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글쓰기-마다가스카>
갑자기 이런 식으로 결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예비 시아버지님이 중요한 행사를 앞둔 지금 결혼해야 축의금이 많이 들어올거라고 결혼을 권유하셨다.
결혼 이야기를 꺼내자 아빠는 화를 냈다.
사랑하는 막내딸이 결혼하니 서운해하시나 했는데..
서른살까지 집에 돈 보태주고 결혼한다고 했으면서 2년이나 빨리 간다고 하는 게 화의 이유였다.
양쪽 아버지의 의견은 반대이나 이유가 같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결국 돈이었다.
시작이 어쨌든 간에 남들은 결혼 준비하며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싸울 일이 없었다.
그냥 대충 대충 물건을 사고 식장도 드레스도 크게 별 신경쓰지 않고 골랐다.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단지 어렸을 때부터 사귄 장수 커플이니 장꾸 기질을 발휘해서 결혼식을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
남들 다하는 평범한 결혼식은 절대 하고 싶지 않았다.
말을 타고 들어오면 어떨까?
특이한 옷을 입으면 어떨까?
친구들을 이용해서 이벤트를 하면 어떨까?
이러 저러 의견들을 냈지만 집안의 첫번째 결혼인 시가에서는
중요한 결혼식을 장난처럼 하면 안된다며 경건하게 해야 한다 하셨다.
싫다고 거절하기엔 우린 착했고 어렸다.
결혼 식장엔 각종 정치인들의 화환이 가득 세워졌다.
내가 상상한 예쁜 결혼식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안그래도 말을 버벅거리는 녀석이 사회를 맡겠다고 해서 불안불안했는데...
시아버지가 불쑥 불쑥 들이미는 정치인들 명단에 진땀을 빼며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이상한 증상을 보이는 친구의 모습이 너무 웃겼다.
내 결혼식만 아니라면 박장대소 했을텐데...
안타깝게도 인생에 한번 있는 내 결혼식이었다.
부모님들은 지방에 계시고 우리 둘이 온전히 준비했던 결혼식이라 하나부터 열까지 신경쓸 일이 많았다.
하지만 신부는 드레스를 입고 가만히 앉아 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을 기다리기만 해야했다.
손님도 맞아야 하고 식장 일도 처리해야 하고, 여기 저기서 오는 전화도 받아야 하는 남편은 정신이 하나도 없어보였다.
얼른 나도 나가서 도와주고 싶은데 내가 일어나서 뭐 좀 할라치면
드레스를 잡아주는 도우미 분이 이런 날 신부는 조신하게 앉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기분이 상했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억지 미소를 지으며 예쁘게 사진을 찍었다.
남편은 나 몰래 축가를 준비했다.
남들과는 좀 다른 결혼식을 하고 싶었던 나는 뻔한 축가가 아닌
노브레인의 'Little baby' 반주가 나오자 응어리가 다 풀어지는 것 같았다.
'잘했어! 칭찬 도장 100개! 이리 와, 얼른 와, 같이 춤을 춰야지.'
남편이 얼른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
'간주가 너무 길잖아. 네가 와야 내가 움직일 수 있단 말이야.'
드레스가 너무 길어 한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다.
내 자리에서 살짝 흔들어도 넓은 드레스에 티도 나지 않았다.
남편은 목석처럼 제자리에 서서 그 신나는 노래를 불렀다.
나를 위한 축가임에도 내 눈빛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가창력에만 온신경을 집중하는 듯했다.
에라이..망했다.
결혼식이 다 끝나고 가족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시가쪽 친척들이 아직 다 오시지 않았다.
친정쪽 식구들은 모여 있으니 이쪽 먼저 찍어 달라고 하니 도우미 아주머니가 또 한번 신부는 가만 있으라고 했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억지 표정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아주머니를 쏘아보았다.
"먼저 준비됐으니 여기부터 찍을 거에요. 제 결혼식이에요!"
아주머니 팔을 뿌리치며 친정 식구들을 불렀다.
마지막 말은 그대로 했는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아주머니가 그 다음부턴 내 눈치를 보며 가만 있으란 말을 하지 않았던 기억만 난다.
주제가 <마다가스타>인데 내가 왜 이렇게 결혼 이야기를 길게 하느냐...
이제 시작이다...
망한 결혼식과 대조적으로 준비한 돌잔치 이야기가...
돌잔치는 집안끼리 화합하는 자리도 아니었다.
아이를 낳은 부모이니 우리도 어른되었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준비할 수 있는 행사였다.
진짜로 축하하지 않는데 억지로 오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으면 했다.
그래서 양쪽 가족과 진짜 친한 친구들만 부르기로 했다.
실, 돈, 청진기 등의 돌잡이는 구태의연했다.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는지 남편과 이야기하다보니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들이 나왔고 그 덕목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들을 선정했다.
그리고 우드락에 붙이고 아이가 손으로 잡을 수 있게 입체감 있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 하나의 덕목도 양보할 수가 없어
결국은 모두 실로 연결해 놓고
아이가 한개를 잡으면 모두 따라올라오도록 결혼식 때 못한 장꾸 기질을 발휘했다.
업체에서 만들어주는 뻔한 돌잔치 영상이 싫었다.
영상 편집 카페에 가입하고 파워 디렉터를 깔고
아이가 잘 때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영상 만드는 작업에 몰두했다.
영상 편집을 하다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었다.
부모님과 찍은 사진이 정말 별로 없구나 생각하며 울기도 했고
영상이 원하는 대로 구현되면 우리는 천재임이 틀림없다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우리 가족을 잘 모르는 사람이 찍어내듯 이끌어가는 부자연스러운 진행도 싫어
사회도 남편이 맡기로 했다.
우리에게 돌잔치는 1년 동안 건강하게 자라준 아이에 대한 축하일 뿐만 아니라
못다 이룬 결혼식 꿈의 실현이었다.
날짜가 다가오자 하루 하루 설렜다.
'다른 돌잔치와는 급이 다른 행사가 될거야.'
'사람들은 모두 감동의 눈물을 흘리겠지.'
남편은 그 기다림을 참다 못해 예고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고편 바탕 영상이 <마다가스카>였다.
마다가스카 영화 예고편 영어에 맞추어 자막을 우리 마음대로 짜맞추어 넣었다.
딱딱 맞는 라임에 감탄이 나왔다.
장난에 진심이며, 잔머리의 대가인 남편에게 이때부터 존경심이 생겼다.
싸이월드에 영상을 업로드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나중에는 후회했다. 이렇게 환상적인 돌잔치에 사람들을 더 초대할 걸.
왜 광주에서 식을 진행했던가.
물론 우리 둘만의 대화다.
첫째의 돌잔치에 영혼을 불사른 우리는 둘째 돌잔치는에는 쌀과 실과 청진기를 놓는 평범한 돌잔치를 진행했더란다.
더 이상 꿈의 무대가 필요치 않아서.
평생에 한번 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이 결혼할 땐
아이들의 의사에 모두 맡기려고 한다.
내가 아이들 일에 자꾸 관여하려고 하면 이 글을 읽은 분들이 날 말려주시길...
p.s. :안타깝게도 돌잔치 예고편 영상 파일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네요.
지금도 보기만 하면 감동이 몰려오는
<마다가스카>예고편을 첨부합니다.
Madagascar (2005) Trailer #1 | Movieclips Classic Trailers (youtub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