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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학 May 28. 2023

도서관 1

중학교에 오고 나서 나는 도서관이 하교 시간에 맞춰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업은 하루 종일 있고, 쉬는 시간은 십분이었다. 학생들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은 점심시간 한시간 뿐이었고  그 외의 시간에 대출을 하려면 쉬는 시간에 재빨리 다녀와야 했다. 심지어 도서관은 구석진 별관 5층에 있어서 짬내서 다녀오기도 힘들었다.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곳일 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곳이기도 하다. 하교 시간에 문을 닫는다는 것은 즉, 도서관이 책을 읽는 곳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건 하루에 한 시간뿐이라는 뜻이었다. 그마저도 사서 선생님이 점심 식사 때문에 자리를 비운 동안에는 대출반납을 할 수도 없었다. 이런저런 불만이 있었지만,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기에, 그저 책을 빌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도서관에 갔고 사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학기말에 담임 선생님과 개인별 상담 시간이 있었다. 한 학기에 한 번 하는 형식적인 상담이었다. 내 차례에 맞춰 교무실로 불려간 나는 선생님과 성적과 학교 생활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상담을 마치며 선생님은 학교나 학급에 바라는 점이 없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이 일찍 닫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선생님은 도서관은 다섯 시까지 운영하는데, 얼마나 늦게까지 열어야 하냐며 되물었다. 선생님이 잘못 아는 듯했다. 지난 삼 개월 간 내가 가본 바로는 방과 후에 도서관이 열려있던 적은 없었다. 이 문답에 이상함을 느낀 선생님은 ‘나는 다섯 시까지로 알고 있는데...’라고 말을 흐리며 일단 알았으니 교실로 돌아가고 다음 번호의 아이를 불러오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쉬는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나를 따로 교무실로 불렀다.


“네가 도서관이 빨리 닫는다고 얘기한 게 영 찝찝해서 가봤더니, 글쎄 사서 선생님이 자기 마음대로 계속 도서관을 빨리 닫고 있었지 뭐야. 사서 선생님도 퇴근 시간은 다섯 시야. 퇴근 시간까지 도서관 업무를 하셔야 하는 건데 도서관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별로 없어서 그냥 임의로 문 닫고 퇴근을 하셨나 봐. 한마디로 일 안 하고 도망 가시던 거지. 어제 내가 일찍 문 닫고 들어가시는 사서 선생님 붙잡고 여쭤봤더니 솔직히 얘기하시더라고. 언제부터 그러신 건지는 모르겠는데 이 사실을 다른 선생님들이 아시면 근무 태만으로 사서 선생님 징계받을 수 도 있어. 너랑 나만 아는 것 같으니 일단 비밀로 하자. 대신에 앞으로는 도서관 다섯 시까지 꼭 열어주시겠대. 이제라도 학교 끝나고 가서 책 봐라”


근무 태만이면 징계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지각하는 우리 반 친구들도 매일 교실 청소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생님의 말꼬리를 잡을 용기도, 말주변도 없었던 나는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교실로 돌아갔다. 불만이 해결되어서 좋았지만 그렇다고 그날 방과 후에 당장 도서관에 간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서 선생님의 근무태만을 발각시킨 사람이 나였고, 당연히 도서관을 들락거리는 학생은 나 혼자 뿐이니 내가 밀고자라는 사실을 알아챘을 것이다. 애초에 잘못한 사람은 사서 선생님이었는데 내가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치 고자질을 한 기분이 들었다.


사서 선생님은 삼십 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여성분이었는데 내가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대부분 식사를 하고 오시는 걸 내가 기다리는 상황이었지만) 찾아가면 늘 컴퓨터 키보드를 두들기고 계셨다. 책상 너머의 모니터는 내가 볼 길이 없으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타자 연습이라고 속으로 단정 짓고는 했다.  세 달 간 이틀에 한 번 꼴로 책을 빌리러 오는 나에게 반납일을 알려주는 것 말고는 어떤 말도 걸어온 적이 없었다. 사실 나는 사서 선생님의 그런 점이 좋았기도 했다. 별관 최상층 구석에 있는 작은 도서관이었지만, 학교가 오래된 탓에 지역사회와 기관에서 기부를 명목으로 버림 당한 책들이 많이 있었다. 그중에는 중학교 1학년 수준에서 읽을만한 수준은 아닌 책들도 있었는데 표현이 적나라한 장르문학과 외설춘향전과 같은 성인 도서들도 문학 코너 책장에서 종종 보였다. 알고 빌리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런저런 성인 도서를 빌리는 나에게 사서 선생님은 어떠한 언지나 눈치도 주지 않았다. 사서 선생님의 무관심이 나의 이차 성징을 도운 셈이었다. 이렇게 책을 주고받는 정도의 거리감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내가 다시 도서관에 찾아갔을 때 선생님이 나에게 어떤 식으로든 사적인 대화를 시도할까봐 두려웠다.


도서관을 다시 찾은 것은 일주일 뒤 방과 후였다. 대출했던 책의 반납기한이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에 나는 한창 세계문학전집을 읽고 있었다. 도서관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빌렸던 책은 스탕달의 적과 흑 상권이었는데 이 또한 중학교 일학년이 읽고 완전히 이해할만한 수준의 작품은 아니었다. 불륜이라는 소재가 매우 부도덕하다고 느껴지던 나이였기에 책장을 넘기며 왠지 모를 불편함에 휩싸이기도 했다. 어찌됐든 뒷이야기가 궁금했다. 불편한 책을 들고 불편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찾아갔다.


사서 선생님은 여느 때처럼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꾸벅 인사를 하고 책상 너머로 책을 건넸다. 일주일동안 내가 안찾아온 것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은 눈치로 평소대로 선생님은 눈인사로 책을 받고 다시 컴퓨터 화면을 응시했다. 다행이라고 느끼면서도 속으로 대출할 때 한마디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들었다.
 문학 코너로 가서 적과 흑 하권과 가장 두꺼워 보이는 책을 책장에서 꺼냈다. 책장 사이를 빠져나올 때 도서관 안쪽에 정렬된 열람실 좌석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한 여학생이 책을 읽고 있었다. 명찰색을 보아하니 나와 같은 일학년 학생이었다. 발소리를 들은 여학생도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았고 눈이 마주쳤다. 당황한 나는 자연스러운 척 대출대로 걸음을 떼었다.


책의 바코드르 찍으며 선생님은 반납일을 알려주었다. 이 날은 방학식 전 마지막 금요일이었는데 선생님은 방학 기간에도 본인의 휴가 기간 일주일을 제외하고는 도서관을 계속 개방할 예정이니 방학 때도 책빌리러 와도 된다고 알려줬다. ‘방학 때 여는 것도 내가 고자질해서 결정된 건가’ ‘사서 선생님은 방학이라고 다 안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눈치를 주는 것 같기도 했지만 선생님의 어투에서 빈정댐은 느껴지지 않았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인사를 하고 도서관을 나왔다.
 
계단을 내려오면서 내 머릿속을 채운 생각은 도서관 개방 여부나 사서 선생님의 기분 따위가 아니라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있던 여학생에 관한 것이었다. 도서관을 이용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줄 알았는데 착각이었구나. 그것도 그런 것이 내가 이용하는 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누군가는 다른 시간에 올 수도 있었던 것이다. 우연의 불일치로 서로 마주칠 일이 없었을 수도 있으니까. 사서 선생님이 아닌 다른 사람이 도서관에 있다는 사실이 어색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난 삼개월동안 도서관을 혼자 이용한다는 자유로움 혹은 독점의 기분을 내심 즐기고 있었다.


건물을 빠져나와 운동장 구석의 벤치에 앉았다. 더위가 솟아나려는 여름 날씨였지만 그늘 밑에 있어서 덥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축구를 하고 있는 선배 형들을 지켜보다가 가방에서 방금 빌린 적과흑 하권을 꺼내어 읽기 시작했다. 언능 읽어내야만 최근에 나를 감쌌던 불편함들을 털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점잖빼며 책을 읽는 나를 향한 비아냥이 축구부 형들로부터 들려왔다. 저 형들이야말로 도서관에 와봐야할텐데.

 그늘이 조금씩 사라지며 낮아진 햇빛이 눈을 찌를 때쯤 나에게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축구부 형들인가싶어 쳐다보니 아까 도서관에서 봤던 여학생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나에게 말을 걸어올 속셈이 뻔히 보였고 다가오는 속도에 맞춰 곁눈질을 하다가 책을 덮었다.   
 

“나 아까 도서관에 있던 앤데 너 도서관에 자주 가?”


“응 근데 오늘은 오랜만에 간거야”

“사서 선생님 말이야 원래 그렇게 학생들한테 불친절해? 나는 저번주에 처음 도서관에 가봤는데 그 선생님, 너무 퉁명스러운 것 있지. 인사도 안받아주시고 어느 책이 어디있냐고 물어봐도 말없이 고개로만 까딱이면서 가르켜주시더라고. 학생들이 없는 이유가 있다니까”


“원래는 지지난주에 처음 찾아갔었는데 도서관 문이 닫혀있는거야. 일찍 닫는 날인가보다 했지. 그리고 지난주에 다시 가니까 열려있더라. 그래서 선생님께 도서관 몇시까지 하냐고 여쭤봤을 뿐인데 ‘다섯시!’ 라고 약간 짜증내는 어투로 대답하시는 것 있지. 난 내가 뭐 잘못한 줄 알았어. 그 이후로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 오기가 생겨서 일부러 매일 가서 다섯시까지 앉아 있다 오고 있어. 다섯시까지 안열어두기만 해봐. 왜 일찍 닫냐고 따지고 신고해버릴거야.”


사서 선생님이 자신의 근태 문제를 발견하고 신고한 사람을 이 여학생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 아이가 처음 도서관에 찾아갔을 때 문이 안열려있으니까 학교의 다른 선생님(우리 담임 선생님)에게 문제 제기를 했을테고 이 때문에 그 동안의 행실이 드러나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아니면 그냥 그 날 기분이 안좋아서 분풀이를 했을 수도 있고. 이 사건의 전후상황을 얘기하면 이 아이의 화를 더 돋굴 것만 같아서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대답했다.
 

“나는 보통 쉬는 시간에 대출만 하러가서 잘 모르겠어…선생님이랑 얘기 나눠본 적도 별로 없어”


“그래? 애들도 없는데 괜히 내가 찾아와서 싫은 건가. 아무튼 나는 방학식날까지 계속 도서관에 갈거야. 근데 너 몇 반이야?”
 
사서 선생님의 괜한 분풀이에 대한 이 여학생의 분풀이는 이렇게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뒷이야기를 더 캐내고싶은 마음은 없는 모양이었다. 애초에 이 아이는 단순히 도서관에서 느낀 불편함을 나에게 토로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을까.  


여학생의 이름은 신지우였고 8반 학생이었다. 나보다 조금 작아보이는 키에 약간 그을린 피부를 갖고 있었다. 길지 않아 보이는 머리를 한갈래로 묶고 있었는데 교복을 리본까지 갖추어 차려입은 것에 더불어 단정한 인상을 주었다. 나에게 쏘아붙인 분풀이와는 대비되는 단정함이었다.

 
지우는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얼마 전 복직하게 되면서 하교 시간에 맞춰 태우러 오기가 힘들어지자 어머니를 기다릴 겸 도서관을 찾게 된 것이었다. 사서 선생님을 감시할 속셈만으로 도서관에 가는 것은 아니었다는 뜻. 본래 독서를 많이 즐기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학습만화나 위인전집들을 쌓아놓고 읽곤 했다. 첫 만남이후로는 길게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그래도 만나면 인사할 수 있는 정도의 사이는 되었고 방학식까지 나도 지우를 따라 매일 도서관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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