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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나해 May 21. 2022

책리뷰 |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개성과 인간성을 지키려면


내가 사는 곳이 바로 멋진 신세계


 걱정도, 불안도, 심지어 노화도 없는 행복한 그 사회는 불완전함 그 자체지만 그런 자각조차 할 수 없도록 문명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 세계에 속한 문명인들은 개개인이 아닌 집단의 한 부분으로 존재하고 살아간다.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는 거대한 기계의 작은 부품, 혹은 작은 톱니바퀴와 비슷하다. 개인의 종말,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에 대하여 스스로 만족해한다. 집단과 통제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또 그들은 신체와 얼굴의 유형도 정해져 있어 서로 비슷한 체형을 가지고 또 얼굴을 가지고 있으며, 소마라는 약물을 통해서 불안, 우울, 비극, 슬픔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잘 짜인 행복한 계급사회에서 어떤 의문도 갖지 않은 채 살아간다.


  겉보기에 참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반쪽짜리 행복이란 생각만이 든다. 타인의 인정에 우쭐하는 버나드에게서 그나마 인간미가 간신히 보인다. 버나드는 그 완벽한 세계에서 의문을 던지며 상황의 타파를 꿈꾸지만 끝내 집단 속의 안정, 문명에 기대는 인물이다. 버나드를 보면 거부할 수 없는 과학 문명에 갈등하고 혼란스러워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나는 확실히 우리가 사는 이곳이 멋진 신세계랑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우린 문명 편의의 정점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며, 과학의 발전에 대한 욕망은 절대 후퇴하지 않는다. 과학 우위의 시대.

 인생의 고뇌, 우울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 주변엔 언제나 강렬한 중독이 있고 그것에 쉽게 중독될 수 있다. 중독에 굴복되는 우리의 모습은 소마에 의존하는 이 세계의 문명인들과 다를 게 없다.

 미개척지의 부족사회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우월감 혹은 그들에게 보내는 신기한 눈빛마저 이 세계의 문명인과 닮아있다.


  또한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의 바다에서 살아가며 스스로 생각할 힘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다.  결국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말이 종종 사람들의 대화에서 올라오곤 한다. 차라리 생각하지 않음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모르면 행복할 수 있으므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불편함, 죄책감을 일시적으로 덜기 위해. 이런 게으름은 결국 우리 스스로 노예가 되길 자처하는 것이다. 슬픈 감정과 비극을 왜 느껴야 하냐는 레니나처럼 정말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완전히 동화된 행복한 노예로서..., 개성과 인간성을 잃고 집단의 한 부품으로써 소비되는 일.  물론 그 정도로 인간성이 상실되면 아마 이런 걱정들을 기억조차 못하겠지?


개성과 인간성을 지키려면

  멋진 이 신세계에 사는 나는 하나의 대체품이 되지 않기 위해, 행복한 대체품으로 남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인간을 그 인간으로서 존재토록 하는 것은 무엇일지. 각각이 가진 개성과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국장과 야만인의 대화 부분에 나왔던 "오래된 쥐가 갉아먹은 책"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옛것을 본받자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진 않다. 그러나 노예적 상태에 넋을 놓고 끌려들어 가지 않기 위해서는, 그렇게 인간성과 개성을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면의 감성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 위해서 결국 오랜 세월을 그 자리를 지켜온 책, 철학, 그림 등의 예술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에 있는 정해진 폰트 말고 내 손으로 쓰는 내 손글씨체가 가장 고유한 것처럼. 오래된 쥐가 갉아먹은 책을 읽으면서 가장 나다운 것을 끊임없이 세우고 정의하기를 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 삶의 희노애락을 상기해줄 예술을 가까이 하며. 아직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문명 과잉 시대에서 야만인이 줄줄 읊어대던 셰익스피어가 참 연약한 방패막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들으며 악의 없이 웃음을 터뜨리는 문명인들을 보면서는, 뭐만 하면 '오글거린다'라고 말하는 요즘의 감성이 떠올라 버렸다.


1984보다 잔인한 멋진 신세계

  읽기에 멋진 신세계가 좀 더 어렵다고 들었는데 책의 분위기는 의외로 1984보다 멋진 신세계가 훨씬 가벼웠다. 오히려 그래서 더 기괴하고 소름 끼치게 다가왔던 듯하다. 문명인들의 아무것도 모르는 경박스러움이 1984 빅브라더의 폭력성보다  더 피폐하고 더 불쾌한 기분을 들게 했다. 특히나 끝까지 야만인을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그 잔인함이 텍스트로 읽음에도 참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개성과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우린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블로그도 구경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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