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멀쩡한 커피를 왜 버리는 거죠?”
2012년 10월 어느 날 지인이 운영하는 읍내 카페에서 모임이 있었다. 막 이층에 있는 카페로 올라가는데 카페 주인장이 멀쩡해 보이는 커피를 버리고 있었다.
“예, 오래 묵은 커피생두는 상품가치가 없어 버려야 해요.”
그렇게 말끝을 흐리는 주인장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간장과 젓갈이 떠올랐다. 오래 숙성시킬수록 맛이 깊어지고 약성이 좋아지는 발효의 공덕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커피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였다. 차에 대해서는 이미 덖음차를 뛰어넘어 발효차 제조원천기술을 개발완료한 전문가였지만, 커피는 이따금 자판기에서 믹스커피를 뽑아먹는 것이 전부일만큼 문외한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훗날 나의 커피 선생님이 된 그 카페 주인장을 만난 그날 이후 커피에 급관심이 당겼고, 그렇게 필자 누룩박사의 K-발효커피 개발 프로젝트가 시동이 걸렸다.
“어라, 이거 생각보다 만만치 않네…”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이미 발효차 제조기술이 궤도에 올라선 탓인지 발효커피도 금방 만들어질 것 같았다. 그런데 넌센스였다. 다음 날 카페에 들러 원두를 구입해서 발효를 시켰는데 발효취가 약간 풍기기는 했지만 맛과 향과 풍미에 큰 변화가 없었다. 고민이 깊어졌다.
이렇게 시작된 발효커피 개발 프로젝트가 2023년 6월이면 어느덧 햇수로 10년째로 접어든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고,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속설도 있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이게 의미 있는 작업인지, 혹시라도 도로마이타불이 되는 건 아닌지 염려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에는 몰라, 그래 뚝심으로 밀어붙여 보자!”
그렇게 결단을 내린 이후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노심초사 공을 들였다. 안되면 어떡하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1년, 2년, 3년이 흘렀다. 천만다행으로 프로젝트 시작 3년이 지나면서 하나둘 실마리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 정말 미치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나둘 의미 있는 성과가 나오기 시작해 가능성은 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예기치 못한 자금난까지 겹쳤다. 첩첩산중인 현실 앞에 고뇌가 파도처럼 몰려왔다. 아, 정말 미치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