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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끼 Aug 09. 2022

김훈, 하얼빈

포수, 무직, 담배팔이

 김훈 씨의 ‘칼의 노래  재미나게 읽어 이번에 나온 신간을 시켜 보았다. 알고 보니 이문열 씨가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불멸이라는 소설을  것을 알았다. 이문열  소설도  재미나게 읽은 기억이 있기 때문에 만약  사실을 ‘하얼빈 사기 전에 알았더라면 고민을 했을  같다. 김훈 씨의 소설이 나와   맞는  같다.  책도 하룻밤 사이에  읽었다. 감상들이 여럿 들지만, 대표적으로 하얼빈에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 총구는  흔들린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 서른한 살에 죽기를 각오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하는 감상이 들었다.



여러 화자의 시점으로 소설이 전개된다. 차마 말하지 못하고 삼킨 말을 생각으로만 표현한 것도 퍽 마음에 들었다. 주된 화자는 안중근과 이토다. 하얼빈으로 향하는 두 사람의 여정이 각각의 입장에서 진행된다. 꽤 마음에 드는 전개 방식이었다. 개성 만월대에서 순종과 같이 사진을 찍은 이토의 의도와 그 사진을 보고 이토를 식별하는 안중근을 보며 퍽 재미난 연결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에서도 나오는 안중근 의사가 감옥에서 집필한 ‘안응칠 역사’를 많이 참고한 책 같았다. ‘안응칠 역사’는 안중근이 빌렘에게 하는 고해성사로 마무리가 된다고 한다. 이 소설에서도 그 장면이 나온다. 어떤 고해성사를 했는지는 표현하지 않았다. 옥리들이 곁에 있으므로 작은 목소리로 말하라고 요청하는 빌렘 신부에게 안중근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그 단단한 마음에 균열이 생겼는지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작가의 고심이 반영된 장면 같았다. 어떤 식으로 표현하더라도 괴리감이 있었을 거 같다.



당시 조선 대목구장 뮈텔 주교가 안중근의 의거를 살인으로 규정하고 그를 교회를 벗어난 죄인이라고 지칭하는 장면도 나온다. 안중근에게 세례를 준 빌렘 신부조차 안중근의 의거를 죄로 규정한다. 당시 정치적 상황 때문에, 통감부가 지배하는 조선에서 천주 교회가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 안중근의 시선을 통해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그 이후로 많은 시간이 흘러 김수환 추기경이 당시 교회의 판단을 그른 판단이라고 안중근의 의거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고 발언했다. 불경스러운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이러한 발언 또한 결국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안중근의 거사를 죄라고 규정한다면 천주교회가 생존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안중근의 거사를 죄로 규정한 뮈텔 주교나 의로운 일로 규정한 김수환 추기경이나 그 저의에는 천주교회의 생존이라는 공통된 목표가 있었으리라 생각한다면 약간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우덕순이란 사람을 알게 된 것도 유익이었다. 어렴풋이 들어는 봤지만, 하얼빈 의거에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는지는 잘 알지 못했다. 안중근과 우덕순의 담백한 대화가 좋았다. 마음이 태산 같으면 이렇게 담백할 수 있을까, 마음이 물 같으면 이렇게 평온할 수 있겠냐는 생각을 했다. 죽음 앞에 의연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다. 인내를 옷처럼 입고, 신념을 양식처럼 먹자는 다짐을 종종 하지만 나는 아직 작은 시련에도 의연하지 못한 거 같다. 서른한 살에 죽는데, 허망하지 않고 의연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금 죽는다면 당연히 허망할 테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고 죽으면 의연할 수 있을까? 안중근은 언제부터 죽음을 준비했을까? 죽음에 관한 서술은 생각보다 적은 거 같아 퍽 아쉬운 부분이다.



감정적인 요소가 없고 담백하게 글을 이어 나가는 것이 김훈 씨의 장점인 거 같다. ‘칼의 노래’와 같이 냄새 서술도 종종 나온다. 특히 안중근이 의병 활동을 하다가 실패하는 대목도 정말 담백하게 묘사하여 오히려 좋았던 거 같다. 작가가 대놓고 가치 판단하지 않아서 내 가치 판단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어느 누가 삶이 아쉽지 않을까, 의연하게 죽는 것의 의미를 거듭 말하는 거 같다. 죽음은 삶의 종착지인 동시에 삶의 완성이다. 죽음이 없으면 삶이 완성되지 않는다. 글로 비유하면 죽음은 탈고이다. 옛날부터 만주를 유람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하얼빈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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