기본서를 붙들고 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효율이 나오지 않다. 기본서는 기본 1000페이지가 넘는데 한 단원 공부하기에도 벅찼다. 회독을 많이 할수록 읽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는데 공부 시간이 워낙 짧았던 탓에 회독 자체가 힘들었다. 완벽하게 공부하겠다는 마음부터 버렸다. 시간이 없는 만큼 가지치기를 확실하게 해야 했다. 잎이나 꽃 따위에 시간을 쓰지 않고 뿌리와 줄기부터 챙기려 했다. 한 과목씩 정독한 후 기출문제를 풀었다. 출제 확률이 낮은 건 버리고 중요한 내용 위주로 보면서 300페이지 안팎의 교재(국어와 영어는 문법 기출문제집, 한국사는 전한길의 필기노트, 행정법은 압축 노트, 행정학은 압축 행정학)에 단권화하며 공부했다. 자주 틀리는 기출문제를 포스트잇에 써서 압축서에 이고, 한번 틀리면 노랑, 두 번은 주황, 세 번은 진한 주황색 형광펜줄을 그었다. 광펜 내용 우선으로 복습했고 상태가 최악일 때는 진한 주황색 위주로 봤다. 수영장 오고 가며 걸을 때 침대에 누워 쉴 강의를 TV처럼 틀어놓고 들었다. 이동 중에는 앱을 이용해 복습했다. 수영장 가는 길경전철 탈 때는 선재국어 앱을 켜 표준어, 외래어, 사자성어 등을 공부하고, 경전철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는 써니행정법 앱을 켜서 법 조항 OX문제를 풀었다.


그저 이 행위의 반복이었다. 공부한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한 반복 그리고 반복, 또 반복. 밥을 뭐 먹을지 생각할 필요가 없도록 도시락을 먹었다. 이전에 공부할 때 먹던 김밥보다 천 원 비싼 도시락이었다. 내 인생은 1,000원어치 나아졌을까. 이런저런 선택을 위한 정보 탐색은 사치였다. 도시락 따위에 '선경후정'으로 유리왕처럼 감정이입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난 왕이 아니다. 노비가 될 몸이다. 무엇인가 결정이 날 때까지는 똑같은 하루를 몇백 번 반복하면 되었다. 돌을 갈아 검을 만드는 경상남도 김해시 장유면에 살았던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마음으로 생존을 위해 갈고 또 갈면 되었다. 몸과 마음이 들쑥날쑥하는 와중에도 [ 눈ː ] 이 오든 비가 오든 이 행위를 얼마나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 있느냐, 얼마나 참아내느냐가 이 레이스(race)의 관건[관건/관껀]이었다.


D-1. 걱정이 걱정을 낳고 걱정이 또 걱정이 낳 걱정 기르고 걱정이 자라다가 또 걱정을 낳은 날이었다. 8시 30분까지 입실해서 거의 12시에 끝나는 시험이었다. 교실 안에서 3시간 30분을 버텨야 하고, 시험 장소까지 가는 데 1시간, 외출 준비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집으로 오는 시간은 아무 데나 누웠다가 오면 되니 제외하더라도 그전까지 5시간을 휴식 시간 없이 버텨야 했다. 수술 이후로 한 번도 30분 이상 앉은 적이 없었는데 그날은 4시간 이상을 앉아있어야 했다. 워서 생활하는 나에게 너무 벅찬 하루였다. 그날을 위해 일주일 전부터 허리를 아려고 쉬는 데도 일주일 내내 통증이 마르지 않았다. 태가 심각해져서 수영장도 못 가고 누워있는데 마음이 복잡하다. '어차피 합격 못할 거고 아픈데 시험 보러 가지 말까''그래도 어찌 될지 모르니까 일단 해보긴 해봐야지''아픈데 어떻게 가, 바보야' 생각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뇌에서 생각끼리 싸우는 걸 인지하자 속이 상해서 눈물이 났다. 괜히 다이어리를 넘기며 시험공부하던 지난날을 되돌아봤다. 처음에는 공부 계획을 세웠던 게 많았지만 계획대로 못하는 날이 99.9%가 되자 그 이후로는 공부 거의 적지 않게 되었다. 죄다 아프다는 얘기뿐이었다. '허리가 아프고 왼쪽 골반이 아프고 뒷다리에 전기가 흐르고 누우면 오른쪽 다리가 흔들리고 등 전체가 뻣뻣하며.....''오늘은 어제보다 더 심해졌는데 왼쪽보다는 오른쪽이 더 아프다. 허리에 상체와 하체 구분선이 있는 것처럼 가로로 아프다. 하체 밑으로는 온통 전기 파티다. 하체는 남의 다리 같다. 엄지발가락이 바늘로 쿡쿡 쑤신다''종아리에 뜨거운 다리미를 갖다 댄 것 같다. 허벅지 안쪽에서부터 발바닥까지 신경으로 이어진 길이 느껴진다. 안마기처럼 진동이 왔다 안 왔다 한다' 매일이 쓰다 만 통증 일기의 연속이었다. 전날도, 그 전날도, 통증 기록뿐이었다. 페이지를 넘기며 '뭐 이렇게 맨날 아팠지. 그럼 내일도 아프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이렇게 계속 아팠는데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으니까 내일 그냥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D-DAY. 시험 날이 밝았다. 통증으로 잠을 못 자다가 4시에 잠들었고 2시간 자고 일어나서 시험장에 갈 준비를 했다. 잠깐 잤을 뿐이라 어제를 이어 사는 느낌이다. 롱한 정신으로 방패 야무지게 챙긴다. 7장의 파스. 등, 허리, 목, 다리에 길거리에 전단지 붙이듯 덕지덕지 붙인다. 혹시나 파스 냄새 때문에 다른 수험생에게 방해될까 걱정하면서 '제발 맨 뒷자리에 앉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다.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확인하는데 복도 옆  뒤, 뒷문 리다. 원하던 자리에 앉게 되다! 출발이 좋다. 괜히 좋은 예감이 다. 이제 4시간만 버티면 된다정신 집중해본다. 시험 시작 전 대기 시간에는 내 상태를 감독관에게 말하고 에서 멀뚱히 서 있다. 맨 뒷자리여서 다행이라고 다시 한번 더 다. 막상 시험이 시작되니 허리는 아파도 시간은 금방 갔다. 100문제를 100분 안에 풀고 OMR카드까지 작성해야 했기에 주저하면 망하는 시험어려워서 고민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 비둘기가 모이쪼아 먹듯 험지와 시계를 갈아 보며 푸는 속도를 조절해 끝나는 시간에 겨우 맞췄다. 모르거나 애매한 문제로 체크한 별표가 2과목에서 4개 이상이 나왔다. 탈했다. '역시 탈락이구나. 래도 2시간 자고 5시간을 앉아있었잖아. 오늘 하루 버틴 것만으로도 대견하다고 생각하자.' 정신이 아닌 비처럼 집에 돌아가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슬슬 누워있는 것 좀이 쑤실 때쯤 시험지를 꺼냈다. 완벽하게 다시 시작할 힘 나지 않았지만 틀린 것은 짚고 넘어가야 내가 그날 고생한 보람이 생길 것 같았다. '그날 틀린 거는 절대 다음에 틀리지 말아야지. 허리가 멍멍고생 했는데 멍멍고생으로만 남을 수는 없지.'

꼴도 보기 싫은 문제지를 살펴보며 채점을 했다. '오옷?' '오잉?' '에엥~?' '뭐지.. 생각보다 괜찮은데?' 국어, 영어, 한국사까지는 꽤 괜찮은 점수가 나왔지만 으쓱하지 않았다. '으음~ 그래도 선택과목에서 망했지롱~'하면서 선택과목채점한 순간 '그럼 그렇지. 많이 틀렸네. 너무 어려웠어. 이거는 각 잡고 공부했어도 어려웠겠다.' 혼자 구시렁대며 예상 커트라인이 몇 점인지 확인하러 갔다.

'어? 이상하다? 합격할 수도 있겠는데? 왜 이렇게 커트라인 점수가 낮지?'

후기를 찾아보니 이번 시험 난이도가 높아서 국영사에서 점수가 안정적 사람이 유리했고, 특히 내가 선택한 과목 난이도는 '상'이어서 표준점수가 다른 과목의 높은 점수와 비슷했다. 자신이 시험 본 지역에 본인 점수를 넣어 합격을 예측해주는 사이트에 내 점수를 넣으니 합격이었다. 내 밑에 사람이 4명이나 있었다. 믿기지가 않았다. 합격일 수도 있다니. 다음에 시험 보면 충분히 합격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졌다. 예측 사이트이기도 하고 허위점수를 높이거나 낮춰서 올리는 사람도 있을   기다려봐야 했다. 결과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불합격까 불안하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밝은 마음이 전염되어 내 마음을 잔뜩 채우고 있었다. 가능성의 섬광 다. 


붕붕. 필기시험 합격 발표일과를 확인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네이버 켜고 XXX시청 치고 채용공고에 들어다. 합격자 명단을 다운로드하고 한글이 열리는 순간 ! 댔다. 마우스 휠을 내리고 XX 글자를 찾는다. XX직 셀 옆 수험번호 XXXXXX. 내 번호가 있다. 합격이다. 와. 있다! 진짜 있네? 와! 정신 차리고 내 수험번호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6번째였다.

필기시험 접수 시작 첫날 9시 15에 응시서류를 제출했었다. 면접 대기시간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너무 빨리 접수했다가 1번으로 면접 볼까 그건 피하고 싶어서 15분 뒤에 냈다. 면접 순서는 번째가 되길 바랐다. 한 명당 30분이니 1시간 정도만 버티면서 내가 말할 내용을 정리하자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6번째면접시간만 2시간 30분 대기다. 집합시간까지 고려하면 또 3시간 넘게 참아야 되는구나 싶었다. 면접 순서는 내 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번 필기시험처럼 5시간까지는 아니니까'라고 위안 삼으며 바로 면접 스터디를 찾아나섰다. 1시간 정도는 스터디를 할 수 있겠지 싶었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첫 만남이 다였다. 첫날 스터디원과 준비 계획만 세우고 그다음부터 나가지 못했다. 시험 날 무리한 탓이었는지 다시 다리에 힘이 들어오지 않고 걷기가 힘들어졌다. 두 번째 날에 나갔지만 앉지 못해서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다음 모임 날에도 허리는 복구되지 않았다. 렵게 들어간 스터디였는데 결국 양해를 구하고 대신할 사람 찾아 모임에서 빠졌다. '1시간짜리 스터디도 못하는데 만약에 합격한다고 쳐도 회사를 어떻게 다니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말을 잇기 힘들었다.  허리는 도대체 디까지 날 밑바닥으로 내동댕이 칠 건지 가늠가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내 앞에 닥친건 통증이었고 그 통증을 받아내느라 바빴다. 먼 미래에 대한 걱정은 시냇물처럼 흘려보냈다.  그저 누워서 기업 공채 준비할 썼던 자소서 읽면서 무료 면접 OT동영상 소리를 들으며 준비랄 것 없는 준비를 했다.  


하지도 못하는 화장을 하고 블라우스와 H라인 스커트를 입고 또각 구두를 신고 면접장에 도착했다. 프기 전 직장 다닐 때 입던 옷을 3 만에 꺼내 입었다. 노란 얼룩이 생겨 과탄산소다와 뜨거운 물로 곰팡이를 제거해야 했다. 사람과 대면하는 게 얼마만인지, 그게 표가 나진 않을까, 어색하지 않을까, 내게도 곰팡이 냄새가 나진 않을지, 집에서 오래 묵었다가 나온 외출이라 이래저래 잡생각이 떠올랐다. 자기 진술서를 30분 동안 간략히 작성하고 니스칠 된 나무에 빨간 가죽이 덧대진 국회의원이나 앉을 법한 의자에 앉아 대기했다. 주변엔 남자고 여자고 상관없이 모두 흰 블라우스에 검은 정장 차림다. 외투 없이 블라우스만 입은 것도, 블라우스 색이 파란색인 것도 나 혼자뿐이다. 저렇게 같은 모습으로 이곳에서 지내야 하는 걸까. 괜스레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인데 거리감이 느껴지고 머쓱하다. 1명 면접 볼 때 앞에서 1명 대기하는 식으로 면접은 진행되었다. 30분이 지날 때마다 1명씩 2층으로 내려갔다. 이 규칙적이어서 시간을 예측하는게 가능했 내 차례가 올 때까지 화장실에서 계속 서을 수 있었다. 화장실에 사람이 붐비면 자리에 가서 잠시 앉았다가 다시 화장실에 가 변기에서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흐를수록 종아리에서부터 허리까지 뻣뻣해지는 느낌이 었다. 괜히 허리도 안 좋은데 구두를 신었나. 구두 안에서 미끌대는 스타킹의 감촉은 실로 오랜만이다. 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려본다. 시간에 맞춰 대기실로 들어오니 나까지만 진행하고 7번째 면접자는 휴식시간 이후에 다시 면접을 재개하겠다고 통보했다. 접관도 점심 먹고 쉬고 오겠다는 뜻이었다. 하마터면 1시간 더 대기할 뻔했다, 휴, 놀란 가슴을 다독다. 11시 30분 제시간에 면접 시작됐다.

"험번호 XXXXXX XX직 이름 XXX"

"자리에 앉으세요"

타이머를 누르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각과 험을 묻는 질문에는 나름 답변을 이어갔지만 지방자치에 대해 물을 때는 '모르겠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르겠습니다.'로 일관해야 했다. 준비가 부족했다. 3개 연속으로 모르겠다고 대답하는 게 민망했지만 는 척을 할 수는 없었다. 흥 싸이퍼를 하듯 불쑥불쑥 무의식이 뱉어내는 말에 스스로 놀라다가 면접은 끝났다. 당최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요한 것은 모든 일련의 과정이 마무리되었다다. 면접장에서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에어컨 켜고 이불을 귓가까지 올리고 허리 찜질을 할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는 길, 비가 록소록 내리고 있었다.  빈 시선으로 스 밖멍하니 응시했다. 유리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는 창문 밖으로 풍경이 스친다. 바깥은 계속 바뀌 나는 그대로 있는 게 마치 시간과 공간을 건너 통과하고 있는 듯한 낯선 기분이 다.  시험의 결과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갑자기 내린 비에 젖은 빨래마냥 침대에 널려있을 때에도 버스 바퀴는 굴러가겠지. 아이처럼 빗물이 앞유리에 붙어대도 와이퍼는 끼익 끼익 군말 없이 닦아낼 것이다. 버스는  위를 걸으며 하염없이 나아 것이다. 군가 벨을 울릴 때까지. 정거장으로 향하는 버스는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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