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진 지 어느새 10년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속되던 언쟁,
상대방을 비방하고 악랄한 저주를 퍼붓던 말들은 물론이고
칭찬과 격려 그리고 희망이 담긴 어떤 메시지도 이제는
어디에서도 듣지 못한다.
누구라도 어떤 말을 내뱉고 나면
그 즉시 주변사람들이 달려들어 처참하게 응징을 가한다.
간혹 술에 취해서 웅얼거리라도 하면
사람들은 신경을 곤두세운 채
혹시 말을 한 것은 아닌지 귀를 기울인다.
아이가 태어나면 어릴 때부터 글은 가르치지만
말은 완벽하게 금기시되어 있다.
거의 대부분의 갓난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성대나 혀를 잃게 된다.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단 걸 눈으로 본 순간
믿어보기로 했지'
유명인이 불러 한 때 유행했던 노래는
가장 끔찍한 곡으로 선정되어
이제는 완벽하게 사장되었다.
처음에는 이랬다.
말만 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
사람들은 거침없이 말들을 내뱉었다.
"저런 새끼들은 죽어도 마땅해."
"가다가 확 자빠져서 다리가 부러져라."
"저 나라는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으면 좋겠어."
하나같이 그동안 담아놨던 말들을 거침없이 내질렀고
세상은 순식간에 패닉에 휩싸였다.
말은 씨앗이 아니라 잘 익은 열매였다.
그래서 각국의 정부는 나쁜 말을 내뱉기만 해도
살인, 상해, 테러 등의 죄목을 들어 처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들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아이가 서울대학교 의대에 붙게 해 주세요."
"올림픽 금메달을 따게 해 주세요."
"불로장생하게 해 주세요."
"로또 1등에 당첨되게 해 주세요."
"돌아가신 아버지가 살아 돌아오게 해 주세요."
인류는 더 큰 혼란에 빠져들고 말았음은 당연했고
서로 상충되는 말들은 더 큰 목소리를 가진 자들이 우세를 점했다.
그와는 별개로 신에게 가까워지고 신이 되려고 했던 자들은
사태의 심각성과는 별개로 여전히 활동 중이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신의 의도라는 이유를 들어
하나로 똘똘 뭉쳐 동시에 한 목소리를 낸다.
그동안 인류가 가져왔던 생활 패턴과는 180도 달라진 삶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과거를 그리워하고 있다.
말하는 대로 되지 않던 그 시절.
아무리 외치고 노력해도 닿을 수 없는 것은 닿지 못하던 그때를.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이 되어도
우리가 꼭 하고 싶은 말일 지라도
아무도 입 밖으로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침묵이 점령한 '묵언의 시대'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다.
그나저나 배고파서 죽....
헉! 큰일 날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