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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카 Sep 28. 2021

음악은 수단인, 가족 이야기

<코다>(CODA, 2021), 션 헤이더 감독

▲ 영화 <코다> 촬영 현장

초콜릿과 된장, 호랑이와 바다처럼 딱 봐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있다.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과 소리로써 구현되는 음악은 분명 그런 조합 중 하나일 것이다. <코다>(CODA)는 공존할 수 없어 보이는 농인과 음악이 가족이라는 틀 아래에 엮여 있는 영화이다. '음악의 꿈을 꾸게 된 소녀와 그녀의 노래를 듣지 못하는 농인 가족'이라는 아이러니한 설정이 익숙지 않지만 흥미롭게 다가온다.


겉보기에 신선한 이 조합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야기한다. 가령 루비의 어머니 재키는 딸이 가족에게 불만을 품고 치기 어린 마음으로 합창단에 들어간 것이라 오해하는가 하면, 루비가 버클리 음대에 붙지 못하고 상처 받을까 봐 불안해한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녀는 루비의 재능을 알지 못하기에 자녀의 성공을 확신하고 응원해주지 못하는 것이다.


이들 가족이 마주한 현실 역시 만만치 않다. 생업을 위해 통역을 해 줄 사람이 필요하지만 통역가를 고용할 형편은 안 되는 가족은 구성원 내 유일한 청인인 막내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반면 루비는 또래 친구들처럼 풋풋한 연애도 하고 싶고, 흥미와 재능이 있는 음악에도 열중하고 싶다. 그녀는 치열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어떻게든 사랑과 음악, 그리고 가족을 모두 끌어안으려고 노력하지만, 흘러가는 상황은 자꾸만 그녀를 선택의 기로로 내몬다.


▲ 영화 <코다> 스틸컷 ©판씨네마

그리고 대망의 가을 콘서트 듀엣 무대, 관객석에 앉은 가족들은 처음으로 무대에서 노래하는 딸을 마주한다. 루비의 노래가 시작되고 카메라의 초점이 후경의 루비로부터 전경의 가족으로 이동하는 순간, 모든 소리가 빠르게 사그라든다. 아름다운 피아노 반주부터 관객의 손바닥이 자아내는 마찰음까지, 소리 한 점 허용하지 않는 고요한 농인의 세계이다.


합창단 선생님이 감탄하고 친구 거티가 거듭 칭찬한 루비의 노래를 그녀의 가족들은 듣지 못했고, 앞으로도 평생 못 들을 것이다. 관객석에 앉은 프랭크는 무대 위의 딸을 두고 고개를 돌려 가며 주변 학부모의 표정과 몸짓을 살핀다. 그것이 무음의 세상을 살아가는 그가 딸의 음악을 느끼기 위한 최선의 몸부림일 것이다. 농인 배우 트로이 코처가 연기하는 프랭크는 매사 덤덤하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남자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흐려진 그의 두 눈동자에 자괴감이 넘실거린다.


집으로 돌아온 프랭크는 루비에게 노래의 내용을 묻고, 딸의 성대의 울림을 손바닥으로 느껴 본다. 목을 잡힌 채 노래하는 소녀와 소녀의 멱살을 그러쥔 그녀의 아버지. 사정을 모르는 이가 보면 경악할 광경이지만, 평생 소리 없이 살아온 이가 딸의 소리를 상상하며 더듬거리는 손짓은 필사적이기까지 하다.


▲ 영화 <코다> 스틸컷 ©판씨네마

일련의 사건 끝에 루비는 음악을 포기하고 가족 곁에 남기로 결정하고, 그런 루비를 본 가족들은 그녀를 데리고 버클리 음대 오디션장으로 향한다. 농인 가족, 청인 딸, 그리고 음악. 결코 연결될 것 같지 않던 이것들. 그럼에도 가족들은 루비의 음악을 느끼고자 했고, 그녀는 그들에게 전하고자 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게 된 버클리 음대 오디션에서 루비는 결국 해답을 찾는다. 노래하는 소녀의 늘어뜨린 양 팔이 천천히 위로 들리고 서로가 눈을 맞추는 순간, 오디션장에 울려 퍼지는 <Both Sides Now>와 함께 마침내 그들은 하나가 된다.



<코다>는 <라라랜드>, <물랑 루즈>의 음악 감독 마리우스 드 브리스와 <라라랜드>, <스타 이즈 본>의 음악 프로듀서 닉 백스터가 함께한 영화이다. 편곡되어 영화에 등장하는 명곡들은 역시나 거를 타선이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하지만 여타 음악 영화들과 달리 <코다>에서만큼은, 가족의 갈등, 화해, 성장의 수단으로서 음악이 기능할 뿐, 음악 그 자체보다는 가족의 이야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 만약 멋진 노래만을 기대하고 <코다>를 찾는다면, 루비 가족이 선사하는 생각지도 못한 울림에 흠뻑 빠진 채 극장을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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