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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너지니 Feb 08. 2021

03_뿌리를 다시 돌아보기

사색과 글쓰기로 나만의 시선 세우기



늘 높은 이상을 세우고 그걸 채우지 못하면 스스로와 타인을 비난했던 나였다. 고등학교 시절은 그래서 힘들었다. 공부, 친구, 동아리 활동, 가족과의 관계까지 모두 잘해보고 싶었지만 나의 기준은 높았고, 채울 수 없는 목표에 지쳐 넘어지는 내게 가장 가혹했던 건 나 자신이었다. 그랬기에 10년 가까이 지난 뒤에도 나는 못난 나를 받아들일 수 없어 이리저리 도망쳐왔다.


얼음 조각이 되어버린 과거의 경험은 중요한 순간마다 튀어나온다. '과연 할 수 있겠어?' 같은 의심과 불안의 감정을 끌어당긴다. 나 자신을 믿어주지 못하는 상황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는 거다. 이미 지난 일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더라도 아직 마음이 준비가 안됐기 때문이다. 심리상담을 받다 보면 굳이 트라우마를 끄집어내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마음이 준비되어 있지 않을수록 감당하지 못할 고통에 또다시 찔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색과 글쓰기는 이런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내가 다룰 수 있는 만큼만, 아주 조금씩 꺼내서 나 자신에게 말을 걸었다. 거의 1년 가까이 진행한 이 작업으로 살아오며 겪었던 크고 작은 고통의 본질을 찾아 들어갔다. 그 과정의 마지막에 내가 나를 바라봤던 차가운 시선을 알아챈 것이다. 나의 어두운 마음에 따뜻한 시선을 비춰주니 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저 잘해보려는 발버둥이었고 방법을 몰랐을 뿐이다. 지나 보니 아무것도 아니구나. 참 애쓰며 살았구나. 그렇게 넘어져있는 내게 손을 뻗었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 우봉 조희룡의 수선화. 서양에서는 수선화에 자기애와 내면의 외로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걸 우리 조상들은 알았을까?




그런데 이 깨달음이 단순히 나를 위로하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이만 과거를 놓아두고 오늘에 집중할 수 있을 만큼 단단해지는 과정을 걸어온 거다. <안목>을 통해 내가 배운건 벼루 10개를 뚫은 추사 선생님의 집념이다. 또한, 자기만의 것을 창조하고자 일생을 바친 수많은 예술가들의 장인 정신이다. 이 모든 배움의 바탕에는 안목가의 통찰이 있었다. 몇 줄의 행장으로 남겨진 먼저 간 이의 삶을 제대로 알고, 쓰고, 수집한 사람. 유홍준 선생님의 따뜻하되 예리한 시선이었다.


나보다 먼저 나를 알아봐 주신 교수님은 그런 통찰력을 가진 분이셨다. 어쩌면 교수님은 과거에 얽매여 있는 나를 보셨을 거다. 스스로 걸어온 길을 바라보는 차가운 온도를 감지하셨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그 너머가 있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내 영혼을 꿰뚫어 봤던 교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던, 돌고 돌았어도 꿈을 찾아 멀리 왔던 나를 보신 게 아닐까. 한국에 돌아온 뒤 용기를 내어 교수님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제야 모든 통찰이 적중하게 된 것일지 모른다. 결국 내 안의 송백은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 보려 한 태도였다.


못났던 나의 그림자는 아무리 돌이켜본들 새롭게 써나갈 수 없다. 새로 키운 그릇은 다만 앞으로 다가올 내 삶을 대하는 방식에만 적용될 뿐이다. 그렇게 안목가의 시선을 배우고 나의 존재를 스스로 인정해주는 경험으로 통찰에 대한 나만의 의미를 세웠다.


나의 주변 세상을 따뜻하고 예리한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 무엇보다도 나 자신에게 가장 그러할 것. 그런 안목을 키워가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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