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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리 Dec 09. 2022

아주 짧아도 됩니다. 그것이 이야기이기만 하다면요

Writer's block Diary: 27일째

https://1pagestory.com/2767/

 

누구에게나 소싯적이 있고, 내게 글쓰기의 소싯적은 아무래도 한단설 시절이었던 것 같다.


한단설이란 한페이지 단편소설의 준말이었고, URL은 1pagestory.com 이었으며, 생각해보면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 앞서간 아마추어 작가 플랫폼이었다. 황금가지에서 운영하는 브릿지(브릿G) https://britg.kr/about/ 나 교보문고의 창작의 날씨 https://nalcee.com/ 도, 그리고 물론 이곳 브런치도 아마추어 작가를 위한 플랫폼을 표방하고 있지만 우리의 한단설 커뮤니티는 그런 거대 자본을 비껴난 자리에서 태어났고, 그래서인지 끈끈했다. 


룰은 간단했다. A4 1페이지짜리 소설을 응모하고, 선정되면, 온라인에 정식 당선작으로 예쁜 그림과 함께 내 소설이 게시된다. 그러니까 최근에 짧은 소설, 그러니까 엽편 소설가로 유명해진 김동식 작가가 나타나기 한참 이전에, 한단설에서는 그러한 분량의 소설이 이미 유행하고 있었다. 


이렇게 100편이 모이면 운영자 서진 씨가 이를 묶어서 책으로 냈다. 당선자는 당선 상금 대신 ISBN 바코드가 찍힌, 표지 디자인도 새끈한 종이책을 배달받았다. 때로 테마를 정해서 소설집이 나오기도 하고, 인기 작가들의 작품은 PDF 형태의 전자책으로 발간하여 회원들이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었다. 


그때 활동했던 작가들은 지금, 문단과 출판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되어 있기도 하다. 운영자인 서진 씨 역시 2007년에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 http://www.yes24.com/Product/Goods/2644023  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비룡소에서 <아토믹스 : 지구를 지키는 소년> http://www.yes24.com/Product/Goods/30170643 이며 <아토믹스2 : 마음을 읽는 소녀> http://www.yes24.com/Product/Goods/43923951 를 냈으며 최근에는 창비에서 <마리안느의 마지막 멤버>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3768964 를 낸 중견 소설가가 되었다.


나는 아주 초창기에 한단설 멤버가 될 수 있었는데 고등학생 때인지 아니면 스무살을 갓 넘길 무렵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당시 한단설은 부산 지역 무가지, 그러니까 문화신문 보일라 voila 와 함께 하고 있었는데, 내가 한단설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온라인으로 인형을 샀더니 완충재로 보일라가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당시에 플레이밍 립스의 '요시미가 핑크 로봇과 싸운다' 라는 노래에 푹 빠져 있어서 이를 바탕으로 한 러브 스토리 하나를 한단설에 투고했다. 'No.53 머메이드 코코'는 그렇게 <한페이지단편소설 100>이라는 책에 실렸고 그것은 내 첫번째 출판물이 되었다. 

 

https://1pagestory.com/429/

 

그 이후 수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러 글쓰기 플랫폼이 생겨나고, 1000번째의 당선작에 이르렀던 한단설은 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십 수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랬다가 돌아왔다. 2022년 12월에. 그러니까 위의 링크는 아직도 살아있는 게 아니라, 이번에 되살아난 것이다.


그리고 나는, 기존의 선정자도 재투고가 가능하다는 정책에 따라서 새로운 이야기를 투고했다. 그때와는 아주 다른 지점에서 다시 한단설에 응모를 하며 휘르륵 써갈기는 즐거움을 오랜만에 느껴보았다. 그래, 이맛이야.


https://1pagestory.com/activity/?status/78-78-1670548592/


언젠가부터 중압감이 드리워진 글쓰기 생활에, 짤막한 이야기 쓰기는 내 숨통을 틔워줄 하나의 방편이 되어줄 듯하다.


그러고보니, 퍼뜩 떠오른 장면이 있다. 


내 닉네임은 처음 응모시에는 악당K였지만, 곧 긴나지가 되었는데 이는 월드 뉴스에 나왔던 러시아의 미치광이 빙판 드라이버 긴나지 씨의 이름을 훔쳐온 것이었다. 기자는 그렇게 하면 재미있냐는 질문을 던졌는데 당시 긴나지 씨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이렇게 대답했었다. 


재미있지 않다면, 지금 내가 이짓을 왜 하고 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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