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글쓰기-장수풍뎅이>
감사 일기쓰기 과제에 아빠에 대한 고마움을 쓴 아이가 있었다.
집에서 키우던 사슴벌레가 죽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누었단다.
엄마는 묻어주자고 했고 아이는 표본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단다.
아빠는 아이의 손을 들어주었고 인터넷으로 방법을 익히시더니
레진(뭔지는잘 모르겠다.) 비율을 어떻게 어떻게 하시더니 표본 만들기에 성공했다고 했다.
그래서 아빠에게 너무 고맙다고 일기를 썼다.
읽는 내내 아름답고 화목한 가정의 모습에 흐뭇한 웃음이 지어졌다.
우리반 신문에 싣기 위해 한글 문서로 워드를 쳤으니 글을 몇 번이나 더 읽고
꼼꼼히 본 셈이다.
며칠 뒤 아이가 표본을 가지고 왔다.
"선생님 이거에요."
"그 장수풍뎅이구나."
아이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가 틀려서 부끄러워할까봐
"아..그건 아니고 사슴벌레에요." 라고 조심히 말했다.
그랬구나. 뿔이 두개 달리면 사슴벌레, 하나 달리면 장수풍뎅이였지.
우리집 둘째가 수십번 퀴즈를 내곤 했었는데 또 그새 잊어버렸다.
그 아이의 글을 읽는 동안 아빠의 따뜻한 마음과 그걸 고마워하는 아이의 진심에 감동했지 주인공이 사슴벌레인지 장수풍뎅이인지는 나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별 관심이 없었나보다.
우리 첫째는 어릴 때 '보조개'를 '조보개'라고 이야기했었다.
무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퀴즈 내기를 좋아하는 둘째는 내게 사슴벌레와 장수풍뎅이 퀴즈를 내듯
첫째에게
"형, 조보개야,보조개야?"
하고 느닷없이 문제를 내곤했다.
그때마다 첫째는
"보조개?조보개? 이번엔 확실해 조보개!"
머리에 정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걱정했었는데..
이제 알겠다.
첫째는 보조개에 영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보조개도 없고 주변에도 별로 없으니까..
좋아하는 여자애 매력 포인트가 보조개였다면 상황은 달라졌겠지만...
자고로..관심이 있는 곳에 답이 있다.
지금은 우리반 아이의 당황하는 표정이 기억나서 정확히 뿔 두개면 사슴벌레로 확실히 내 머릿 속에 각인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면..
아마 난 또 그 커다란 징그런 벌레가 사슴벌레인지 장수풍뎅이인지 관심이 일도 없어질지 모른다. 솔직히는 지금도 큰 관심은 없으니까..
아직까지 나에게 장수풍뎅이는 딱 그만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