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끼 Jan 16. 2023

브레이스웨이트, 러시아 히스토리

저주받은 질문

 이 책은 알라딘 추천 마법사가 내게 추천한 책이다. 꽤 나의 취향을 저격한 거 같다. 솔직히 수박 겉핥기 식의 역사서일 거 같아서 사지 않으려 했으나 표지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결국 사게 되었다. 표지가 독수리? 같은데 러시아의 상징이 독수리인 이유가 이 책에서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 하나였다. 

책을 짜임새 있게 구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읽기도 쉬웠다. 키예프 루시부터 푸틴까지의 천년 역사를 나름의 설득력을 가지고 구성했고 어색함 없이 이어갔다. 물론 영국 사람이 쓴 러시아 역사라는 점은 알고 있어야 한다. 어렴풋이 러시아가 비잔틴 제국의 후예이자 제3로마를 자처한다고 들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던 거 같은데 이 책을 읽으면서 러시아 사람들이 비잔틴 제국을 특히 정교회 수호의 입장에서 꽤나 비중 있게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의 생각을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이 비잔틴 제국의 유산이 러시아 역사에 미친 부분이 상당하다는 생각도 든다. 러시아의 상징이 독수리인 이유도 로마의 상징인 독수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근데 왜 나는 러시아 하면 불곰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러시아와 비잔틴 제국을 연결시킨 것이 저자의 새로우면서도 획기적인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서방에서는 흔히 '타타르의 멍에'를 러시아가 유럽과 달라진 이유로 꼽곤 한다. 몽골의 지배를 받았기에 그 특유의 전제적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것이라고 여긴다. 이어지는 저자의 반박이 타당했다. 러시아는 사실 몽골 지배 이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당시 시대상에서는 러시아가 특별하게 전제적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어인의 지배를 수백 년 동안 받았던 스페인을 예시로 들면서 스페인이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다고 해서 유럽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고 강변한다. 나조차도 러시아의 전제적 문화가 몽골 때문일 것이라 나름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었다.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여제를 거치며 알렉산드르 1세가 나폴레옹을 격퇴시키며 러시아는 강대국으로 부상한다. 당시 러시아 문화를 탐구한 부분이 무척 재밌었다. 특히 19세가 러시아 소설의 주인공들이 무언가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예시로 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알료샤나 백치의 미챠는 모두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의 주인공이라서 반가웠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스로운 바보'라는 러시아만의 독특한 인물상이다. 이 부분은 무척 재밌기도 하면서 러시아 소설을 많이 읽어본 사람으로서 무척 공감하는 대목이었다. 그러면서 19세기 러시아의 저주받은 질문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의 잘못인가'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인류를 구원하는 역할을 러시아가 맡았다고 생각했다. 슬라브 민족주의로서 당대에 많은 러시아 지식인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서방과는 다른 정교회 신앙도 러시아인들의 독특한 역사관과 국가론을 형성하는 것에 영향을 끼쳤다. 물론 저자가 직접적으로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당대의 러시아 지식인들은 사실 내 나라가 인류 구원의 역할을 맡은 것이 아니라 인류사에 저주받은 나라가 아닐까?라는 저주받은 질문을 쉬이 떨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김훈, 하얼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