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정필 May 05. 2023

내가 너희를 어떻게 키웠는데

사진출처:네이버 이마지

봄비가 눈처럼 날리는 스산한 아침이다. 우산을 쓰기는 성가시고, 비를 마주하자니 찝찝하다. 그야말로 불쾌지수가 올라가는 날이다. 그의 한 달을 입원하시고 퇴원하신 친정엄마가 우리 집으로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침부터 전기 매트에 이불을 덮어씌우고 베개와 이불을 장롱에서 꺼내며 엄마 맞을 준비에 부산하다. 목욕을 좋아하시는 엄마를 위해 욕실의 욕조를 깨끗이 씻는 것도 잊지 않는다. 오후 6시가 넘어가자, 엄마가 아파트에 도착했다는 셋째 오빠의 전화를 받고,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엄마 마중을 나갔다. 아파트 현관 입구에 가느다란 지팡이에 온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노쇠한 노인이 보였다. 병원의 장기 입원으로 혈색이 없고, 야윈 모습이 마치 한겨울을 힘들게 버티는 마른 고목 같았다. 


 지난 설날 밤늦은 시간에 친정에 도착했다. 불빛이 환한 거실에 엄마 홀로 덩그러니 앉아계셨다. 중학생 아들 녀석이 “할머니”하고 뛰어 들어간다. 작년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엄마가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자 아들이 할머니를 뒤에서 살짝 안는다. 그제야 기다리던 손님이 온 것을 알고 환하게 웃는다. 뒤이어 도착한 셋째 언니와 늦은 저녁을 준비하고 밥을 먹는데, 아들이 “엄마, 할머니 왼쪽 손이 이상해요. 계속 총 쏘는 모양을 하고 있어요.”라고 했다.

 그 말에 우리는 엄마 손목에 네모난 밴드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보았고,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엄마는 명절 앞날 청소를 하던 중 부엌에 있던 소주병을 들고나가다가 발을 헛디뎌 병을 떨어트렸고, 그때 넘어지면서 깨진 병조각에 손목을 눌렀다고 했다. 아팠지만, 별일 아니라는 생각에 밴드만 붙였다고 했다. 


  다음날, 친정에서 출발하기 전에 엄마 손목이 괜찮은지 한 번 더 물었다. 여전히 통증이 있고, 손가락이 굽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와서, 급하게 응급실 진료를 하고, 다음날에는 정형외과를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엄마 왼손의 엄지, 금지, 중지의 신경과 인대가 끊어지고 염증이 생겨서 빨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환자의 고통이 심했을 것 같은데 늦게 온 것이 아쉽다고 했다. 고통을 숨긴 엄마의 무지함과 자식들의 무관심이 병을 키웠다는 생각에 뒤늦은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엄마는 다음날 93세의 나이에 수술을 받으셨고, 한 달 가까이 입원생활을 끝낸 후, 어제 셋째 언니 집을 그쳐 오늘 우리 집으로 오셨다.


 저녁식사가 끝나고 목욕물을 받았다. 작년보다 야윈 엄마 모습에 나는 말없이 때를 밀었다. 목욕을 끝내고 나온 엄마는 날아갈 듯 가볍다고 말하며, 힘이 없으신지 소파에 너부러진다. 한참 후 “야야,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눅눅할 때 손톱하고 발톱 좀 깎아주면 안 되겠나?”라고 묻는다. 나는 손톱깎이를 가지고 와서 눅눅해진 엄마의 손톱과 발톱을 깎기 시작하자, 엄마의 푸념이 들린다. “자식을 여덟이나 낳았는데, 퇴원할 때 집에 가자고 하는 자식이 하나 없더라. 내가 지들을 어떻게 낳고 키웠는데.”하시며 눈물을 보이셨다. 


 나는 부모님이 우리를 어떻게 키웠는지 듣고, 보아서 안다. 부모님은 자식에 대한 사랑이 많으셨다. 여덟의 자녀를 출산한다는 것은 애정이 있어야겠지만, 긴 세월 동안 같이 고생을 해야 된다는 의미도 있다. 우리 형제자매는 그의 2살 터울로 출산이 이루어졌다. 엄마가 아이를 출산하고 젖을 떼면, 아이는 아버지의 무릎으로 가서, 아버지의 입으로 이유식을 받아먹었다.(지금 생각하면 비위생적이지만, 그때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것 또한 부모의 사랑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아이의 걸음마가 자유로워지면 아버지 무릎을 떠나 밥상에 홀로 앉아 밥을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시고, 부지런하셨다. 어려운 살림에 여러 자식들 교육시키고, 장사 밑천을 마련해 준다는 것은 부모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부모님은 나른한 봄볕에서부터 따가운 가을햇살까지 쉼 없이 농사일에 매이셨고, 가을 추수가 시작될 때부터는 살을 쪄서 ‘찐쌀’을 만들어 새벽시장에 나가시고, 남들이 다 쉬는 가을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도토리를 따서 묵을 만들어 통도사 새벽시장으로 향했다. 또한 빨갛게 감이 익어갈 때는 감 따기 부업도 하셨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며 감을 따고, 꼭지를 치고, 그렇게 도매상에게 넘겼다. 높은 감나무에 올라가서 한쪽 다리로 균형을 유지하며, 하루 종일 하늘만 쳐다보는 감 따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들어온 수입은 오빠들의 대학등록금과 장사밑천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여덟의 자녀가 한꺼번에 학교를 가야 하는 시기에는 집안의 빗이 늘어 부모님은 밤잠을 설치셨지만, 굳건한 신용으로 이웃에 돈을 빌리고 갚으며,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그렇게 살아내셨다. 아버지를 굳건하게 믿으시는 엄마도 한 마디 불평 없이 아버지의 동반자가 되어 자식들의 병풍이 되어 주셨다. 


 그야말로 부모님은 우리 형제. 자매들의 든든한 울타리였으며, 우리는 그 속에서 이렇게 잘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다. 자신이 준 것은 오래 기억하나, 받은 것은 잘 잊는다. 특히 부모에게 받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여 더 쉽게 잊는다. 

 오늘 엄마의 말처럼 “내가 지들을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이 절로 나오고 서러움이 북받쳤을 것이다. 엄마의 지나온 세월은 모두 자식들이었는데, 엄마 맘 같지 않은 자식들을 보면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하지만 나는 엄마의 그 마음도 이해하지만, 요즘 시대가 옛날과 달라서 자식들을 탓할 수도 없었다. 또한 그 자식들도 엄마가 90을 넘기기 전에는 엄마를 모시고 여러 병원을 다니며 엄마의 손. 발이 되어주었다. 옛말에 ‘긴병에 효자 없다.’라고 했는데, 요즘은 ‘긴 수명에 효자가 없다.’라고 바꿔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긴병’은 의료와 복지 발달로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해결해 주지만, 긴 수명에 잦은 아픔을 감내할 자식은 드문 듯하다. 그리고 100세 시대에 자식 또한 노인이 되어 경제적. 신체적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서운함을 조금이라도 달래주기 위해 “엄마, 내가 오라고 했잖아. 여덟 중에 한 명은 빼야지”라고 말했다. 그런 후 “엄마, 구순을 넘기시면 앞날을 모른다고 하셨는데, 엄마가 살아계신 동안 막내딸이 옆에 있을 테니, 서러움이 밀려오거든 전화하세요. 언제든지 달려갈게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엄마도 내 웃음에  “그래, 막내인 네가 있었지. 나이 사십 넘어 너를 안 낳았으면 얼마나 서운했을꼬.”하시며 쓸쓸한 미소로 회답하신다. 


 오랜만에 한 목욕이 개운해서 인지, 힘이 들어서 인지 엄마는 서운함도 잊은 채 잠이 들었다. 나는  잠든 엄마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주름이 가득한 얼굴에 군데군데 검버섯이 덮인 영락없는 상노인이었지만, 은은하게 풍기는 온화함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해맑아 보였다. 그 맑음 속에는 “그래 어쩔 수 없지”라고 말하고는 웃음으로 날려 버리는 엄마의 현명함과 낙천성이 숨어 있다. “드르렁드르렁” 엄마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시계는 보니 새벽 1시다. 그날 밤은 엄마 소파 위에서, 나는 거실 바닥에서 그렇게 모녀는 잠이 들었다.


 나는 자식을 키우는 부모인 동시에 딸이고 며느리다. 서운한 엄마의 마음도, 선뜻 ‘우리 집에 갑시다.’라고 말 못 하는 자식의 마음도 이해한다. 요즘 세상의 흐름이 그렇고, 병든 부모를 자식 집에서 꼭 모셔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부모가 젊고, 즐거울 때는 잠시 잊어도 되지만, 아프고 힘들 때는 얼굴이라도 비쳐 주고, 전화 한 통의 안부를 전했으면 한다. 부모도 사람이라 자식에게 서운하고 원망하는 마음이 어찌 없을까? 하지만 자식들의 전화 한 통이면 봄날 눈 녹듯이 녹는 것 또한 부모의 마음이다. 


 부모의 세대는 우리보다 조금 일찍 노후를 맞이했을 뿐이다. 그 길은 우리에게도 곧 닥칠 일이며, 누구도 비켜갈 수는 없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해 주신 부모님을 한 번쯤 돌아봤으면 한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에서 여성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