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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Nov 11. 2022

정신적 자유를 위하여

Writer's block Diary: 26일째

Photo by Link Hoang on Unsplash


여름휴가 대신 가을휴가를 가게 되었다.


여름 끝물에 강원도 바다로 떠나겠다는 계획이 좌절되고, 생각지 못했던 연차가 대량으로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휴가는 짠테크에 지친 마음과 매일 3시간씩의 출퇴근에 지친 몸을 동시에 달래주기 위해서이다.


사실 휴가라고 해봤자 서울 시내의 욕조가 있는 호텔에 이틀쯤 묵으며 태블릿과 무선 키보드를 통해 실컷 읽고 실컷 쓰자! 그러고 나서는 한껏 바닥을 뒹굴자! 가 전부이긴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땅하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훌륭한 휴가가 될 터였다.


호텔을 예약하기 전까지만 해도 걍 가지 말까, 어차피 집에 있으나 호텔에 있으나 혼자인데, 고양이를 두 밤이나 외롭게 두는 게 맞는 걸까, 하는 사소한 고민들이 발목을 잡았다. 그러나 코로나에서 벗어나고자 관광 산업이 사방에 뿌려대는 쿠폰에 힘입어 결제를 마치고 나자 망설임은 사라졌다.


그래, 하루는 욕조 있는 방, 하루는 없는 방을 잡았잖아. 어차피 연박이 아니니까 체크아웃과 체크인 사이의 남는 시간에 집을 다녀가면 되겠구나. 보리를 안아주고 밥을 주고 그러고 나서 책을 짊어지고 되돌아와 꿀 같은 독서와 느슨한 자료 조사를 이어가면 되겠어!


몇 년 전, 룸메이트가 있을 무렵에 처음 호캉스를 갔었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없는데 때로 심심해지는 집에서와는 달리 하나도 외롭지 않았으며 마치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듯 편하고 자유로웠다. 쓰기와 읽기에 지칠 무렵에 와인을 따서 홀짝이다가, 욕조로 들어가기도 하고, 아비정전 OST를 벗삼아 홀로 헐벗고 장국영의 댄스를 추며 오리털 침구에 몸을 던지고 야한 영화를 보다 잠들었다. 


그때의 기억이 하도 행복하여 휴가라면 그저 호텔이 최고다! 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는데 역시나 자판을 두드리는 지금 이 순간도 시시각각 행복감으로 물들어가는 걸 보면 사람에겐 일 년에 한 번쯤은 휴가가 꼭 필요하긴 한가보다.

 

아무튼 휴가에 뭔 읽기와 쓰기를 하냐? 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것들을 휴가기간에 더더욱 격렬하게 해보겠다는 건 내게 있어서 그 활동들이 정신적 자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인간에게 구속구가 될 수 있으나 대개는 헤르메스의 날개 달린 신발로 작용한다. 다른 모든 감정은 전경에서 배경으로 미끄러져 잠시 흐릿해진다. 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들을 상상의 힘을 빌어 징검돌처럼, 은하수처럼, 도로의 실선처럼 연결해 나가는 기쁨을 무엇에 비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고, 이유가 전혀 없을 수도 있지만, 일단 나는 정신적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산다. 특히나 글쓰기를 비롯한 창작 활동에 있어서만큼은 말이다.


문득, 일전에 인상 깊에 접했던 조던 피터슨의 대담이 떠오른다. 조금 다른 맥락일 수도 있는데, 굳이 여기다 끌어들이는 이유는 미안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아무튼 하도 인상 깊어서 굳이 타이핑해서 저장을 해두기까지 했던 그 대담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 * *


예를 들어서 여러분이 성적을 잘 받고 싶어요. 그래서 교수가 듣고 싶어할 것 같은 글을 써서 내죠. 여러분도 그 리포트에 영혼이 담겨있지 않다는 걸 알아요. 그런 리포트는 쓰는 동안에 아주 괴로워서 아플 지경이죠. 여러분은 그 주제에 관심도 없잖아요. 그렇게 리포트를 쓰고 나면 스스로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요. 그런 느낌은 여러분 안의 어떤 존재가 여러분에게 주는 힌트예요. 그런 일은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여러분은 그냥 해버리고 말죠. 그렇게 리포트를 써서 제출하고 나면 결국에는 여러분은 둘 중 하나가 되는 거예요. 거짓말쟁이에 겁쟁이가 되든지 아니면 여러분이 쓴 글이 실제로 여러분이 믿는 것이라 스스로를 기만하든지요.

심리학적 증거들로 봤을 때는 이런 경우에 사람들은 자기가 쓴 글을 믿는 쪽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자기가 거짓말쟁이에 겁쟁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보다 덜 고통스럽거든요. 그랬을 때의 진짜 문제는 여러분이 리포트를 씀으로써 여러분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의 반박글을 쓴 것이 돼버리는 거죠. 여러분의 원래 생각은 여전히 글로 표현되지 않아 두리뭉실하게 여러분의 머릿속에만 남아있는데 그 반박글은 여러분이 어떻게든 글로 표현했으니, 명확한 실체가 되어버렸죠. 어떻게 보면 여러분은 자기 자신의 적을 스스로 만든 거예요.

언젠가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예요. 어떤 대가를 치르냐 하면 여러분의 인격이 위축되고 감소되는 것이죠. 여러분의 인격이라는 건 여러분이 인생을 살아나가면서 여러분을 지탱해주는 것이예요. 아주 근본적, 본질적으로 더 파고들어가보면 여러분 인생을 살아가는 데 여러분이 가진 것은 인격이 전부인데도 말이예요. 여러분은 자기 인격을 통해서 삶에서 오는 혼돈과 불확실성의 끊임없는 공격에 대처해 가면서 살아가는 거라고요. 

혼돈과 불확실성은 살면서 많이 맞닥뜨리게 될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의 인격을 오염시키는 짓은 안 하는 게 좋아요.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되니까요. 여러분 뿐만이 아니라 주변 모든 사람들도.


(중략)


'나는 그냥 쉬운 길을 택할래. 그게 나중에 직장잡는 데도 도움이 될 테니까.'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정말 한심한 거예요. 진짜로요. 정말 한심한데 이건 제가 도덕적 판단을 내리려는 게 아니예요. 그런 짓을 함으로써 여러분 스스로를 약하고 비겁하게 만드는 건데 그런 짓을 한다는 게 한심하다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걸 정말 원해요?

강하고 정직한 인간으로 살 수 있는데 왜 약하고 비겁한 인간이 되길 원하냐고요.

그러니까 제 말은 여러분이 믿지 않는 것은 아예 말로 하지를 마세요. 여러분이 동의하지 않는 얘기는 특히 글로는 절대 쓰지 마세요. 정말 안 좋은 생각이예요. 정말 끔찍한 생각이죠. 그러니까 그런 짓은 절대 하지 마세요.

 

https://youtu.be/PlQUvGniRI0


'정신적 자유'를 떠올릴 때면 조던 피터슨의 이 말이 비엔나소시지처럼 따라붙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정신적 자유는 결코 쾌락에 휘둘려서 짐승처럼 날뛰어보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온갖 문명의 테두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보는 일에 가깝다. 그러기 위해서,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정확히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정확히 표현하는 일이 필요하기도 하다. 


글쓰기는 바로 그런 순간에 객관적인 이정표 역할을 해준다. 

 

그러니 누군가의 칭찬을 받기 위해, 누군가의 비난이 두려워서, 하지 않아도 될 친절한 말을 하거나 하고 싶은 독설을 안으로 삼키거나 하는 일은 창작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럴거면 창작을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러한 창작은 창작자의 정신을 자유케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단단히 옭아매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단지 휴가기간 동안만이 아니더라도, 계속 자유를 누리는 걸 멈추지는 말아야겠다. 재미있는 상상을 스노우볼처럼 굴려 끝간 데까지 가보게 해야지. 가장 작은 것이 되었다가 가장 큰 것이 되어야지. 가장 고결한 노래를 듣다가 가장 비천한 노래에 다다라야겠다. 


단, 현실에 발을 단단히 붙인 채로.



***


Writer's block Diary 시리즈 1~20일째 글은 아래의 브런치북 <작가들은 대체 왜 그래?>로 묶어둔 상태입니다. 브런치북과 매거진의 글은 한데 묶을 수가 없는 관계로 부득이 21일째 글부터는 매거진 <라이터스 블록 다이어리>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계속해보겠습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이전 글을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브런치북을 이용 부탁드립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ritersblo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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