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윤범b May 23. 2024

'브로커'


Baby box에 아이 하나가 버려진다. 어린 여자 한 명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상자 앞에 놓아두고는 사라진다. '꼭 데리러 올게' 그 한마디만 남긴 채로.

종이 위 그 문장을 읽은 남자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구나 말한다. 영화 '브로커'의 시작이었다.



여러모로 '기생충'이라는 영화와 비슷한 구석이 있었다. 비오는 날의 풍경이라던지, 서울과 부산의 별로 바뀌지 않은 오랜 동네의 풍경이 서로 닮은 듯했다. 송강호의 역할, 그가 맞이하게 되는 운명 또한 닮아 그에게서 시작된 영화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모두 재밌는 영화들이었는데 이 영화는 평가가 엇갈렸으며 기술적인 문제마저 지적되었다. 나도 대사가 잘 안 들리는 지점이 몇 군데 있었는데 금방 잊은 일이다. 이 영화가 남긴 여운은 기생충 못지 않고 극장에서 보았더라면 더 그랬을 듯하다. 감독이 무엇을 전하고자 했는지 충분히 이해되었기에 상관없는 일이다. 적어도 그는 영화를 찍으며 스스로를 배반하지는 않은 듯했다. 

한국이라는 나라를 배경으로 한국인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 영화는 일본인 감독에 의해 연출되었다. 나는 그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꼭 그러고만 싶은 것은 난 일본이라는 국가를 배경으로 일본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소설을 쓰려 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촬영이 시작되었을 때부터 동질감 같은 것을 느꼈고, 혹은 왜 이런 영화가 나오나 암담하기도 한 마음이었다. 우연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그는 더 오래 전부터 그런 꿈을 꾸었던 듯하다. 나는 아직도 몇 페이지 쓰지 못했으니. 여전히 갈팡질팡하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도 몰라 막막하니까 말이다.

일본인이 그런 문장을 읽고는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은 어차피 인간은 다 똑같은 거 아닌가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다. 놀랐던 건 그 감독이 나보다 그 동네 풍경을 많이 접하지는 못했을 텐데 그런 장면들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기울어진 길을 똑바로 보아 강처럼 비치게 했던 것이다. 그 동네는 엄청나게 굴곡지다. 계단도 무시무시하게 많고 말이다. 십여 년 전 수많은 날 내게 많은 아이디어를 준 동네였는데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홋카이도라는 섬을 난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묻게 했다.

그 길을 아이유가 걸어 내려온다. 난 그 가수가 처음에는 정말 좋았는데 점점 그런 마음을 잃었다. 그에게는 그런 시도가 어울렸는지 모른다. 사람들이 그 가수 그 배우를 좋아하는 건 연기력이나 가창력 때문이 아닐 것이다. 외모 그리고 이미지일지도. 난 아이유가 부른 노래 중에 좋아하는 노래가 거의 없는데 김광석의 '꽃'을 불렀을 때 진정 감동했다. 뭐랄까, 남자들만 알 것 같은 감수성을 드러낼 때 진짜 그의 매력이 느껴진다고 할까.



욕도 하고 무시무시한 일도 저지른 그였다. 영화이니까. 그럼에도 아프게만 다가온 것은 오로지 감독의 연출력 때문이었나. 그를 둘러싼 배우들의 힘도 무시할 수 없었음을. 

주연 외에도 아주 작은 역할을 부여받은 연기자들 또한 엄청난 내공을 발휘한다. 가장 신선했던 얼굴은 이주영이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몇 년 전 한 편 본 적 있다.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는데 그 감독의 특기가 아닌가 싶었다. 보이시한 여성 캐릭터를 잘 꾸며낸다고 할까. 또 축구에 진심인 이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축구공을 등장시키고 말았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심각한 고민 속에 있었다. 그 아이는 누구의 아이이며 결국 누구의 품에 안길 것인가 묻는 듯했다. 그렇게나 멋진 배우들 사이에 있으니 행복해 보이기만 했다. 아이유가 엄마고 강동원이 자길 보살펴주는데...



강간 당한 여성과 불법 체류자가 낳은 아이, 혹은 아주 어린 여자가 낳은 아이 등이 그 상자에 넣어진다고 한다. 태어남은 슬픈 일이다. 그들 운명은 처음부터 무참히도 가혹하다. 나와는 관계 없는 일임에도 그 감정들이 와닿은 건 무엇 때문인지. 나는 나를 이해할 수 없으나 때로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 한다. 그때부터 진정한 고통이 시작됨을. 아무 질문도 하지 말라, 누군가에 충고할 수 있다면 꼭 그런 말을 하고 싶다.

이 감독이 영화를 통해 찾으려는 건 가족의 의미처럼 보이지만 내 눈에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나는 자꾸 다른 것을 읽으려는 듯하다. 그 속에서 나를 찾는 일임을. 우린 모두 버려진 신세라는 공통적인 물음 속에 웃음 지어야 한다. 진실이라면 태어나자마자 웃는 아이는 없다는 것. 그 아이는 곧 웃는 법을 배운다. 그래도 나를 놓지 않은 손이 있어서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들과 산다. 만약 출산이 불법이라면 우린 모두 브로커의 손에 길러진 것인지 모른다.


브로커, 2022/ 고레에다 히로카즈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거나 떠나거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