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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림 Jul 02. 2024

대나무 담장

글감_빗

 아버지의 영정이 담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영정 속에서 몸이 쑤욱 빠져나와 말한다.

 

 “아직도 그 정도뿐이냐?”


 분명 돌아 가신지 3년이 꼬박 넘었는데 음성 하나, 숨소리 하나까지 기억난다. 짙은 눈썹 사이에는 항상 천(川) 모양의 주름이 져 있고, 마음에 들지 않은 부분이 생길 때면 오른쪽 눈썹이 올라가셨다. 오늘도 아버지는 그 얼굴을 하고 담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셨다. 늘 그랬듯 담은 아버지의 말에 고개 하나 들지 못한 채로 눈을 질끈 감아버린다. 꿈에서 깨어나니 베개는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담은 익숙한 일인 듯 머리맡에 놓인 피톤치드향 스프레이를 뿌린다. 악몽 아닌 악몽을 꾸준히 꾸다 보니 이제는 의연해진 것이 퍽 웃기다. 공허한 마음으로. 칙칙.

 거실에 나가니 어머니는 말없이 바닥을 걸레로 훔치고 계셨다. 담은 어머니께 고개를 꾸벅 숙이고 탁자에 세워진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았다. 꿈에서 본 것이 진짜인지 아닌지, 이제는 분간도 안 간다. 그리워하기에도 모자란 삶에 왜인지 모를 불편한 감정만 가득하다.

 담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어머니는 그제야 일어서시며 담을 쪼아본다.


 “당일분은 깔끔히 정리해라. 아버지가 제일 싫어하시는 행동인 거 모르니.”


 눈이 돌아갈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아낸다.


 이 집에서 의견을 내는 것만큼 무의미한 것은 없으니까. 섬뜩할지 몰라도 담은 아버지가 중환자실에서 눈도 못 뜨실 때 ‘돌아가시면 이제 숨 좀 쉬겠지.’하고 살짝 기대했다. ‘나도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겠지.’하고 말이다. 하지만 하루가 멀다고 꿈에 나오는 아버지와 그와 40여 년을 함께한 어머니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기대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담의 집안은 대대로 참빗을 만드는 무형 문화재 집안으로, 아버지는 그의 선대들이 그랬듯 당연히 빗을 만드셨고, 이제는 담이 다음 계보를 이어 6대 무형 문화재가 될 차례였다. 하지만 2023년에 참빗을 쓰는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건 2023년뿐만 아니라 담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 머리에 이가 생겨 반짝 흥행한 것 말고는 더는 볼 수 없었다.

 종종 판소리나 국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나 노인들, 일 년에 한 번 담이 사는 지역에서 주최하는 전시회 때만 참빗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 그마저도 담은 여태 살면서 딱 두 번. 아버지의 허락 안에 전시회에 작품을 낼 수 있었다. 그때도 딱히 기쁘지 않았다. 그저 ‘드디어 인정받았구나.’라고 생각할 뿐. 이런 하루하루가 얼마나 가는지 모르겠다는 고민 속에 담은 참빗을 만드는 자신이 참 의미 없게 느껴진다.

늘 그랬듯 아침을 먹고 작업실 탁자에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그러면 어머니는 미리 분절해두신 대나무를 담의 곁에 두고 가신다. 서랍에서 칼을 꺼내 대나무를 일자로 세워 대 뜨기를 하는데 아. 나무 사이에 흠집이 난 곳에 걸려 손가락이 찔렸다. 그만큼 집중을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담은 차분하게 집게로 가시를 빼내고 피를 짜낸다. 빨간 피와 담. 대나무와 담. 참빗과 담. 아버지와 담. 단어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두통이 온다. 쪼개지는 건 대나무가 아니라 담의 머리가 되었다.

 이래서는 오늘 빗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담은 생각의 고리를 끊어내려 밖으로 나온다. 호흡을 내쉬며 대나무 숲을 바라본다. 바람결을 따라 대나무들은 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담은 그게 마치 참빗과 함께할 자신의 인생 같다.


*대 뜨기: 대나무의 껍질과 속살을 분리하는 작업.   

제목의 '대나무 담장'은 예전에 집의 담장을 만들 때 담장의 형태가 둥글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에서 차용했습니다. 흙보다 더 잘 구부려져 대나무로 담장을 만들거나, 흙으로 만든 담장 안에 대나무를 심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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