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화받았습니다
‘당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이며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소?’
커피와 관련해서 스무 꼭지를 목표로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한 지 어느덧 다섯 번째가 되었다.
다섯 번째 꼭지 기념으로 사설 한 가지 늘어놓기로 한다.
며칠 전 강의 마치고 집에 와서 자료 정리하는 중에 부재중 전화가 눈에 들어와 메시지를 확인했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전화를 걸었다.
전통주 사업을 하고 싶은 사람이 발효전문가이자 커피와 차음료의 최고수인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했다.
‘시장은 청춘남녀의 로망도 아닐뿐더러 아이들의 놀이터는 더더욱 아닐세, 얼마나 대단한 사업을 펼치고 싶은지, 얼마나 공력이 깊은지 모르겠지만, 나 만나서 무엇을 할 건데?’
나한테 솔루션을 자청했던 그 사람한테 ‘정말 고맙다, 선생님께 전화해서 조언을 구한 게 천만다행이다’라는 알량한 인사를 끝으로 통화를 마쳤다.
‘시장은 쥐락펴락 내 맘대로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한때 내가 사는 지역 언론사에서 '지역상권을 살리기 운동'을 펼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사설을 통해 나는 이렇게 주장했다. 1995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상권은 맘대로 쥐락펴락 살리고 죽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닐뿐더러 운동을 통해 살리고 죽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상권을 살리자는 논리 자체가 어폐가 있다. 현실을 직시하자. 진실고 지역상권을 살리고 싶다면, 그리고 정말 그런 의지가 있다면 상권 살리기 운동 운운하기 이전에 임대료를 내리기 운동을 하는 것이 올바른 생각이 아니겠는가. 그래야 업을 영위하는 입주상인이 숨통이 트일 것이고, 숨통이 트여야 살던 죽던 가닥이 나지 않겠는가'
그 당시 내가 기고한 사설의 요지는 '이른바 지역언론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언제까지 인기 연연하며 변죽만 울릴 것인가, 본질을 바로 보고 가장 적확한 솔루션을 제시하는 것이 언론의 역할과 기능이 아니겠는가'였고 그 생각의 지금도 변함이 없다.
"박사님, 잠깐 인사 나누세요.“
공교롭게도 그날 강의 마치고 집에 와서 자료 정리하는 중에 또 다른 전화를 받았다.
"박사님, 잠깐 한 분 소개해 드릴게 인사 나누세요."
"예,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무봉명정>과 <중추가절> 정말 맛있습니다. 꼭 만나 뵙고 싶습니다.(하략)"
이렇게 2023년 4월 즈음에 그 나라에서 10대 차의 명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해외 차 전문가와 미팅 약속이 잡혔다.
필자 누룩박사가 운영하는 밴드에서도 이미 우리 야생차 단지 조성 관련 소식 전해드린 적이 있는데, <무봉명정>과 <중추가절>은 누룩박사가 전략적으로 선택한 발효차 브랜드 네이밍이다.
네이밍에도 나름 무척 고심했다.
우리나라 차문화의 3대 다성으로 추앙받고 있는 완당과 초의와 다산 선생, 필자는 완당 김정희 선생의 출생지 예산에 살고 있고 성씨 또한 같은 경주 김 씨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전라도 익산 부근이 차 재배의 남방한계선으로 알고 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내가 즐겨 산책하는 ‘향천사’에 이미 차를 재배했던 흔적이 역력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완당선생의 작품 중에 ‘정좌처 다반향초, 묘용시 수류화개’ 대련이 있다. 완당선생의 창작은 아니고 북송시대 명필 산곡도인 황정경이 원작자로 알려진 그 대련에서 차용한 브랜드가 <다반향>, 그리고 <중추가절>은 필자 누룩박사가 최초로 개발한 가을차 브랜드고, 일본의 향차를 압도하고 싶어 개발한 다품의 브랜드가 <중원향차>다.
차는 크게 대엽종과 소엽종으로 나누는데,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차는 소엽종이고 중국차는 대엽종, 옥로차와 녹차 브랜드를 상용화시킨 일본차는 개량종 가나야미도리다.
암튼, 누룩박사는 지난 2008년부터 중국 보이차를 능가하는 K-발효차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K-발효차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같은 맥락으로 2013년 커피와 코코아 가공 원천기술도 확립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한류커피차문화 프로젝트가 닻을 올린지 어느덧 올해로 만 15년 차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롭고 힘든 여정이었지만, 누룩박사는 지금도 초지일관 '당장 돈이 안 될지는 몰라도 내가 공들인 성과물들이 적어도 미래 100년은 먹여 살릴 자산이 될 것이다'라는 소신으로 묵묵히 연구개발과 품질고도화를 위해 공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런 차에 누룩박사의 소신을 믿고 기대하며 응원하신 고마우신 분들께 기쁜 소식 전해 들은 터라 감개가 무량할 따름이다.
하늘과 땅이 무너져도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는 법, 나라 안팎에서 펼쳐지는 정치경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종잡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고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막막한 현실 앞에 때때로 주눅이 들곤 한다.
독자들께서도 공감하겠지만 어느 것 하나 녹록지 않은 것이 작금의 현실인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 마음을 추스르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독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절벽 같은 막막한 현실에 직면했을지라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다. 사명을 가진 자는 죽지 않고 하늘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잠시 숨 한번 돌이키고 하늘 한번 쳐다보고 공력을 집중하자. 머지않아 반드시 한류커피차문화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