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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뚱 Sep 30. 2024

통증의 역습

돌봄의 초기화

나는 알지 못했다. 따로 배운 적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배우려고도 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말이다.


 진료실로 들어서는 순간 오스스할 정도로 싸늘한 기운이 내 피부를 단숨에 차갑게 만들었다. 여기에 구김 없이 반듯하게 다림질된 새하얀 가운을 입은 무덤한 표정의 의사가 한층 더 공기를 차갑게 만드는 듯도 했다. 진료 시간 내내 그는 아무런 감정 없이 가정을 입 밖으로 흘렸고 그렇게 쏟아져 나온 말들은 날카롭고 뾰족한 얼음같이 나의 아픈 발목으로 빠르게 스며들어 고통스럽게 찔러 대 온몸을 순식간에 오싹함으로 뒤덮었다.


 “CRPS(복합부위 통증 증후군)도 의심해 봐야 할 듯합니다.”


 몇 달째 화끈거리고 단단하게 부어 있는 내 발목을 만지며 의사가 뱉은 말이다. ‘입니다’라는 단정이 아닌 ‘할 듯합니다’라는 가정의 말뜻은 엄연한 크기 차이가 하늘과 땅 수준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에게 같은 크기로 느껴져서 절망적이었다.


 “으악, 엄마! 엄마!”


 어느 날 주방에서 저녁 준비로 분주하던 나는 아들의 다급한 목소리에 빠르게 소리의 근원지인 아들 방으로 갔다.


 “엄마, 바선생(아들이 바퀴벌레는 이름부터 징그럽다며 바꿔 부르는 이름) 있어요.”


 무슨 큰일이라도 있는 줄 알고 다급하게 왔던 나는 금세 심드렁해졌다. 그래도 바퀴벌레가 출몰했다니 두리번두리번 성의 없이 아들 방을 눈으로 훑는 시늉까지는 했다. 지금 살고 있는 주택은 화단이 있어 심심치 않게 바퀴벌레가 수시로 우리 구역을 침범해 들어왔다. 그 횟수가 빈번해지자 무감해진 나는 대수롭지 않아 하는 내 모습에 아차 싶었다. 여태 아들 방에서는 발견된 적이 없었는데 기어코 이것들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에 대한 분노가 뒤늦게 찾아왔다.


 아들은 유독 겁이 많아 벌레는 뭐가 됐든 무섭고 징그럽다며 호들갑스럽다. 그러니 버젓이 자신의 영역까지 침범한 바퀴벌레에 놀랄밖에. 여기다 최근 이른 장마로 집 안은 온통 습했고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무더위까지 한몫 거들고 나서니 제 집처럼 허락 없이 들락거리는 바퀴벌레를 나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 됐다. 그렇게 평소 굼뜬 내가 이번만큼은 빠르고 신속하게 결론짓고 벌레 퇴치 업체에 전화해 방문 일정을 잡았다.


 며칠 후 우리 집 담당으로 지정된 업체 직원이 방문해 계약과 방역에 대한 세세한 내용을 설명했다. 예상보다 비싼 금액을 매달 지급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주춤하게 했으나 벌레에 시달리는 것보다야 낫다 싶어 곧바로 계약했다. 현관문을 나서던 업체 직원은 바퀴벌레가 좋아할 장소에 집중적으로 약품처리를 했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날 저녁 유월이지만 급하게 찾아온 반갑지 않은 더위 탓에 일 년여 동안 아무렇게나 방치된 선풍기를 가지러 창고로 갔다. 그곳은 온통 축축했고 어둠이 가득했으며 처음 맡아보는 화학약품 냄새까지 보태져 자동으로 얼굴이 찡그러졌다. 나는 빠르게 형광등 스위치를 찾아 켰다. 전력이 낮아 희끄무레한 불빛에 의지해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곳에서 이른 더위와 맞서 싸워줄 선풍기를 찾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던 중 창고 안 깊숙한 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기쁨에 얼른 몸을 움직여 손을 뻗어 집어 든 순간 예상보다 무거운 무게에 몸의 균형이 흐트러졌고 그 상태에서 한 발 옮겼다. 벌레를 잡기 위해 집중적으로 약품 처리한 곳은 창고였고 평소보다 미끄러운 바닥이 마치 빙판이라도 된 듯 그 위에서 발이 허우적거리다 볼썽사납게 미끄러졌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났다. 순간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해 나의 왼쪽 발목이 창고에는 어울리지 않는 제법 엔틱한 수납장을 브레이크 삼아 멈춰 섰다.


 “으아악!” 


 삽시간에 단말마의 비명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치 급브레이크로 도로 위 스키드마크라도 남기듯 내 왼쪽 복숭아뼈 위에 선명한 상처를 남겼다. 두 손은 자동으로 아픈 발목을 움켜잡았고 금세 팅팅 부어올랐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발을 딛지 못할 정도는 아니어서 그 발목으로 창고를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약상자를 찾아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연고를 발라 밴드를 붙였다. 그때는 정말 자고 일어나면 통증과 부기는 언제 그랬냐 싶게 가라앉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원 상태로 돌아올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다음 날 일어나 보니 발목은 과히 찬란했다. 상처 주위로 전날 없던 얼룩덜룩한 피멍이 발 전체를 덮었고 부기는 더 했으며 상처 주위로 통증까지 상태가 전날보다 훨씬 더 나빠진 상태였다.


 이날은 시댁에 제사가 있었다. 내 발목 상태로는 빠지는 것이 당연했으나 그러진 않았다. 시어머님의 역정이 두렵기도 했고 발을 디딜 때 통증이 심하지 않아 스스로 꾀병이라도 피우는 걸로 타인이 오해할까 불편한 마음이 맏며느리인 나를 억지로 시댁에 가도록 했다. 제사 음식을 만들고 상을 차리는 몇 시간 동안 서서 움직였더니 발목은 코끼리 발목으로 대체됐고 통증으로 밤새 앓다 자다 깨다 반복하며 밤의 위로를 받으며 아침을 맞이했다.


 그래도 곧바로 병원을 찾지 못했다. 주말이기도 했고 의료대란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던 때라 응급실을 찾기 죄송한 마음에 스스로 아우성치는 통증을 상비약으로 준비된 진통제로 일시 정지 버튼을 눌러 놨다. 그렇게 발목의 아픔은 나에게 호소하지 못하게 꾹꾹 눌러 놔 스스로 재생능력을 빼앗아 버린 듯 좀처럼 낫지 않는다. 시간이 제법 지나 부기는 줄었으나 통증은 더 심해졌다. 의사는 상처로 보면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나아도 벌써 나아야 했다고 했다. 상처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게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것이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다고 했다. 


 좀처럼 낫지 않는 발목의 통증은 나를 점점 더 뾰족한 송곳으로 만들었다. 통증에 온통 예민해진 신경은 작은 일에도 날카롭게 사람들을 대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돌보지 않은 나를 원망한다. 좀 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든다. 온전히 내가 나로서 건강해야 주변도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알겠다. 다소 늦은 감은 있으나 지금에라도 좀 더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오늘도 내 상처를 돌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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