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Nov 04. 2024

베지밀

늙은 부모님이 밤늦도록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신고였다. 이따금 소중한 사람의 신변 확인을 부탁하는 신고가 들어온다. 직감이란 게 때로는 무서워서 현장에 나갔을 때 열에 한 번은 사건 사고가 기다리고 있다. 다쳤거나, 죽었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나. 신고자는 멀리 살아서 당장 부모님을 뵈러 올 형편이 못 된다고 말했다.


부모님 집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차를 몰았다.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다. 가는 길목에 식당 건물이 눈에 띄었다. 가게문은 일찌감찌 닫고 꾸물거리는 TV화면에 멍하니 시선을 고정하고 계신 사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을 열고 물었다. ”사장님. OOO 어르신 혹시 못 보셨나요?“


”누구요?“


”OOO 어르신이요.“


”그게 누군데.“


식당을 끼고 뻗은 좁은 길을 쭉 따라 들어갔다. 오 분쯤 갔을까, 중절모를 쓰고 길에 퍼질러 앉은 영감님과 낑낑 대며 그걸 일으키려는 등이 다 굽은 할머님의 모습이 헤드라이트 안쪽으로 쑥 들어왔다. 노부부였다. 대원 둘이 한 사람씩 부축해 구급차에 태웠다.


집 가까이에 주차를 하고 술기운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영감님을 들것 채로 내렸다. 할머님이 보행기를 끌고 앞장섰다. 영감님을 자기 방 침대에 누이고 현관문을 나서려는데 할머님이 우릴 불러 세웠다. ”이거 가져가서 드셔요.“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바닥 위로 베지밀이 놓였다. 나는 생전 베지밀을 안 먹는다. 그런데 어제는 먹고 싶어서 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찮아서 죄송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