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글쓰기-아찔했던 순간>
분명 미리 갈 수 있었다.
변명을 하자면.. 아이들 없을 때 해야하는 집안일들이 쌓여 있었고
유달리 추웠고, 이불 덮고 누워 드라마를 보며 귤을 까먹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 갔을 때 누리는 몇 시간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자식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테니 그녀를 이해해달라 애원하고 싶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참으로 예뻤던 날..
그녀는 어린이집에서 온 아이들에게 TV를 틀어주고 간식을 한아름 안겨주었다.
그리고 아파트 바로 앞에 있는 마트를 향해 유모차를 끌고 걸어갔다.
마트갈 때 유모차는 카트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지금은 메뉴를 고민하고 장보는 걸 세상 싫어하는 그녀이지만..
그때만 해도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카트를 끄는 그 느낌이 참 좋았다고 한다.
유모차의 아이 앉는 공간까지 장볼거리로 꽉꽉 채우고...
그녀는 집으로 오는 동안 눈 내리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느리게 걷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사진도 찍고 싶고 음악을 들으며 그날의 분위기를 즐기고 싶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파트 몇 개 동을 지나 멀리서 그녀의 집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을 보았다.
드라마에서 느리게 편집해서 주인공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집중하게 되는 그런 장면..
분명히 카봇을 보며 TV 앞에 앉아 있어야 할 둘째가 환하게 웃으며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뛴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 러너가 내의를 입고 본인의 최고 속도로 질주하고 있었다.
유모차를 팽개치고 아이에게 달려갔다.
아이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도 아이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날아가듯 뛰어가는 슬로우 장면의 주인공 답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덥석 뒤에서 안자 엄마를 보고 여전히 환하게 웃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는 뭐가 그렇게도 좋은지 흡사 부처님의 염화미소가 아닐까 하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
눈이 예뻐서일까?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이었을까? 전날 놀았던 놀이터가 멀리 보여서였을까? 엉망인 그녀와 대비되게 아이의 표정은 환희에 가득찼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아이를 부둥켜 안고 안도감에 한참을 울었다.
영문을 모르는 첫째는 분위기를 보니 조용히하라고 말할 상황은 아니었는지 꾹 참고 TV를 보았다.
아이가 달려간 길은 100미터도 되지 않아 아파트 밖과 연결되었고,
만약 눈오는 길을 즐기다 몇걸음만 느리게 왔어도 그녀는 아이를 보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 냉장고 정리를 하고 한참 뒤에야 아이가 사라졌음을 발견했을 터였다.
아이가 손을 뻗으면 현관 손잡이를 잡을 수 있을만큼 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동생이 나갈 때까지 혼자 TV에 빠져있는 첫째가 원망스러웠고
아이들만 놓고 나갈 생각을 한 스스로가 미웠다.
아이들이 없는 시간만 기다리며 이불 속에 파고들어 드라마를 보았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하늘에서 이번 한번만 봐준다고 앞으로는 진짜 잘하라고 기회를 주는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는 아이들만 놓고 나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어제 길에서 실종 아이를 찾는다는 현수막을 보았다.
당시 나이 7세, 현재 나이 37세라며 추정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 먹먹해졌다.
p.s: 아이를 잃어버릴 뻔한 상황은.. 생각하는 것만으로 너무나 끔찍해서
'나' 대신 '그녀'를 소환함을 이해해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