完자는 ‘완전하다’나 ‘일을 완결 짓는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입니다. 完자는 宀(집 면)자와 元(으뜸원)자가 결합한 모습입니다. 元자는 사람의 머리를 강조해 그린 것으로 ‘으뜸’이나 ‘처음’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完자는 본래 집짓기를 끝마쳤다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였습니다.
집을 지을 때는 오래 거주할 수 있도록 튼튼하게 지어야 합니다. 그래서 完자는 ‘으뜸’이라는 뜻을 가진 元 자를 응용해 ‘집을 으뜸으로 지었다.’ 즉, 집을 잘 지었다는 뜻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집을 잘 지었다는 것은 공사가 마무리됐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完자는 ‘끝내다’나 ‘일을 완결 짓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습니다.
완벽과 완성은 같은 단어를 품고 있지만 그 뒤에 붙는 단어로 전혀 다른 뜻이 됩니다. 완벽의 사전적 정의는 중국에서 왔는데 ‘흠 없는 구슬’을 뜻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얼마전에 구입한 원석 장식품을 들여다보면 그 모양새가 같은 구슬이 하나도 없습니다. 즉, 완벽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란 뜻이죠.
그렇다면 비교적 실현 가능한 ‘완성’의 뜻을 깊이 들여다봤습니다. 한자어 완(完)은 일을 완결짓는다는 단어인데 본디 집을 잘 지었다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잘 지은 집은 오래 살더라도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또 짓다만 집은 집이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마감까지 완성해야만 하는거죠.
저는 이 뜻을 보면서 제가 살아온 과정이 마치 집을 짓는 과정과도 같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좋은집을 짓기 위해선 설계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개척해 나가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원래부터 주어진 설계도가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야를 넓혀 좋은 집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좋은 설계도 조각을 얻어야 하는거죠.
저는 어려서는 부모님의 소망을 통해 그 조각을 얻었고, 조금 더 커서는 책을 통해 얻었습니다. 그렇게 모은 조각을 조합해 저만의 설계도를 만들어왔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새로운 설계도를 만드는 시간은 언제나 가장 많이 흔들리고 어려운 시기에 찾아오는것 같습니다. 스스로의 가장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서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줘야만 합니다. 사람은 보통 가장 괴로운 시기에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어있죠.
그렇게 만들어진 설계도는 건축 과정에서 다른 자재를 쓸지언정 중심축은 굳건합니다. 재수를 고민할 만큼 꼭 가고싶었던 학교와 학과를 포기하고 진학한 곳에서 그 학교 출신의 지도 교수님을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그럼에도 그런 기적은 왕왕 일어나곤 합니다. 바르게 세운 설계도는 삶 속에서 어떻게든 완성되기 마련입니다.
‘완’이 가진 뜻 중에 특이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는데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형벌’이라는 정의입니다. 저는 이 뜻 속에서 니체가 말한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완성의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크고 작은 상처 속으로 스스로를 내모는 것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자신이 만들고 싶은 집이 스스로 가진것보다 클수록 설계도는 더욱 복잡해지고 해보지 못한 작업들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연히 이전의 나를 죽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갖은 애를 쓰고 괴로운 일들의 연속일 것입니다. 이것이 스스로 선택한 형벌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하지만 그 결말에는 스스로의 만족이 남을거라는 점에서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