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키워드 : 배려
나는 아직 ‘뚜벅이’이다.
지방에 살면서 뚜벅이로 사는 내 또래는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 사실 지금까지는 차의 필요성을 몰랐었고 남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면서 이동하는 게 더 편하다고 느꼈다. 근데 대략 일여 년 전쯤부터 편의성보다 자율성을 더 느끼고 싶어지면서 차를 소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 처음으로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한 것이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욱 마음이 아파졌다. 어쨌든 난 현재 뚜벅이 생활을 하고 있다.
출퇴근 시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는 내가 오늘 아침 차가 없다는 사실을 한탄하게 된 이유가 있다. 다들 알다시피 오늘 한반도에 전국적으로 태풍이 관통하면서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특히 내가 사는 지역은 출근시간이 가장 태풍 정도가 심하여 위험했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내가 타는 버스정류장이 중심가에 있는 곳이었고, 그래서 유동인구도 정말 많은 정류장이다. 그런데 하필 정류장 턱 바로 앞이 물이 고여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냥 발을 내디디면 종아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높이까지 물이 고여있었다. 버스가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정류장의 끝에서 끝까지 물이 고여 찰랑찰랑거렸다.
난 그 광경을 보자마자 난 어떻게 버스를 탈 것이며,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내릴 것인가 고뇌에 빠졌다. 생각에 잠겨 있던 나를 잠재워준 건 태풍을 뚫고 달려온 버스였다.
그 버스는 멀리서 달려오다가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진입했다. 그리고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생각해서인지 정류장 턱과 버스를 최대한 가깝게 하여 승객이 바로 버스에 오르내릴 수 있도록 버스를 대주시는 모습을 보고 생각지 못한 부분이라 순간 그 배려에 너무 감동했다. 그 다음, 다다음 버스도 그런 방식으로 운행을 해주시는 모습을 보며 저런 것도 버스회사에서 교육하나 보다, 승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모습 너무 좋다 라고 생각했다.
감동도 잠시, 스피드 경기를 펼치는 듯 달려온 한 버스.
고여있는 물줄기가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 승객들에게 무자비하게 튀어 오른 것은 물론이오, 버스가 정차한 곳은 물웅덩이? 건너편이었다. 그 넓고 깊은 물살을 무조건 건너야 하는 것이었다. 어떤 한 사람은 운동화를 신고 있었는데 잠시 정말 잠시 멈칫하다가 운동화와 바지 아랫단이 웅덩이에 잠식되는 걸 불사하고 버스 탑승을 선택했다. 아마 그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을 거라 생각된다.
그 버스를 타려면 다른 대책은 없었다. 그 버스를 그냥 보내는 수밖에 없는데, 출근시간에 배차시간이 긴 버스라면 그조차도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 인생의 중심단어인 “배려”가 떠올랐다. 버스를 운전하는 입장에서는 그게 아무것도 아닐 수 있지만, 버스를 타고 내리는 입장에서 한 번만 생각해 본다면 결코 아무것이 아닐 수가 없는 부분이다.
배려,
해주면 고마운 것.
강요하면 안 되는 것.
서로 행한다면 아름다운 것.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다면 해당되지 않는 것.
나도 결국은 배려가 부족한 버스를 뽑았고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걸 느끼며 버스에 올랐다. 다행히 바지는 발목 위까지 오는 거였고, 신발은 조리를 신었어도 출근길에 챱챱, 뾱뾱거리는 소리를 숨길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