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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Mar 24. 2024

익명(匿名)의 가면(假面)

 "내가 이야기했나? 내가 아는 사람하고 진짜 어딘가 모르게 비슷하다니까."


 살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바로 '평범한 얼굴' 혹은 '닮은 얼굴'이다. 어렸을 때 어떤 친구와 함께 있든 "둘이 형제죠? 꼭 닮았네."라고 했고, 전혀 모르는 사람과 버스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어린이가 "우와, 쌍둥이다."라며 신기해했다. 학창 시절에는 한 반에 거의 삼십 명이 같이 수업을 들었는데 선생님은 일 년 내내 나를 다른 친구와 전혀 구분하지 못하셨다.


 얼핏 보면 다르다고 느끼는데 유심히 볼수록 구분하기 힘들어했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정작 나는 비슷한 점을 하나도 찾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계속 그런 식으로 나오니 부정하기보다 그러려니 하며 적응하는 쪽을 택했다.


 군대에서는 그런 상황이 더 심각했다. 같은 군복을 입고 같은 모자를 쓰고 같은 군화를 신고 있으니 누구도 나를 나로 보질 못했다. 그들은 당황하는 모습을 숨기기 위해 무시하는 척하기 일쑤였다. 


 물론 서운하지 않았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마치 내가 없는 듯이 행동하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고립감을 느꼈음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의구심을 품기도 했다. 정체성의 상실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려나?


 거울 속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면 나 또한 헷갈렸다. 거울이 얼굴을 흩어놓고 재조합하면서 시시각각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는 듯했다. 솔직히 무섭기도 했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어항 안에 물감을 풀고 그 무늬를 보거나 하늘에 떠있는 구름을 보며 무엇을 닮았는지 상상하는 것처럼 내 안의 다른 형상을 찾아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사진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단체 사진에 찍힌 사람들 틈에서 나를 골라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주변 사람들에 녹아들어 경계가 모호했으니까. 독사진이나 증명사진도 보는 사람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항상 불편한 일만 벌어졌던 것은 아니다. 적절하게 이용하면 곤란한 상황에서 수월하게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누구도 내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백이면 백 다른 사람으로 오해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질러도 딱히 혼나거나 벌을 받는 경우가 드물었다.


 특히 요즘은 아주 재미있는 일에 빠져있다. 일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어찌 되었든 제법 큰돈을 받고 하니까 일이라고 하는 게 합당하겠다. 암암리에 나를 찾아와서 그들이 내미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잠금장치를 풀기 위해서는 얼굴 인식을 해야 하는데 불법적으로 얻은 타인의 스마트폰이기에 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부르는 게 값이지만 과한 욕심은 금물이다. 재능이 빛을 발하면 많은 사람의 눈에 띄기 마련이니까.


 오늘도 유명 정치인의 비서가 찾아오기로 되어있고,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는 병원장의 집에 잠깐 방문해야 한다. 출장의 경우는 보수가 두 배가 됨에도 의뢰가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다.


 나는 그들에게 Mr. Nobody라고도 불리고, Mr. Everybody라고 불린다. 당신은 나를 못 보겠지만 나는 항상 당신 주변에 있다. 당신이 알법한 누군가의 얼굴을 하고. 혹은 당신의 얼굴을 가면으로 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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