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우리 민법은 재판상 이혼에 관하여 유책주의를 기본적 태도로 견지하고 있습니다. 즉, 재판상 이혼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청구인의 무책성과 피청구인의 유책성을 요합니다. 또한 유책주의에서 유책성의 판단은 법률에 제한적으로 열거된 사유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따릅니다.
보다 쉽게 풀어서 설명하자면, 협의이혼이 아닌 이혼소송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법률에 규정된 유책행위를 저질렀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있어야 하고, 이를 통해 상대방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음이 드러나는 반면에 청구를 하는 당사자는 책임이 없어야 합니다.
따라서 당장 어느 누구에게도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예컨대 성격 차이로 서로 대화가 잘 되지 않거나, 배우자가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등) 이혼소송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이처럼 '이혼사유가 없는' 상황을 넘어서, 오히려 유책배우자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소송을 제기하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편의상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민법의 원칙에 입각하여 살펴본다면, 절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반드시 불가능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왜 원칙적으로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이 불가능한지는, 앞선 문단에서 설명드린 내용으로 충분히 이해가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민법은 혼인 파탄에 책임 있는 사람에게 그 책임을 물어 일방적 이혼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므로, 오히려 본인이 유책행위를 저지르고서도 혼인관계를 유지하려는 배우자에게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본다면 본인이 스스로 유책배우자인데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이혼하라는 판결을 얻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실무상으로는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나 불가능하지는 않습니다. 물론 본인이 외도 사실을 들킨 뒤에, 배우자는 오히려 관계를 회복하려 하는데 본인이 배우자와 살기 싫어서 이혼소송을 제기하여 자유의 몸이 되려고 하는 경우처럼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민법이 유책주의를 택하는 본질적 이유가 축출이혼의 금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승소 가능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이라는 것이 이렇게 극단적 사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이 가능하게 되는 원리로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여기서는 우선 한 가지에 대해서만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법제에 따라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유책주의가 아니라 파탄주의를 택하고 있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재판부가 이혼 청구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결정할 때, 유책행위의 유무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혼인관계가 파탄 상태인지를 따져보는 것입니다.
파탄주의는 결국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더 이상 혼인관계를 강제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구태여 유책행위의 당사자가 누구인지, 과연 유책행위가 확실하게 존재하는지를 따져 물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논리에 입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앞서 말씀드렸듯 유책주의를 견지하므로 파탄주의의 입장은 아니며, 현재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민법 제840조 제6호의 규정은 파탄주의의 태도를 일부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을 제기할 때에는 바로 이 6호사유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유책주의 법제 하에서는 배우자의 유책행위로 마음이 상한 배우자가 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보복의 방법으로, 오랜 기간 이혼을 절대 해주지 않으면서 남남처럼 살아가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단기간이라면 배우자의 마음이 상한 것을 이해하고 수용하며 노력해야 하겠지만,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에는 유책행위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고통을 감내해야 하고 오히려 그 배우자는 혼인관계를 보복의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는 오래 전부터 충분히 예견되었고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사례이므로, 판례는 이미 전부터 이런 상황에 대한 해법을 내놓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상대방이 오직 오기에 의하여 이혼청구에 응하지 않을 뿐이고 혼인관계 지속의 의사도 보이지 않으며 혼인관계도 파탄에 이르렀다면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을 받아들여 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많은 위자료를 받고 이혼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당장 이런 상황에서는 위자료의 액수보다 이혼청구의 인용 여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근래 법원은 이 파탄주의의 태도를 점차 많이 첨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책배우자라 하더라도, 상황상 이미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렀다면 먼저 소송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에 이르러야 파탄이라 할 수 있는지는 명확히 규정된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별거 중이고, 서류상으로만 부부일 뿐 실제로는 부부라고 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생각된다면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해볼 수 있습니다.
쉽지 않은 소송인 만큼 사전 검토는 필수적
물론 유책배우자이혼소송 역시 그 난이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본인이 불륜을 저질러 서로 따로 살게 되었고, 별거 기간이 30년이나 되었으며 서로의 왕래도 끊긴지 오래되었다는 등의 사례라면 상대적으로 높은 가능성에서 접근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당장 유책행위가 있었던 시점이 오래 되지 않았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혼청구 자체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통의 이혼소송 즉, 유책배우자에게 이혼 및 위자료,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사건도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사건입니다. 그런데 유책배우자이혼소송은 다른 사안과는 달리 이혼 청구가 인용되느냐 하는 선결과제를 해결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사건입니다. 당연히 이 산을 어렵게 넘어섰다 하더라도 재산분할이나 양육권 등의 문제는 동일하게 발생합니다. 법리 검토부터 철저해야 하고, 때로는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무조건 소송이 가능하다는 보장은 없으므로, 유책배우자로서 이혼소송을 제기하고자 하신다면 반드시 사전에 철저한 검토를 받아 진행하시기 바랍니다.
이혼전문변호사 이 성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