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주팔자에 있던 토(土)가 그런 의미였나
서른이 넘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해석하지 못하는 사람을 철부지라 했다. 나만의 때, 시기, 계절, 철 모르는 사람, 철부지(不知). 그러나 스스로의 삶을 해석하기 위해선 생각보다 통합적인 영역의 공부와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더라.
블로그에 명리학 공부한 내용을 업로드 한 뒤에 산책을 나갔다. 걸으면서 찬찬히 내 삶에 대해 반추해 봤다. 알듯 말 듯 잡힐 듯한 그 느낌.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사색의 내용을 하나로 정리해보려 한다. 이 또한 나라는 사람이 어디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에 대한 지도의 한 조각이 되리라는 것을 알기에.
지난 몇 년간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늘 더 높은 곳을 향해 질주하던 사람이 잠시 멈춰 서서 나 자신으로 머무르고 돌아보는 시간. 이 시기를 잘 보내지 않으면 몇 년이 지나서 또다시 '나, 나, 나' 하면서 나 자신에 갇혀 살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찰나의 깨달음이 지나가지 않도록 기록 또 기록해본다.
* 이전 글을 참고하시면 더 재밌을 거예요
오행이 제법 고른 편이다. 금이 많은 사주이긴 한데 그래도 다섯 가지의 원소가 알차게 다 들어가 있다. 그중 단 하나 있는 토의 기운 未土(미토)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다. 다만 나의 월주가 의미하는 바가 '뭔가 성공할 것 같은데 마지막에 삐끗하는' 그런 느낌이라는 해석을 들어보긴 했다. 재주 많은 원숭이가 나무에서 미끄러진다나.
돌이켜보면 늘 그랬다. 어디든 합격운이 있는 편이다.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심사위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겠는 느낌. 이 회사에 합격하기 위해 지원서에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독후감 대회에 우승하기 위해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 선생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어떤 반성문을 써야 하는지. 나는 그냥 그런 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대회에서 곧잘 상도 받고, 혼나야 하는 상황에 반성문 잘 썼다고 칭찬도 받고, 영재로 선발돼 집중 교육과 외국 연수도 다녀오고. 공부도 잘했다. 한 마디로 뭔가를 성취한다는 게 늘 내겐 수월했던 편이다.
미토를 가진 사람들은 나와 비슷할 것이다. 그 이유는 미토의 기운이 완성되기까지 어떤 기운이 있었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자축인묘로 시작하는 12 간지에서 미(未)는 여덟 번째에 자리 잡고 있다. 앞의 7개 글자가 '자축인묘 진사오'다. 중간에 같은 토 기운인 '진'자를 제외하면 나무와 불의 기운을 의미한다. 새벽과 낮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 새마을 운동의 산업 역군 이런 거 떠올리면 된다. 그래서 근대성이고 그래서 남성성이다. 쉽게 말하면 '사회적 성공을 이룰 수 있는 DNA가 내재된 사람'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다.
재수 없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맞다. 오만하고 교만하다. 그게 나의 그림자 같은 면이다. 사람을 무시한다. 세상을 무시한다.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콧대는 언젠가 꺾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게 운명에도 각인되어 있단다. 미토의 기운을 타고난 사람들이 마주한 삶이다. 미토의 기운은 시간으로 따지면 한 낮을 살짝 비켜간 오후 한 시부터 세 시의 시간. 여전히 뜨거운 시간은 맞지만 세상의 꼭대기에 올랐던 태양은 이제 저물기 시작하는 시간이다. 저무는 것은 필연이다. 받아들여 우아한 착륙을 준비하거나 처참히 처박히거나.
뭐든 잘했으니 부모님의 기대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미토를 가진 사람들은 여성과 어머니의 후원을 받는다고 한다. 어머니들이 부자가 많단다. 내가 태어나서 우리 엄마는 더욱 부자가 됐을까? 아니면 내가 돈을 많이 벌만한 엄마를 골라서 태어난 걸까. 언젠가 아들, 딸 미국에 유학 보낸 교수님께서 뭐 네가 그렇게 돈을 많이 썼냐고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후원이 단순히 돈을 의미하는 건 아닌 듯하다. 엄마는 나를 위해 인생을 바쳤다.
만약 내가 금의 기운을 조금만 덜 가진 사람이었다면. 부모님이 원하는 딸이 될 수도 있었을까? 고시 행시 패스해서 그럴싸한 직업을 갖고 말이다. 분명 엄마는 지구 끝까지 지원해 줬을걸. 그런데 어쩌겠나. 금을 이렇게 많이 타고난 걸! 인생이 아이러니한 이유는 엄마를 실망시키는 것 마저도 내 팔자에 이미 예견되어 있다는 거겠지. 이래서 서른 넘어서야 사주 보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레퍼런스가 있어야 해석도 가능하다. 정해진 미래라도 이미 살아보지 않고서는 예측할 수 없다.
사실 살면서 마치 프리뷰처럼 정점을 맛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첫 번째는 외고에 갔던 경험이다. 남들보다 인 서울을 3년 일찍 해본 총평은 '내가 이러려고'였다.
처음에는 신분상승의 짜릿한 느낌이 얼마나 좋던지. 나처럼 공부하면 안 될 거라며 무시하던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준 것도 속이 시원했다. 그러나 잠깐이었다. 아직 어른이 덜 된 아이들의 정글은 가면을 쓰며 살아가는 어른들의 사회보다 훨씬 잔인했다. 건강한 아이라면 잘 버텼을 수 있겠으나 당시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심각한 심리적 우울감을 경험하던 내게는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단순히 말하자면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계급이 나뉜 느낌이랄까. 남들은 대학 가서 느끼는 박탈감을 일찍 맛본 것이다.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해봤자 그 끝이 이런 건가 싶었던 게 당시 나의 심정이었다. 어쩌면 maybe 나한테 화와 목의 기운이 더 발달했더라면 잘 순응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금이 많아서 생각이 많은걸 어쩌겠어~ 그렇게 타고난 걸. (사주를 힐링으로 쓰는 좋은 예)
두 번째는 대사관에서 일했던 경험이다. 대입에 실패하고 실패자의 인생을 만회해야 했다. 내 20대는 무너진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빛나는 왕관을 쓰기 위해 사회가 원하는 삶을 만들어가는 여정이었다. 아, 지금 생각해보면 고등학생 때 고민 쫌만 덜하고 그냥 공부했으면 20대를 세이브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한 번 갖고 깨달으면 그게 인간인가. 나는 다시 자축인묘 진사오의 리플레이를 살아야만 했다.
마침내 기회를 얻었다. 외교부에서 선발하는 인턴으로 당당하게 대사관에 입성했다. 내 커리어의 시작점이 외교 공관이라니! 외국어 좀 하고, 해외 경험 있는 우리 세대의 반기문 키즈들은 누구나 한 번쯤 외교관이 되는 꿈을 꿔봤을 것이다. 정점을 맛볼 두 번째 기회였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현실을 봤다. '내가 이러려고' ㅋㅋ.
화려한 공관, 면책 특권, 외교관 여권, 고급스러운 주거 지원. 그러나 실상은 아무리 의미를 부여해도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하는 공무원. 사명이 없다면 그냥 직장인. 그러나 외교관의 삶은 현지에 녹아들 수도 없는 영원한 이방인의 삶이다. 더 최악인 건 처음 시작한 위치가 끝 지점을 결정한다. 그런데도 그런 게 특권인 것처럼 오로지 외무고시를 통과한 이들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지독한 신분사회였다.
분명 더 다채로운 경험을 쌓고 그 국가를 더 잘 이해하는 행정직원이 있었지만 같은 한국인인 이들도 다른 계급이었다. 왜 이래 조선 시대야 뭐야. 더 슬픈 건 교민 사회에서는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대사관에서 일하는 것이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삶으로 여겨졌다는 거다. 이 짧은 경험으로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도 사라졌다. 삶은 어디서나 비슷했다. 외국에 살아도 집, 직장, 가끔 교회 등 커뮤니티. 우리 엄마 아빠의 삶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대학원에 들어갔고, 페미니즘 리부트에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며, 평창 올림픽과 패럴림픽에 발을 걸쳤고, 어릴 적부터 꿈꾸던 회사에서 정규직 자리도 얻었다. 그런데도 돌이켜보면 불행하고 또 불행했다. 도대체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다는 이 느낌은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선생님이 말하길. 미토를 가진 사람들 중 금, 수 기운이 강한 사람은 "최근 정신적으로 기둥뿌리가 흔들리는 혼동을 온몸으로 느꼈을 것이며,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2020년(경자년)에 알았을 것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그즈음부터 나 자신에 대한 탐구가 시작됐다. 학력 콤플렉스, 커리어 점프를 위한 도구, 약간의 지적 호기심이 버무려져 들어간 대학원의 졸업 논문을 준비하던 나날이었다. 이 젊은 날을 언제까지 도서관에 앉아서 보내야 하나 정신적 우울이 찾아왔을 즈음 나는 깊이 침잠하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나의 내면과 마주하게 된 것이다. 나의 삶, 나의 내면, 나의 정신적 우울, 공허함과 불안함, 그 모든 게 밀려들었다. 지난 2년은 살면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나날이다. 가만히 있어도 영혼에서부터 울컥 토해내듯 올라오는 눈물을 쏟아내고 또 쏟아냈다.
내가 사주를 소재로 이렇게 긴 글을 적고 있다니. 사실 신기한 일이다. 나는 나의 마이너 한 관심사를 드러내 놓지 않고 살았다. 어릴 때부터 타로 카드에 관심을 가졌고, 영혼, 영성, 마녀, 원석 등의 주제에 끌림을 느껴왔지만 공개적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의 흐름이 바뀌는 걸 감지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영혼을, 명상을, 끌어당김의 법칙을, 에너지와 주파수를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곤 한다. 더욱이 그런 주제를 자유로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고 있다.
그렇게 연결된 사람들과 또다시 2년을 매일 공부했다. 공부를 하다 보니 더 처절히 알게 됐다. 교만하고 오만하게 살아온 내 삶의 과오를. 돌이켜보면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기회 뒤에는 누군가의 실패와 희생이 있었다. 모든 게 쉬웠던 내 삶은 혜택 받은 삶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더 달라고 더 내놓으라고 세상에 떼쓰고 있더라. 막상 가져보면 그렇게 좋아할 것도 아니면서. 지난날 정점에 올랐을 때 내가 경험해본 것처럼. 이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나는 지금 유엔이나 국제기구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더 높은 커리어 사다리를 오르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근데 놀랍게도 관심이 딱 사라졌다. 내 삶의 뜻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 혜택 받은 삶에 대한 자각을 기록한 글
여전히 어려운 질문이다. 그럼에도 로고테라피에서 말하는 '삶의 의미'라는 것을 감안하고 답해보자면 책임을 다하며 살고 싶다.
이런 운명을 타고난 나는 언제까지나 좋은 기회를 계속해서 얻어낼 것이지만 늘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대화가 통하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것을 갈구하고 공부할 것이다. 나는 언제든 사회가 도덕적이라 가리키는 방향을 거부하고 윤리적인 삶을 고민할 것이다. 기존의 구조를 깨부수고 혁신을 외치는 불편한 인간으로 남을 것이다. 내가 들어가는 조직은 늘 침몰하는 배일 것이기에 죽어가는 정신을 붙들기 위해 정신적 역마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운명을 힘껏 껴안고 이 우주에 온 나의 소명에 책임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겠지.
물리학과 우주에 대한 공부를 좋아한다. 지금 이곳에 존재하면서도 다른 차원을 동시에 상상해볼 수 있어서 인 것 같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과거와 미래와 현재는 동시에 존재한다는 것이 물리학의 설명이다. 이런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 <컨택트>의 원작 소설에 나온 문구이다.
어떤 대화가 되었든 헵타포드는 대화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진실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대화가 행해져야 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의 과거를 해석하는 글을 쓰는 내가 있다. 그런데 나는 왜 미래를 쓰고 있다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 걸까.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이 글을 다시 읽을 것이다. 미래의 나는 과거의 나를 마주하며 무슨 생각을 할까? 지금 나의 예측과 해석은 과연 미래에도 옳았을까? 분명한 사실은 이 예측이 진실이 되기 위해선 실제로 삶으로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나간 삶을 해석하며 나는 미래를 그린다. 내가 원하는 미래는 반드시 찾아올 것이다. 이제는 그것을 안다.
* 이 글에서 울림을 느낀 당신께 서비스하고 싶은 나의 열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