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주 사소한 것도 후회하는 못난 습관이 있다.
제 버릇 개 못준다고 했던가. 늘 후회를 입에 달고 산다.
'아~ 이럴걸... 저럴걸... 하지 말걸... 괜히 했네...'
이젠 나 자신조차도 듣기 싫은 소리. 지긋지긋하지만 못 떨쳐낸 진득한 그림자 같은 녀석이다.
오늘도 난 남편과 아이 앞에서 후회했다. 아이가 빨대컵을 들고 있다가 물을 왈칵 쏟아버린 것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느라 남편에게 물 좀 주라고 부탁했는데, 아이가 좀만 건드리면 확 열려버리는 서브 빨대컵으로 준 것이 아닌가.
"아 내가 괜히 씻어놔서 헷갈리게 했네, 그거 말고 저 긴 컵으로 쓴 지 오랜데..."
남편은 알 턱이 없다. 내가 빨대컵을 바꿨다고 이야기하지 않았으니까.
진작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고서는 후회하는 이 바보스러움이란..
남편은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
"여보, 그런 말은 자제했으면 좋겠다. 쉽게 후회하는 버릇... 여보는 오래되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데,
나는 우리 애가 그 나쁜 버릇 안 배웠으면 좋겠다."
사실 이 말을 듣고서는 섭섭함이 파도처럼 몰려왔다.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닌데 말이다. 후회한다고 이전의 실수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닌 걸 아는데, 잘 안 되는 걸 어떡하나.
일요일 저녁, 화기애애하게 밥 먹고 싶어서 열심히 준비한 특별한 저녁이었는데. 결국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밥만 먹었다. 남편 말이 맞아서 부정할 수도 없고 할 말도 없었다. 나도 아이에게 이런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데 속상했다.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 훌훌 털고 넘기는 것도 필요한데, 쿨하지 못한 내가 밉기도 했다.
게다가 오늘의 후회는 나에게 2 연타를 날렸다. 오늘 아이의 저녁 메뉴는 쌀국수 조금과 고구마, 닭죽이었다. 매번 아이가 작은 조각을 한입에 넣고 웩웩거리다 보니 조금씩 베어 먹으라고 큰 덩어리를 준 게 화근이었다. 큰 덩어리를 날름 삼켜버린 아이는 물을 마셔도 속이 안 좋은지 잘 먹던 죽도 외면했다. 마시는 것만 먹히는지 분유는 먹는데, 200ml를 주고도 칭얼거려서 120ml를 더 주었는데 트림을 안 하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잠을 못 자서 더 주다 보니 저녁 수유만 420ml가가 되었다. 많은 양의 분유를 먹은 아이는 토닥여줘도 트림을 잘 못했다. 낮잠에서 깬 지 6시간이 지나도 잠 못 들고 망아지처럼 침대 위를 굴러다녔다. 쉽사리 잠에 못 드는 아이의 모습에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왔다.
"아기들은 속이 불편하면 더 먹으려 하기도 한다던데, 잘못 준거 아닐까? 어쩌지.. 어떡하면 좋지."
"오늘 괜히 고구마랑 국수를 줬네. 국수 안 끊어먹던데... 고구마를 좀 잘라서 줄걸."
남편은 그 상황에서도 말없이 묵묵히 아이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늘 이런 식이다. 나는 자책 연발에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우왕좌왕하고, 남편은 이성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 부부지만 정반대의 모습이다.
아이는 결국 남편 품에 안겨서 꺼억 트림도 하고 스르르 잠들었다. 남편이 아이를 침대에 살짝 눕혀주고서야 길고 길었던 밤잠 재우기의 여정이 끝났다. 나는 잔뜩 넉다운되어서 잠시 뻗었고, 남편은 곧바로 설거지를 하러 나섰다.
20분가량 지났을까,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오니 남편은 집안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남편은 날 보더니 다정하게 안아줬다. 그리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뒷정리할게. 우리 OO이 하고 싶은 것 다해~~ 블로그 할래???"
남편의 따뜻함에 후회만 가득했던 내 마음이 녹았다. 몽글몽글해진 마음. 미안하고도 고맙다.
오늘 하루를 돌아보며 나 자신에게 기억하라고 재차 이야기한다.
"그래, 이렇게 후회만 하면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후회는 행복을 바로 곁에 두고도 스스로 불행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다. 우리 아이에게는 행복해지는 습관들을 가득 안겨주자."
앞으로는 어디서든 후회하는 말을 하면 내 입을 찰-싹 찰지게 때려볼까 한다.
나 자신과의 약속!
서서히 후회와의 작별을 준비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