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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숙이 Nov 12. 2024

호미다점虎眉茶店

소설-가문의 비밀 3



참이한테는 가게를 보라고 시킨 정일이 김이 오르는 작설차 한 잔을 들고 지하로 내려갔다.

남아 있던 참이는 아직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믿어지거나 실감 나지는 않았다. 단지 열만 받아 끓고 있었다.


“사천 살? 웃기시네. 새파랗게 젊게 생겨 가지고는. 왜 울 아빠한테 막 대하는 거야. 거기다 뭐, 나는 하룻강아지? 그럼 자기는 호랑이 할아범이다! 씨!”


백범에게 함부로 굴면 안 된다는 아빠의 부탁이 있어 제대로 된 욕은 차마 할 수 없었지만 도통 분이 풀리지 않았다.


‘내가 엄마랑 지낼 때에도 저 인간이 있었으니까 아주 젊은 게 아닌 건 맞는데. 아, 인간도 아닌가? 아으, 모르겠다. 머리 복잡해.’


참이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는 순간 근심걱정 다 털어버린 정일이 백범과 같이 가게로 올라왔다. 정일이 참이에게 벼락같은 소식을 던졌다.


“참이야, 이제 걱정 안 해도 돼. 여기 백범님이 네 옆에서 지켜주신데. 그니까 어딜 가더라도 꼭 백범 님하고 같이 움직여야 된다.”


참이가 펄쩍 뛰었다.


“에에? 싫어. 가뜩이나 집에 갇혀 있어서 친구들도 못 만나고 재수 학원도 못 가는데 이젠 혹까지 달고 있으라고? 안 해.”


정일이 그런 참이를 살살 달랬다.


“그니까 같이 나가라고. 백범님이 옆에 계시면 너 가고 싶은데 다 갈 수 있어. 올해는 대학도 가야 하는데 계속 쉴 수도 없잖아. 친구들도 만나고.”


그건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며 참이가 사정했다.


“아빠, 친구들한테 저 사람을 뭐라고 말해? 안 돼. 그냥 집에 있을게.”


팔짱 끼고 느긋이 듣고 있던 백범이 한 마디 툭 던졌다. 그 말에 참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아직도 덜 당했구먼. 정일, 자네만 속 타나 본데. 하룻강아지라 아는 게 없어 그런가.”


“뭐라고요? 이 아저씨가 진짜? 누구보고 자꾸 하룻강아지라고 하는 거예요?”


둘 사이에서 정일이 사정했다.


“정참, 아빠가 아까 뭐라고 했어? 그만 안 해! 백범님, 정말 아무것도 몰라서 그런 겁니다. 제발 저 좀 봐주십시오!”


정일의 사정에 백범이 한 마디 툭 던지고는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올라갔다.


“알았다. 나 좀 더 쉴 거니까 그렇게 알아. 일 있을 때 부르고.”


그런 백범의 등에 대고 메롱을 날리던 참이는 정일에게 딱 걸려 꿀밤을 맞았다.


“메롱이다~!”

“이 녀석이!”

“아야! 아빠!”

참이를 붙잡고 정일이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참이야, 아빠 말 잘 들어. 네가 내 말을 다 믿지 못한다는 것은 아빠도 잘 알아. 하지만 저분이 너 어렸을 때부터 있던 분이라는 것은 기억할 거야. 그리고 이 아빠가 너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안 좋은 일을 한 적 있어?”


아빠 말에 참이의 고개가 푹 숙여졌다.


“아니. 한 번도 없어.”


“그렇지? 그러니 아빠 말 좀 들어. 아무 일도 없으면 내가 아무리 부탁해도 네 옆에 계실 분이 아니야. 그러니까 답답하고 납득 안 돼도 한동안만 참고 있어. 아빠 부탁이야.”


“알았어.”


일어나던 정일이 폭탄 하나를 더 던졌다.


“아, 그리고 백범님은 너랑 같은 3층에 계실 거야. 거기 작은 빈 방 있지? 원래 그분 방이었거든.”


기절할 것 같아 참이가 비명을 질렀다.


“아악! 아빠 이건 아니지. 다 큰 처녀인 딸이랑 외간 남자를 같이 있게 하고 싶어?”


정일이 참이를 위아래 쓰윽 훑어보고는 개가 짖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우리 참이가 다 큰 처녀였나? 그리고 백범님은 외간 남자가 아니야. 아, 네 어릴 적에 기저귀도 몇 번 갈아주셨다. 나 이제 차 덖어야 하니까 넌 가게 청소 좀 해.”


“뭐 뭐 뭐라고? 기저귀? 아악!”          


백범은 3층에 올라와 자신의 방이었던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11년이나 지났는데도 그대로였다. 마치 자신 같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정일의 부인인 이화가 지금이라도 밥 먹으러 안 나온다고 잔소리할 것 같고, 참이가 종알종알 옹알이하며 따라다닐 것 같았다.


‘하! 맞아. 저 하룻강아지는 아가일 때도 겁이 없었지. 대부분의 아가들은 내 옆에 오지도 않고 울기 바빴는데.’


백범은 자신이 보낸 셀 수도 없이 많았던 봄날 중 특별했던 하루가 떠올랐다.


‘그때는 저 꼬맹이가 미친 거 아닌 가 했었지. 느닷없이 와서 뽀뽀를 하지 않나 나를 멍멍이 쓰다듬듯이 쓰다듬지를 않나!’


그 봄날 앞뒤 없는 참이의 행동에 자신은 꽤나 당황했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순간이었다.


‘내가 너 미쳤냐라고 묻는데도 뒤도 안 돌아보고 가버렸지. 그때 잡아먹어버렸어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의 꼬리 끝에 그날이 특별했던 이유 하나가 더 떠올랐다.


‘이화는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알았었던 건가?’


백범은 그날 밤 참이를 재우고 나온 이화가 갑자기 맥주 한 잔 하자고 하며 했던 말이 떠올랐다.

     

“백범님, 우리 참이의 인생을 함께하는 이가 되어 주세요.”


“저 꼬맹이와 뭘 하라고?”


“보호자도 되어 주시고 동지도 되어 주시고 벗도 되어 주시고요.”


“왜 아예 나보고 보모가 되라고 하지?”


“그건 힘들 것 같아요. 백범님이 주무시고 일어나시면 저희 참이는 다 큰 처녀가 되어 있을 걸요. 그냥 참이의 남은 생을 함께 해 주세요.”


“그거야 뭐 내가 이 지긋지긋한 운명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꼬맹이의 죽음을 볼 확률은 매우 크잖아. 뭐 하러 새삼 그런 부탁을 나한테 해?”


“호호 날개옷 입고 하늘로 가버릴지도 몰라서요.”


“어 그거 정일도 알아도 되는 얘긴가? 그 인간 울고불고 난리 날 텐데? 남자가 못나가지고는. 어디가 좋아서 그리 반했누? 하늘나라 선녀님께서.” 


“안 가르쳐드릴 거예요. 총각인 백범님께는 너무 야한 이야기라 호호호!”   

  

아마 사천 년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오는 동안 백범이 가장 많은 이야기를 주절거리게 만든 사람은 이화일 것이다.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같잖은 농담까지 하고 있었다.


‘저 하룻강아지의 대차고 뻔뻔스러운 성격은 영락없이 이화의 것이지. 영생에 가까운 수명을 인간과 살고 그 인간과의 아이를 낳는 대가로 다 날려버리다니. 역시 대단해.’


백범이 자신답지 않게 이런저런 감상에 젖어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방문이 확 열렸다. 거기에는 씩씩대는 정참이 서 있었다.


“뭐냐?”


백범의 물음에 참이가 손에 들고 있는 빨간색 크레용을 들어 보이며 선언했다.


“내가 그어놓은 이 빨간 선 안으로 들어오면 죽을 줄 알아요!”

“쾅!”


벽이 울릴 정도로 세게 닫힌 문을 바라보던 백범의 입에 실금 같은 미소가 그어졌다.


“역시 이화의 딸이군. 성질 하고는.”


슬슬 감겨오는 두 눈에 잠에 빠져들며 백범이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날 죽여줄 수 있겠나, 꼬맹이?’     




“스스슥 스스슥!”


참이는 요사이 자신이 길에만 나가면 들리는 소리가 다시 들리자 급격히 기분이 나빠졌다. 나쁜 일이 생기기 전에 항상 느껴지는 어깨의 으슥한 느낌도 들었다.


‘에이, 오늘은 또 뭔 일이 터지려고 그러나? 이 아저씨가 옆에 있을 때 일 터지면 쭉 같이 다녀야 되는데. 에이 씨.’


참이는 자신의 옆에서 선글라스 끼고 야구점퍼에 청바지를 입고 따라오는 백범을 흘끗 쳐다보며 구시렁거렸다.


‘젠장 크기도 크네. 웬만한 남자는 어깨동무하는 내가 올려다봐야 하다니. 재수 없어.’


다른 사람의 외모나 조건에는 관심 없고 자신과 말이 통하고 성격이 맞으면 누구 하고나 쉽게 친구가 되는 참이지만 백범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얄미웠다. 


재수 학원으로 가는 지름길에 들어섰을 때 어떤 남자가 참이의 앞을 막았다. 홀쭉하게 말라서 키가 아주 컸다.


“먹고 싶어. 너만 먹으면 앞을 볼 수 있어. 너의 눈을 먹고 싶어!”


참이는 자신을 향해 떠드는 남자의 말에 기가 막혔다.


“이거 미친 인간 아니야! 당신 뭐야?”


남자는 참이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천천히 참이에게 다가오며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다.


“먹고 싶어. 너만 먹으면 앞을 볼 수 있어. 너의 눈을 먹고 싶어!”


상대방의 검은 눈을 보자 참이는 앞의 남자가 자신을 진심으로 해치려 한다는 것을 느꼈다. 공포감이 느껴지며 온몸이 굳어져 갔다.

그때 백범이 그녀를 자신의 등 뒤로 보내며 투덜거렸다.


“빨리도 나오는군. 아주 독이 올랐나 보지? 어쩌나 이 하룻강아지는 이미 예약된 몸인데.”


백범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자 남자의 몸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니 그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백범이 공포와 기이함에 넋이 나간 참이의 이마에 꿀밤을 날렸다.


"딱!"

"아야!"


“야, 하룻강아지! 정신 차려. 진짜 먹히고 싶냐?”


참이는 백범의 말에 정신이 확 들면서 부끄러웠다. 아빠가 말해줬을 땐 코웃음 쳤었는데 막상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겁에 질려 꼼짝을 못 했으니 말이다.


“괘……괜찮아요. 내가 언제 겁먹었다고.”


얼굴이 벌게지며 우기는 참이를 보고 백범이 한 마디 했다.


“뛰어라. 살고 싶으면.”


백범의 말이 끝났을 때, 남자의 몸은 아니 이젠 인간의 형체는 없었다. 3미터 이상 되는 거대 지렁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참이는 턱이 빠질 정도로 입을 벌리고 기겁하고 말았다.


“아악! 저거 뭐예요?”


백범이 한심하다는 어조로 되물었다.


“너는 지렁이도 못 봤냐?”


그때 지렁이가 거대한 입을 벌리며 참이를 향해 자신의 머리를 내리꽂았다.


“콱! 우적우적.”


거대 지렁이는 자신이 머리를 꽂은 곳의 땅을 입안에 가득 넣고 우적거리며 씹어 삼켰다. 지렁이를 피해 양 방향으로 몸을 날린 참이와 백범은 좁은 골목 안이라 멀리 피하지 못하고 쌓여 있던 상자 위로 몸을 피했다. 다시 지렁이가 킁킁거리더니 머리를 참이가 있는 방향으로 틀었다.


“스스 쓱! 콱! 우적우적!”


지렁이는 참이가 먹고 싶은 듯했다. 아니 분명히 참이를 먹으려 공격하고 있었다. 직접 보니 의심의 여지가 없는 데도 참이는 백범에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아악! 저거 뭐예요?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하얗게 질린 얼굴로 악을 쓰면서도 이리 뛰고 저리 구르고 날래기만 한 참이를 보며 어이가 없던 백범이 한마디 툭 던졌다. 재수 없게.


“네가 맛있어 보이나 보지. 원래 하룻강아지들이 연하고 맛있는 법이지!”


지렁이의 머리를 피해 골목 반대편으로 몸을 날리던 참이가 백범에게 소리를 질렀다.


“뭐요? 그럼 내가 먹이란 말이에요?”


당연하다는 백범의 대답에 참이는 더 열이 받았다.


“그럼, 네가 예뻐서 이리 쫓아오겠냐?”


“에이, 씨!”


“너 그거 누구한테 하는 욕이냐?”


따지는 백범에게 참이가 마저 질렀다.


“몰라도 돼요! 거기 서서 구경만 할 거면 왜 따라와서 잔소리냐고!”


‘지켜준다고? 웃기시네. 아빠, 집에 가면 두고 봐!!!!’


속으로 이를 갈며 계속 몸을 날리는 동안 지렁이의 속도도 느려져 갔고, 참이의 반응도 점차 둔해져 갔다.

이때를 기다리던 백범이 품에서 작은 단도를 꺼내 자신의 손가락을 살짝 베어 단도에 피를 묻혔다.


“지이잉!”


단도가 서서히 길어지고 있었다. 백범의 팔뚝만 한 길이까지 늘어나 검이 되었다. 백범이 칼을 들어 거대 지렁이의 몸통에 있는 띠 부분을 칼로 갈랐다.


“꾸웨엑! 꺄악!”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지렁이가 조각난 몸을 꿈틀거렸다. 백범이 골목 안 음식점이 내놓은 연탄재를 부셔 지렁이가 잘린 단면에 던졌다.


“퍽 퍼억!”

“끄아악~ 끄 으  끄으 악!”


점차 지렁이의 움직임이 멈추어 갔고 한참 뒤에는 지렁이의 몸에서 녹색 진물이 흐르기 시작하더니 지렁이의 온몸이 녹아 땅 속으로 사라졌다. 조용해진 골목에는 헉헉 대며 주저앉은 참이와 다시 작아진 단도를 자신의 품에 갈무리한 백범만이 남았다.


“아저씨, 이제 끝난 거예요?”


기운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참이가 묻자 백범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지렁이? 그놈은 이제 사라졌다. 너 근데 자꾸 아저씨라고 할래?”


백범의 대답에 안도하며 일어나 바지에 묻은 흙을 털며 참이도 만사 귀찮다는 식으로 백범에게 대답했다.


“아저씨가 아니면 뭐라 그래요? 늙다리?”


염장을 지르는 참이의 대답에 백범이 으르렁 거리며 못을 박았다.


“삼촌이라고 해. 어릴 때부터 네가 나를 부르던 호칭이니까. 아님 백범 님이라고 하던 가.”


백범의 대답에 참이가 가만히 백범을 응시했다. 참이의 계속된 시선과 침묵에 백범이 되물었다.


“왜?”


참이가 엉뚱한 질문으로 답을 대신했다.


“정말 사람이 아니에요?”


다시 백범이 물었다.


“누구? 나?”


고개를 끄덕이려던 참이가 다시 강력하게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아니, 삼촌은 인간이든 아니든 상관없어요. 아빠가 믿어도 된다고 했으니까. 아까 삼촌이 없앤 지렁이요.”


그새 머릿속으로 누가 자기 편인지 정리가 끝나 간결하기도 한 참이의 질문에 백범이 마찬가지로 간단히 대답하며 길을 재촉했다.


“아니,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다. 너 계속 나갈 거냐? 다시 집으로 가는 것이 어떠냐?”

“왜요?”


이유를 묻는 참이에게 백범은 참이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네 꼬락서니를 보라는 너무나 분명한 대답이었다.

참이가 봐도 자신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참이가 가방을 챙겨 들고 앞장섰다.


“에휴, 다시 집으로 가요. 아주 매일 흙투성이네. 아빠가 거보라고 난리 나겠군.”


참이의 뒤를 따르며 백범이 주머니에서 방울 하나를 꺼내 살짝 흔들었다.

“딸랑!”


방울소리가 퍼져나가자 검게 물들었던 지렁이가 스며든 곳의 땅이 다시 깨끗해지며 골목 안의 공기도 맑아졌다. 낯선 기운을 느낀 참이가 뒤를 돌아보았지만 이미 백범은 참이의 바로 뒤에 있었다. 둘은 ‘호미다점’으로 나란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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