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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치즈와케이크 Feb 21. 2022

친했던 누나와의 추억 3

누나(이하 큰 누나로 칭함)와 친해졌을 때 함께 친해진 한살 차이의 토끼 이빨의 누나가 있었다. 조막만한 얼굴에 예쁜 눈과 토끼같은 덧니가 인상적이었던 이 누나는, 또래에 비해 심하게 삭아보이는 나를 당연히 연상이라고 생각하며 내가 동생임을 밝히기 전까진 꾸준히 내게 목례를 건넸던 그런 누나였다. 친구의 친구가 모두에게 그렇듯이 우리도 서로의 친구였던 큰 누나가 없으면 몹시 어색해지는 사이였어서 어쩌다 집에 같이 가는 일이 있으면 질식할 듯한 침묵에 평범한 귀가길마저 괴롭게 만들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토끼 누나가 더 이상 불편하지 않게 되었을 때에도 친분의 크기는 여전히  누나쪽이 훨씬 컸었지만, 그런 토끼 누나에게  누나와 있었던 트러블을 진지하게 얘기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토끼 누나가 요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을 때에도 정곡을 찔리긴 했으나 아무 일 없던 척 했고, 왜 최근엔 언니와 밥을 먹지 않냐고 물었을 때에도, 사실을 얘기해 주진 않았다. 그저 토끼 누나가 내게 밥을 먹자 했을 때, 괜한 반발심이 들어 둘이 따로 나가서 먹자고 얘기했을 뿐이고, 식당에서 좁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마주했을 때 간만에 마음이 풀어져 충동적으로 누나와 있었던 얘기를 하소연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토끼 누나가 내 얘기를 들어줄때의 태도는 내 충동보다도 훨씬 더 무겁고 진지했다. 내 얘기를 경청하고, 반문하기도 하며 내 고민를 자신의 것처럼 무겁게 여겨주었다. 그런 누나가 '언니는 분명 널 아꼈고, 너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랄것이다' 라고 이야기 했을 때, 나는 평소라면, 지나칠 정도로 낙관적인 누나의 전망을 속으로 웃어넘겼겠지만 그날은 아늑한 분식점내의 분위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추운날씨에 발그레해진 토끼 누나의 볼을 봤기 때문인지, 나는 이상하게도 몹시 마음이 누그러져 누나의 그 말을 확신에 가까울정도로 믿었던 것이다.

물론 그럼에도 토끼 누나가 말했던 손편지를 써보라는 말에는 새삼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지만.

 바로 그 다음주, 나는 한손엔 빵이 든 선물을 들고 누나를 만나러 갔다. 그 선물은 토끼누나가 말한 손편지에 비하면 그 진심이 한 없이 가벼웠지만, 내 의사를 과하지 않게 보여줄 수 있으리란 기대가 담겨있었다. 곧 나는 누나를 발견하고, 정말 오랜만에 누나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내 부름을 받은 누나의 표정은 정말 뭐랄까, 여태껏 누나에게서 본적 없는 세상 모든 한기를 다 품은 듯한 차가운 표정이었다. 꼭 내가 누나에게 적개심을 드러냈을 때 보였던 그 태도처럼 말이다. 방금 전까지 토끼 누나의 격려를 등에 업고 의기양양했던 나는 그 한기에 급격하게 용기가 떨어지기 시작해서 급한 불을 끄듯이 황급히 선물부터 건넸다.

"이거 선물이에요."

내가 말하자 누나는 방금의 그 표정을 풀지도 않은 채로 물었다.

"왜 주는거야?"
'아니, 그걸 몰라서 물어요?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데!'

라는 생각을 나는 속으로만 하며 말했다.

"잘 지내보자고 주는거죠."

 내가 용기가 다 떨어진 채로 우물거리자 누나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끄덕거렸다. 내가 분위기 환기를 위해서 무언가를 더 얘기하려 하자 누나는 그런 나의 말을 끊고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그 사람에게 가버렸다. 나는 허공에 쏟아진 내 말들을 보며 멍하니 방금 전까지의 일들을 되새김질 하기 시작했다.


 '당했다'


 내가 제일 처음 떠올린 생각이었다. 누나의 저 의도된 차가움은 확실히 내게 되돌려주기 위함이었다. 자신이 내게서 받은 차가움을, 똑같이 느껴보라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하필 그때의 나는 토끼 누나로 인해 마음속의 경계가 완전히 내려가 있는 상태였기에, 미처 방어하지도 못한 채, 그녀의 기습을 정통으로 맞은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이런 상황에서 생길 상처를 방지하기 위해 그녀와 거리를 두었던 것인데, 정작 그녀와 다시 가까워지려 하니 내가 우려했던 상황이 생겨버린 것이다.

 물론 내가 선물을 건네 주었을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동안의 앙금을 포옹으로 모두 풀어버리는 극적인 전개를 기대했던 건 전혀 아니었지만, 누나의 저 모습은 뭐랄까. 조금 지나칠정도로 현실적이었다. 하지만 토끼 누나가 내게 말해주고 내가 기대했던 것은 그저 현실적인 주제 파악이 아니었지 않은가. 나는 괜히 기대했던 만큼, 토끼 누나에게 감동해 용기 얻었던 만큼, 크게 무너지고, 상처받았다.


  그 후 일주일 뒤  누나는 간만에 내게 인사했다. 분명 사이가 한창 좋았을 때와 다르지 않은 분위기와 말투였고 몇일 전까지만 해도 내가 누나에게서 돌아오기를 바랬던 모습이었음에도, 왜 나는 그 인사에서 대학부 초기에 다른 사람들이 내게 보여준 그 부자연스러움이 비추어 보였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누나의 인사는 마치 내가 준 선물의 영향으로 인한 누나의 선심처럼 느껴지기도 해서 나는 간만에 받은 누나의 인사가 그렇게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불쾌감은 누나가 내게 작별인사를 해주었을 때 정점에 달하여, 나는 자꾸만 몸에서 솟아나는 욱하는 감정을 견디지 못하고 누나의 그 작별인사에 이렇게 답했다.

"억지로 인사 좀 하지 마세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말을 들은 누나는 피식 하고 쓰게 웃더니, 고개를 돌려서 나를 향해,

"너 진짜 왜그래?"

라며, 몹시도 원망하는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때 누나의 표정엔, 여러가지 감정들의 혼합으로 잔뜩 격앙되어있던 내게도 닿을 정도로 지극한 원망과 쓰라림이 담겨있었다. 누나의 그 원망엔 매우 감정적인 미움과 배신감이 담겨있으면서도 동시에 미세한 애정마저 느껴지는듯 해서 적대적인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나는 누나가 쏟아내는 그 감정의 호우에 잠겨, 감히 아무런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누나가 등을 돌려 떠나는 순간까지 사고의 마비를 겪고 있었다. 눈 앞에서 누나가 없어지고, 내 감정이 대상을 잃고 허공을 맴돌고 있었을 때, 나는 내가 느끼고 있던 갈등의 실체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분명 몇 달전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분명 누나가 내게 준 친밀감은 실존했는데.

분명 나는 누나를 가깝게 생각했는데.

내가 원한 건 이런게 아니었는데.


하고 무의미한 회고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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