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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호 Jun 04. 2024

자전거 라이딩의 맛

 초여름의 새벽은 지난 낮의 열기가 식어 상쾌한 기분이 들 정도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글거리는 태양이 고개를 내밀면 금세 후끈 달아오르겠지만 그전까지는 시간이 충분하다.


 자전거를 타고 텅 빈 길을 달리다 보면 잡념은 사라지고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과 대화가 가능해진다. 며칠 후면 익숙한 일상 속으로 돌아가야 하겠지만 당장 지금은 주변의 나무와 가까이 보이는 바다를 그저 만끽하면 된다.


 바다의 영향일까? 이른 시간에 이렇게 달리다 보니 허기가 썰물처럼 밀려오긴 한다. 표현에 어폐가 있긴 하지만 내 느낌이 그렇다.


 자전거 라이딩에 여러 매력이 있겠으나 자동차 운전과 다른 점을 하나 굳이 꼽자면 일종의 맛집이라는 점이다. 계절이나 지역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고 기상천외하다. 가끔 아내나 아이에게도 권하는데 내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를 넘어 마치 커다란 개구리라도 본 듯 인상을 쓴다. 개구리가 무슨 죄라고.


 지금 달리는 곳은 골프장을 끼고 있는 해안이다 보니 다채로운 맛이 미각을 자극한다. 예전에는 제대로 된 맛을 느끼지 못해 버겁기도 했고, 간혹 크기 때문에 여운이 오래가기도 했지만 지금은 산지직송만이 가지고 있는 감칠맛을 오롯이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다. 여행을 오면서까지 꾸역꾸역 자전거를 싣고 오길 정말 잘했다.


 물론 나도 처음에는 이런 맛을 몰랐다. 반감을 가진 쪽에 가까웠다고 하는 편이 솔직하겠다. 위험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며, 말하기 민망한 특정 질병을 유발한다는 소문도 돌고, 딱히 권하는 사람도 없었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힘껏 속도를 끌어올린다. 그래도 과식은 금물이다. 뭐든 과하면 탈이 나는 법이니까. 적당히 달렸으면 이제 슬슬 방향을 돌려야 한다. 맛에 이끌려 한도 끝도 없이 폭주하는 상황은 달갑지 않다.


 숨이 가빠지면 입은 자연스레 받아들일 준비를 한다. 에너지를 쓰면서 동시에 바로 채우는 꿈의 무한동력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게다가 에너지원이 도처에 널렸으니 그저 누리면 된다.


 미식가들이 그러는 것처럼 중간중간 챙겨 온 물로 입안을 헹궈서 맛이 뒤엉키는 것을 방지한다. 김밥이나 만두처럼 여러 가지 재료가 한데 어울려 맛을 내는 음식도 있지만 식재료 본연의 맛을 찾아내기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윽! 이건 뭐지? 

 매연 맛이 지독하게 난다. 아무래도 주변에 많아진 차들이 내뿜는 배기가스 때문인 듯하다. 점점 훼손되어 가는 극도로 순수한 맛을 과연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쌩~

 내 옆을 질주하는 차량에 내가 미처 소화하지 못한 맛들이 들러붙어 사라진다.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녀석들을 떠올리면 입맛이 뚝 떨어진다.


 숙소에 가까워오자 아쉬움에 자전거를 구르는 힘이 약해진다. 마지막으로 입을 한껏 벌려 본다. 그래 이 맛이야. 젠장 내일 새벽에는 비가 온다던데. 빗물에 씻겨 나갈 행복이 아쉽기만 하다.


 쩝쩝. 

 입맛을 다시며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아내가 등짝을 후려갈긴다.     

 

 “인간아! 아니지. 이건 인간이 아니지. 또 벌레 먹고 다녔어? 자전거 타러 나가서는 무슨 벌레를 그렇게 먹는 거야?”     


 맞은 곳을 문지르고 싶지만 손이 닿지 않아 잔뜩 인상을 구기는데 어느새 나타난 딸도 한 마디 거든다.     


 “맞아! 아빠 그런 얼굴이 바로 벌레 씹은 얼굴이어야 한다고.”     


 미래의 먹거리를 미리 체험하는 나의 깊은 뜻도 모르고. 바보 같은 모녀. 너희는 그러다가 나중에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최근에 자주 자전거를 타면서 경험한 일을 소설로 만들어 봤습니다. 혹여나 비위가 상하신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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