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정필 Feb 19. 2024

카페에 실버카가 떴다

 도까운 햇살이 카페 유리창을 비추는 오후 12시, 카페 문을 열었다. 빵 부스러기와 커피 얼룩이 어젯밤(일요일) 오고 간 손님들의 흔적을 말해주고 있다. 서둘러 귀퉁이 보릿자루처럼 서있는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했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오픈 청소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이제, 오늘의 기다림을 시작해야 하는 나를 위해 ‘카페라테’ 한잔을 들고 의자에 앉는다. 


 오후, 손님을 기다리는 애타는 눈길이 창밖으로 향한다. 창 너머, 팔십은 거뜬히 넘어 보이는 할머니 한분이 힘겹게 언덕을 오른다. 한눈에 봐도 카페 손님이 아님을 느끼고 실망한다. 그런데 계속 올라갈 것 같았던 할머니는 카페 앞 긴 간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는다. 뒤이어 할머니 두 분이 더 올라오신다.

“철커덩”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덕을 오르던 할머니가 실버카를 카페 옆 모퉁이에 주차한다. 

“아휴, 아침부터” 

순간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진다. 하지만 오르막이 힘겨운 할머니들이라 생각하며 애써 외면했다. 

그런데 ‘딸랑’ 카페 문소리와 함께 밖에서 서성이던 할머니 한분이 들어오신다. 그리고 머쓱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조용히 묻는다. 

“여기 뭐가 맛있는 기요?”

“아, 네. 어르신들 드시기에는 수제차가 따뜻하고 좋아요”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 그래요. 그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오끼요.”

라고 말하며 다시 문을 열고 나가신다.     

 그런 후, 할머니들은 카페 앞을 한 참 서성거린다. 그러다가 힘겨운 발걸음을 이끌고 ‘딸랑’ 소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오셨다. 그리고 눈으로 한 바퀴 ‘휘’ 둘러본다. 그때, 조금 전 메뉴를 물어보셨던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내가 살 끼다. 뭐 먹을 랑기요?”

말과 함께 지갑에서 카드를 꺼낸다. 

“아이고, 내가 살 끼다”

할머니들은 서로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나는 할머니들이 잘 드실 수 있는 메뉴를 추천하고, 나와 가장 가까운 카드로 결제했다. 그리고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창가 쪽 마루로 안내했다.

“아이고, 여기는 마루도 있네, 다리를 뻗을 수 있어 좋다.”

할머니들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앉으셨다.     


 나는 할머니들이 주문한 ‘수제생강차’와 ‘들깨라테’그리고 빵을 준비했다. 그리고 골고루 맛볼 수 있도록 개인접시에 소분해서 각각의 자리에 놓았다. 

 “아이고 주인이 이리 이쁘고 삭삭 하네.”

할머니 한분이 말한다.

“우리 늙은이들은 나와도 어디 갈 때가 없다. 모두 노인들을 안 좋아라 한다.”

씁쓸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 목소리도 들렸다.

“그래서 내가 만 디에 오자고 안했는기요. 우리 인자 여기서 모이면 되지 뭐.” 

뒤에서 계산을 하셨던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에 모두 웃으셨다.     


 음료가 나가고 한참 후, 할머니들의 수다가 멈췄다. 살그머니 마루 쪽으로 가서 할머니들을 훔쳐본다. 집의 안방처럼 누워서 코 고는 할머니, 다리를 주무르는 할머니, 홀로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 제각각의 모습으로 한낮의 햇살을 즐기고 계셨다. 나는 담요를 들고 가서 주무시는 할머니 허리에 살며시 덮어드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해가 질 무렵, 할머니 한분이 정적을 깬다. 

“인자 일어 나이소. 해 질라한다.”

“맞다. 인자 이 집도 장사를 해야지”

다른 할머니가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 할머니들은 두터운 옷을 챙겨 입고, 한겨울 짧은 나들이를 끝내며 카페 문을 나섰다. 그리고 문 밖에서 대기하던 ‘실버카’도 주인을 만나 다시 언덕을 내려간다. 

“차 조심하시고, 다음에 건강하게 또 뵈어요.”  

나는 언덕을 내려가는 할머니들의 뒷모습을 보며 큰소리로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노년의 삶은 길고, 희망이 없다. 그런데 오늘처럼 노년의 지루한 삶에 양념 치듯, 재미나게 살아가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실버카를 끌며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고, 카페 안으로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다 서성인다. 그리고 들어와서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며 자리에 앉는다. 이런 과정에 할머니들의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용기에 응원을 보내며, 노년의 삶이 지루하다는 나의 편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삶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따라 지루할 수도, 다양함을 맛보며 살 수도 있다. 전자가 되던, 후자가 되던 자신의 선택이겠지만, 나는 오늘 할머니들처럼 다양함을 맛보며 노년을 보내고 싶다. 긴 노년의 짐이 가벼워지는 하루였다.

작가의 이전글 밥 짓는 냄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