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건몬스 Aug 05. 2022

누워서 읽는 '전한길 필기노트'

허리디스크 환자의 공무원 시험 도전기 (1)

발톱이 자랐는데, 깎지를 못하네. 양말 하나 못 신는데 내가 뭘 하겠어, 해는 떴는데, 나는 이렇게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있고, 냉장고가 돌아가는데, 나는 왜 안 돌아가는 거지, 공기 속 먼지도 부유하며 돌아다니는데, 왜 나는 가만히 누워있어야 되는 거지, 나는 뭐지, 와 씨, 날씨는 왜 이렇게 좋지, 나는 이제 어떻게 살지, 저 하얀색 천장에 모니터가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생각하는 게 천장 위 모니터에 글로 적히면 좋겠다, 나는 이제 뭘 해야 되지. 아, 다리 좀 안 저렸으면 좋겠다, 제발.


절망 속에서 내가 선택한 것은 공부였다. 내 몸 상태로 최대한 짜내도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이 시간을 공부해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을까? 9시에 일어나서 밥 먹고 10시에 공부 시작. 10시 30분부터 1시간 휴식. 11시 30분 다시 공부 시작. 2시간 휴식 후 식사. 3시부터 4시까지 1시간 공부. 4시부터 5시까지 휴식. 5시부터 수영장 갈 준비. 물속에서 걷는 재활을 하고 집에 오면 8시. 다시 휴식. 9시 저녁 먹고 10시에 다시 휴식. 11시부터 12시까지 공부. 30분이나 1시간으로 나눠서 공부했고 그 후 1시간을 쉬는 식이었다. 허리디스크 환자가 쓰는 1시간은 다른 사람에게 3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앞뒤로 휴식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3시간 공부하면 하루가 저물었다. 중간에 수영장 가는 것도 포기할 수는 없었다. 통증이 심해 잠을 이룰 수 없었기에 피곤해서라도 자려면 수영장에서 걷기 운동을 하는 것은 필수였다. 그거라도 해야 피곤이 통증을 이길 수 있었고, 그래야 잠을 잘 수 있었으니까.


서서 하거나 누워서 공부했다. 대부분 누워서 했다. 계속 누워있는 것도 허리에 안 좋았으므로 서서 할 때도 있었다. 누워서 할 때는 동영상 강의를 들었고, 서서할 때는 누워서 한 공부의 내용을 정리했다. 책을 한 장 한 장 다 찢었다. 누워서  기출문제집을 풀면 책이 두껍고 무거워 찢어서 들고 공부했다. 문제집이 다 낱장으로 되어있어서 집게로 묶어놔야 했다. 누워서 공부를 하다 보니 어깨와 목이 뻣뻣하고 팔이 저려 병원에 갔다. 목디스크 진단을 받았다. '허리에다가 이제 목까지 난리네. 합격도 못할 공부를 하다가 몸이 더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쓰러질 때도 많았지만 다시 기어가서 공부를 했다.


공부를 놓지 않았던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으면 내 존재 가치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다. 증발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인가를 새롭게 알아가고 배우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성취형 인간이었다. 공부는 새로운 배움의 세계로 인도하는 지름길이었고, 시험을 데드라인으로 만들어 계획을 짜고 그대로 실행해서 목표한 점수를 얻는 일은 짜릿한 일이었다. 3가지가 맞아떨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그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

다른 길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내가 아는 한에서는 이것뿐이었다. 다른 것을 찾다가 시간과 허리 에너지를 허비하느니 아는 것 안에서 착오 없이 실행하는 것이 허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었다. 이 시험으로 얻을 수 있는 최소한의 결과는 불안감 해소였다. 나에게도, 부모님에게도.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허리가 아프지만 제 걱정하지 마세요. 먹고 살길은 있어요"라고 부모님께 말하는 것과 같았다. 운이 아주아주아주 좋으면 합격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어도, 현재에 할 일이 생긴 거고, 다 낫고 공부하면 빠른 시일 내에 합격할 수 있니 바탕만 쌓아놓자는 생각에서 바로 시작했다. (7년 넘게 허리가 아플지는 몰랐다. 3년 정도 고생하면 어느 정도는 나아질 줄 알았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양의 공부를 한다. 그래도 한다. 공부를 하면서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오늘 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스트레스를 얻었다. 내가 생각한 만큼 못하기 때문이다. 한번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싶고, 진도 좀 팍팍 나가고 싶었다. 내 몸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일어나서부터 허리가 콕콕 찌르며 인사를 했고 매분매초 찌르는 탓에 '어, 허리 너 거기 있는 거 나도 알아. 조금만 기다려.'라고 달래며 할 일을 해야 했다. 집중력 최대치는 80%로 시작해 50%로 마쳤다. 어느 정도 허리를 희생하고 정신을 위해서 공부를 시작했던 거였는데, 해야 할 양이 있는데 그것을 못 끝내니까 속상했다. 최소한으로 잡은 목표 양이었는데 '이것도 못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공부를 하면서 머릿속으로 다짐했다.


1. 포기한다. 욕심을 버린다.

2. 첫번째 명제를 잊지 않고 그냥 XX 꾸준히 한다.

3. 운을 기다린다. 시험은 어차피 복불복이다.


내 지금 상태를 인정할 수 없을 때 많았다. 지금의 내가 극도로 싫었다. 마음속에서 자꾸 과거의 건강했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며 싸우고 있었다. 공부는 '이 정도밖에 못하는 나' '한계가 있는 나'를 인정하는 수양의 과정이기도 했다. 과거의 나와 싸우면서 정신적으로 방황을 하고 와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이게 낫다는 결론으로 컴백홈했다. 다시 돌아왔을 때마다 마음에 3개의 문장을 새겼다. '포기한다. 그냥 한다. 시험은 복불복이니까 나한테 그 운이 올지도 모른다.'



공부의 목표를 합격에만 뒀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합격은 두 번째 목표였다. 오늘 내가 공부를 했다는 그 자체가 기쁨이었다. 허리가 아픈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잠을 못 잔다. 낮과 밤이 바뀐다. 새벽에는 더 아파한다. 그래서 더 잠을 못 잔다. 그렇게 악순환이다. 아파서 운동을 못한다. 계속 누워있어야 한다.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시간을 말 그대로 죽여야 한다. 시간을 죽이는 건지, 나를 죽이는 건지, 미래를 상상할 수도 없다. 상상해봤자다. 오늘 하루 계획조차 짤 수도 없으니까. 먼 미래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는 코 앞만 본다. '포기한다. 그냥 한다. 시험은 복불복이다.' 이 3가지만 생각하면서 2가지만 한다. 공부를 하고 수영장에 간다. 이렇게 몇백 번을 반복을 하다 보니 '3번째 문장 : 시험은 복불복'이 현실이 되었다. 합격. 운이 나에게 왔다.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합격하는 시나리오는 정해져 있었다. 어려운 난이도여야만 다. 공무원 시험은 암기력 시험이므로 순공부시간이 많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다. 10시간 이상 공부하는 사람은 시험에 가까웠을 때쯤 하루에 한 과목 기본서를 다 읽을 수 있 정도에 이른다. 5일이면 5과목을 다 볼 수 있어 격에 제일 까워진다. 그곳에 이르기에 나는 절대적으로 공부 시간이 턱없이 모자랐고 회독을 많이 늘릴 수 없는 상황이라 당연히 그 전 공부 기억이 많은 비율로 지워졌다. 때문에 어렵게 나와야 모두가 낮은 점수를 받을 것이고, 그럼 나에게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상하게 다행스럽게도 난 난이도가 높아도 점수가 낮아지질 않았다. 쉬운 난이도여도 어려운 난이도여도 내 점수는 비슷하게 안정적이었다. 무조건 시험이 어렵게 나오길 바랐다. 내가 합격한 해 시험의 난이도는 어려운 편이었고 선택과목은 역대급으로 이야기되었다. 나를 도와줬던 사실 하나 더. 그해에 1년에 한 번 있던 시험이 2번으로 늘었다. 이것도 나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그 운을 얻을 수 있는 준비가 안된 줄 알았는데, 스스로 나를 버리지 않은 대가를 얻게 되었다.



합격한 나이 딱 만 서른이었다. 최종 합격 발표를 통지받은 날엄마 생일이었다. 기묘한 우연이었다. 합격한 기쁨과 앞일의 슬픔이 오묘하게 뒤섞여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감정이 칫거렸다. 합격한 것은 좋지만 회사를 가더라도 허리가 아파서 금방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알 수 없는 력감이 느껴졌다.  한계를 바라보는 가족에게 또 다른 실망을 안겨줄까 싶어 이 소식을 전하는 게 맞을까 루를 고민했다. 엄마 생일날이 저물어가는 밤 11시, 에라 모르겠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생일 축하해. 오늘 뭐했어? 맛있는 거 먹었어?"

"그냥 똑같은 밥 먹었지."

"왜, 맛있는 거라도 먹지.... 엄마..! ... 공무원 합격했어."

"정말? 어유, 우리 딸 고생했어. 잘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소원 없어. 아프지만 마"

"그래도 엄마 생일에 합격했다고 말할 수 있어서 조금 기쁘네. 더 좋은 거 해줘야 되는데 말로 때우네. 미안해"

"이게 엄마한테는 가장 큰 선물이야. 고마워."

"늦게 얘기해서 미안해. 엄마 생일 너무너무 축하하고 잘 자."

"우리 딸내미도 잘 자."

엄마의 울컥함이 물컹하게 느껴졌다. 3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내 가슴속에 시리도록 깊이 남았다. 말하기 잘했다 싶었다. 하늘도 나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이제까지 힘들었으니, 숨구멍 하나 터주는 것 같았다.


아픈 기간이 늘어날수록 마음도 함께 아프게 된다. 아픈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가족도 마찬가지다. 끝이 안 보이는 통증의 터널. 우리는 그 터널 안에서 스스로 희망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은 내 안에 있다. 사람마다 자신이 추구하는 길은 다 다르니 스스로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결국 혼자다. 언제든 나아서 우리가 사회로 나갔을 때 자신감을 채울 수 있는 준비를, 조금씩, 힘들어도, 꾸준히 해야 한다. 통증으로 끝나는 것은 삶의 '일부'이지 삶이 아니다. 우리에겐 삶의 '2부''3부'... '무제한 앙코르'가 기다리고 있.




TMI : 전한길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합격하면 노량진에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허리가 낫지 않아 아직도 갔네요. 멀리서나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선생님의 진심과 열정은 항상 기억하겠습니다. 선생님! 전 '난신즉자'는 아니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누워서 보는 '캐스트 어웨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