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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림 Jul 02. 2024

윤슬, 반짝임이 머무는 곳

글감_죽음

 바다가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이 내 오랜 꿈이라서 생각이 많아지거나 기분 전환을 할 때면 물길을 따라 머리를 비워내곤 한다. 요즘에는 이렇게 무언가에 꽂혀 머리를 비우는 행동을 '~~멍'이라고 한다. 그러니 '바다멍' 이라고 하자.     

 겨울이 다가오면서 해는 더욱 빨리 진다. 해가 빨리 진다는 것은 밤이 길어진다는 것. 길어지는 밤에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괴롭혀 꼬리에 꼬리를 물기 때문에 긴긴밤은 싫다. 하지만 밤이 다가오며 내뿜는 차디찬 공기는 좋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바다 앞에 서면 바다내음이 코끝을 훅. 하고 찔러 순식간에 머리까지 상쾌해진다. 머리가 아파서 싫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이런 상쾌함 때문에 바다 중에서도 가장 차가운 겨울 바다를 좋아한다.     

 오후 5시에 가까워지자 서쪽에서 해가 천천히 지기 시작한다. 낮과 달리 붉게 자리 잡은 지는 해는 쳐다보기에 훨씬 수월하다. 매일 마주하는 해이지만, 오늘은 바다와 만나 해와 나를 이어주듯 주황빛 윤슬 길을 만들어 냈다.     

 윤슬. 순우리말로 반짝이는 물결을 말한다. 늘 푸른빛 윤슬만 보다가 주황빛을 만나니 찬란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것도 나와 해가 쭈욱 이어진 윤슬 길. 그렇게 한참을 넋을 놓고 찬란함을 만끽하다가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내가 죽으면 저 길 따라 뿌려지고 싶다.'라는. 물론 죽음에 관련된 말이라서 나를 생각하는 이들이 속상해할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미래에 일어날 일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니까.     

 죽음이란 실존하는 그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무서운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 죽음에 대한 단어만 들어도 겁을 먹고 며칠 밤을 고민하며 보냈다. 물론 현재도 죽음이 두렵긴 하지만, 그냥 순리대로 살다 가야 하는 것이 맞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죽음에 대해 별생각을 하지 않았다. 죽고 난 뒤에 상황이야 뭐. 내가 어떻게 알지? 라는 생각으로.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찬란히 빛나는 윤슬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저 물길 따라 뿌려지고 싶었다, 나도 저 찬란함 속에 섞여 길을 따라서 온 세상을 여행할 것이다. 지금은 수영은커녕 물에도 못 뜨는데 그때가 되면 물결을 둥글게 그리며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앞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이야기하니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해.'하고 나를 쪼아봤긴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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