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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미쪼 Aug 19. 2024

취향을 정정합니다.

<주제 글쓰기-음악>

나는 막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남편은 제대 후 학교를 다니던 시절..

돈이 넉넉치 않아 공연을 예매해도 2층이거나 

1층이어도 R석은 포기하고 뒷 자리 S석을 선택해야했다.  

어쩌면 그래서 뮤지컬보다 연극을 더 좋아했던 건 지도 모르겠다.

뮤지컬은 좋은 좌석 구하기가 어려웠고 연극은 소극장 공연 위주라 좀 더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형님(남편의 형)이 뮤지컬을 워낙 좋아했다. 

괜찮은 뮤지컬을 예매하고 무심하게 툭~ 

"영주랑 보고 와."라며  츤데레의 매력을 발산해 주셨다.

그 동안 배우들 머리통만 보던 우리는 형님 덕분에 배우와 눈을 마주치며 공연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하지만 그래도 뭔가 조금 부족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잠깐 어깨를 스친 남녀가 노래 한곡 부르면 갑자기 목숨을 바칠 만큼의 사랑에 빠지고..

두꺼운 뿔테 안경에 타이핑 치는 소심한 성격의 남자였는데 노래 부르더니 슈퍼 히어로가 된다. 

노래 가사에서 전환을 알리는 의미 심장한 내용이 나왔을텐데..

정확히 가사가 들리지 않았고..

대사 연기 없이 노래만으로 표현되는 감정 표현에 나는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여자 한명이 가운데서 손과 다리를 마구 휘저으니 

4명의 남자가 그 여자에게 빠져서 뭐라고 뭐라고 괴롭네, 사랑하네

자기 감정을 노래로 표현하는데, 도대체 왜 저 여자가 좋은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대사 한마디 없이 노래로만 이루어진 성 스루(sung through)라

공연이 끝날 때까지도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는다.

노래가 그렇게 좋고 감동이 몰려온다는데..

두번을 봤는데도 아직도 모르겠다.

아크로바틱을 하는 무용수들 외에는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 유명한 <노트르담 드 파리>도 나에겐 그저 잠이 쏟아지는 공연일 뿐이다.


그래서 내 취향을 단정지었다.

"난 뮤지컬보다 연극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빨래>를 만났다.

역시 형님이 예매해주셨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맨 앞자리였다. 

지금까지 본 뮤지컬 중에 제일 좋다고 하셨다. 

그래도 기대가 없었다. 뮤지컬은 뮤지컬이지 연극이 아니니까.

줄거리를 모르고 봐야 재미있을 것 같아 아무 정보도 없이 관람을 시작했다.

재미있는 에드립에 빵빵 터지고 공감되는 스토리에 안타까워하다가 

주인공이 부르는 노래에 눈물이 와르르 쏟아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남편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우는 나를 보고 더 울었다고 했다.  

<빨래>는 대사로 이루어진 부분이 많아 뮤지컬보다는 연극에 가깝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래서 더 음악에 힘이 실린다.

스토리 전개에 딱 맞는 노래, 인물의 마음에 녹아들게 하는 가사, 

한국 정서를 건드리는 멜로디..

음악이 없다면 큰 감동을 전해줄 수 없는 완벽한 뮤지컬이다.


<빨래>는 2003년 한예종 졸업 작품이다. 

서울의 일상을 그린 한국 창작 뮤지컬이며 교내에서 공연하고 반응이 좋아 2년 뒤부터 상업 무대에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2005년부터 2024년까지 쉼없이 관객석을 가득 메우며, 젊은 배우들의 스타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생들의 졸업 작품이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외국 작가가 쓴 책을 읽으면 핵심을 딱 짚지 않고 주변을 뱅뱅 돌며 뭔가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한국 작가의 책을 읽으면 

이해가 쏙쏙 되며 가려운 곳이 해소되는 느낌을 받는다.

수십만원을 주고 해외 라이센스 뮤지컬에서 뭔가 아리송한 느낌을 받을 때 

<빨래>를 보면 '그래, 이 맛이지!' 내 마음을 후벼파는 무언가가 있다.   


첫 장면에 모든 배우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부터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난다.

지금까지 다섯번을 봤다. 공연이 끝나지 않는 한 앞으로 수십번은 더 볼 예정이다.

내가 <빨래>를 계속 보는 이유는 스토리 때문도,  배우 때문도, 무대 때문도 아니다.

음악 때문이다.

음악이 자꾸 내 마음에 잽을 날리기  때문이다.


<빨래>를 만나고 취향을 정정했다.

"난 뮤지컬도 연극도 다 좋아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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