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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Dec 16. 2022

취향이 생성되는 과정

Dire Straits - So Far Away

나는 음악을 음반으로 듣는 시대에서 음원으로 듣는 시대로 넘어가던 시기에 본격적으로 접하게 되었다. 지금은 온라인 스트리밍이 활성화되어서 그나마 불법 다운로드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2000년대는 불법 다운로드의 태동기이자 전성기 그 자체였다. 팬으로서 패키지 음반을 사거나 취미로 바이닐을 사지 않는 이상 순수히 음악 감상을 위해 실물 음반을 사는 문화가 이때부터 완전히 비주류가 되었다.


고등학교 때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던 형이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오면서 휴대용 CD 플레이어를 갖고 왔다. 한국에서 새로운 MP3 플레이어를 구입한 형은 그 CD 플레이어와 갖고 있던 음반들을 나에게 주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때부터 나는 CD 음반으로 음악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MP3 플레이어가 있었기에 내 개인적으로도 CD는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서의 음악 감상 매체였다. 좋아하는 가수나 밴드의 신보, 책에서 본 해외 명반 등 만을 내 돈으로 샀고 형과 부모님, 삼촌이 CD 음반이 주류이던 시절에 모아놓은 음반들을 물려받아 함께 들었다. 당연히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이 주류 매체였다.  

학창 시절에 내 돈으로 처음 구입했던 음반들 중에는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의 'Brothers in Arms'가 있었다.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앨범 1001장 등의 책에서 꾸준히 접한 앨범 커버였고 무엇보다도 당시 교보문고에 새롭게 디지털 리마스터가 된 버전이 진열대에 올라와 있어서 사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음악 얘기를 책으로만 읽었지, 내 귀로 들어본 적은 없었다. (나나 무스쿠리의 'Why Worry'는 지나가며 들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Dire Straits의 Brothers in Arms 앨범 커버. 그림이 아니라 사진이라고 한다.

Brothers in Arms의 1번 트랙은 'So Far Away'라는 경쾌한 기타 리듬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다른 엄청난 명곡들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유명한 곡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모든 곡들 중에서 'So Far Away'를 가장 좋아한다. 그 이유라 함은 단순히 가장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의 CD 감상법은 이랬다.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넘어가기 없이 음반의 모든 수록곡을 한 번에 들어야만 했다. 그러다 중간에 CD 플레이어를 껐다가 나중에 다시 틀게 되면 1번 트랙부터 다시 들었다. 사실 이는 내 CD 플레이어의 넘어가기 버튼과 중간 재생 기능이 고장 나서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1번 트랙인 'So Far Away'는 마지막 트랙인 'Brothers in Arms'로 가기 위한 하나의 관문이 되었고 음반 전체를 한 번에 듣는 경우는 줄어도 'So Far Away'만은 듣고 CD를 꺼냈다. 마지막 트랙까지 가는 여정은 정말 멀었다(So Far Away). 그래서 나는 이 시기에 들었던 많은 음반들의 1번 트랙을 꿰고 있다. 음원을 MP3 플레이어로 듣게 된 이후부터는, 특히 온라인 스트리밍이 너무나 간편해진 이후부터는 이런 감상법을 일부러 고수하지는 않아왔다.


취향이라는 것, 특히 음악 취향은 얼마나 자주 듣냐에 따라 정해진다고 생각한다. 나는 모든 장르를 고루 듣고 장르의 우위도 딱히 정해두지는 않지만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록이다. 이유는 역시 가장 많이, 자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청소년 시절에 앞서 언급한 죽기 전에 들어야 할 앨범 1001장이나 존 레논 전기와 같은 대중음악 책들을 읽는 것을 음악을 감상하는 것만큼 즐기곤 했다. 도서관에 비치된 대중음악 비평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그중 대부분은 팝송, 그중에서도 과거의 록 음악을 주로 다뤘다. '이러쿵 저러쿵 이유로 이 밴드는 역사적인 아티스트고 이 음반은 명반이다'를 자세히 설명하는 책들이었다. 사실 나는 그들의 음악들을 들어본 적도 없는 상태였다. 그냥 록 음악의 역사에 대해 알아가거나 앨범 커버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안 들어본 20세기의 대중음악들이 수두룩하지만 웬만큼 유명한 록아티스트의 이름과 그들의 대표 앨범의 커버는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실제로도 그렇게 'Brothers in Arms'를 샀다.


그렇게 책에서 먼저 보고 이후에 음반을 듣는 경험을 즐겼다. 운이 좋게도 형과 삼촌이 물려준 음반에는 책에서 나온 것들도 많았다. 명반이라고 불리는 음반을 듣기 전에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있는 시기였다. 그리고 그 설렘의 절정은 1번 트랙에 있었다. 아닌 경우도 매우 많지만 내가 즐겨 듣던 음반들의 1번 트랙 대부분은 리드 싱글 혹은 타이틀곡이 아니었다. 물론 상업적인 이유, 음반의 전체적인 완성도와 기승전결 등을 이유로 그러기도 하겠지만 내가 느낀 인상은 대체로 1번 트랙은 그 음반의 '필살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반강제적인 음반 감상법과 음반의 뒷얘기를 알고 음악을 듣게 되는 경험이 합쳐져 1번 트랙이 주는 설렘이 늘 있었고 나에게만은 그 음반의 필살기가 된 적도 많았다. 분명 'Money for Nothing'이 'So Far Away'보다는 훨씬 더 명곡이지만 나는 'So Far Away'가 더 좋다. 반복과 그 시절의 설렘이 만들어낸 나의 취향이다.   


편한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CD 플레이어와 MP3 플레이어 중 하나를 고르라면 후자이고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폰 중 하나를 고르라면 당연히 후자다. 편하니까. 그럼에도 가끔 CD를 사고 CD로 음악을 듣는 이유는 1번 트랙이 주는 설렘 혹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익숙함을 즐기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이 제일 좋아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익숙해졌는지도 중요한 요소이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싫어지는 경우도 있다. 너무 많이 들어 질려버린 노래라던지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1번 트랙들은 질리지 않을 것 같은 노래들이며 질리지 않을 것이기에 제일 좋은 노래다. 이하는 내가 좋아하는 음반과 그 수록곡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1번 트랙인 나의 재생목록.


아티스트 - 1번 트랙 (음반명, 내 생각에 그 음반에서 '필살기'인 노래)


Dire Straits - So Far Away (Brothers in Arms, Money For Nothing)

The Script - You Won't Feel a Thing (Science & Faith, For the First Time)

The Cranberries - Ode to My Family (No Need to Argue, Zombie)

The Velvet Underground - Sunday Morning (The Velvet Underground & Nico, I'm Wating for the Man)

Audioslave - Your Time Has Come (Out of Exile, Be Yourself)

Celine Dion - I'm Alive (A New Day Has Come, A New Day Has Come)
The Calling - One by One (Two, Our Lives)
Kings of Leon - The End (Come Around Sundown, Radioactive)

The Beatles - Help! (Help!, Yesterday)

Radiohead - Airbag (OK Computer, Paranoid Android)

The Fray - She is (How to Save a Life, Over My Head)

Queen - Play The Game (The Game, Another One Bites the 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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