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로어스 후기
우주는 들여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나의 거울이다.
나의 질문은 '만약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인간을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과학책을 읽거나 물리 이론을 접하면 생각이 점점 우주를 향해 펼쳐지고 넓어진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주위에는 알 수 없는 암흑물질뿐이고, 광범위한 시공간에 혼자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든다. 그러다가 생각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나는 왜 살아갈까? 라는 의문이 들면서 인간의 정체성을 고민해보게 된다. 인간을 생각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사랑이였다. 책을 읽고 나니 사랑이 시간과 닮아있다고 느꼈다. 애틋함이라는 감정만 보아도 사랑과 시간이 버무려져서 생기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시간과 사랑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정할 수도 없지만, 본능적으로 느낀다. 저자는 우리가 당연히 체감하고 늘 느껴온 시간이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우리가 직관적이고 마음으로 느껴온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이런 사고의 흐름으로 만약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 라고 가정한다면 인간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인간은 사랑 없이 세상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궁금해졌다. 우주를 향한 질문을 던졌지만, 다시 인간을 향한 질문으로 귀결되는 것이 신기했다. 어쩌면 인간은 인간 그 자신 속만 맴돌다 죽는걸지도 모르겠다.
스몰토크로 태연님과 이 질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졌다. 태연님은 어떤 사람을 생각하는 것도 사랑의 일종이고, 어쩌면 인간이 누군가를 생각하는 모든 것이 사랑의 일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말씀하셨다. 인상 깊은 말이었다. 증오가 가득한 사람도 계속 떠올리다 보면 애증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덕분에 나의 사랑의 형태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또 사랑의 정의가 '정의 내릴 수 없음'이라고 하셨다. 정말이지 사랑을 정의 내리려는 건 나 자신을 해부하는 것 같다. 사랑을 마주할 때면 행복하고 달콤하기도 하지만 고통스럽기도 하고 치부를 드러낼때도 있다.
몸 안의 사랑이 고여서 썩지 않게 받은 사랑을 주변에 전파하고 싶다.
흥미로웠던 질문은 필로소셜 질문인 '오늘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였다.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면서 사람마다 생각하는 오늘이 이렇게나 다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어제와 내일은 없는 것이고, 최근의 기억이 이어 붙여진 범위까지를 오늘이라고 생각했다. 이 질문으로 인해 하루하루 살아갈 때마다 오늘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고민해 볼 것 같다.
시간은 인간에게 달려온다. 난 늘 술래가 아니었기에 일단 달렸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토의하며 시간은 결코 술래가 아니며 순례의 동반자임을 깨달았다.
세미나 후
가장 좋아하는 색, 파랑이 그 어느 곳보다 개성 있게 활용되어 눈이 즐거웠다. 해체주의적인 디자인은 잠시 구경할 때는 신선하지만, 입고 생활 하다보면 눈과 몸에 피로감이 몰려올 것 같다. 옷의 상표 디자인을 보고 마르지엘라가 떠올랐다.
운석이 지구에 흔적을 남기고 소멸하듯, 나도 인간에게 예술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