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오사카의 이츠오 미술관
학위 논문을 쓰려고 산속 오래된 절에서 몇 달간 지낸 적이 있다. 옛날 고시생처럼 속세와 거리를 두고 공부에 매진하려던 것은 아니고, 불교 무형문화재를 논문 주제로 삼고 있어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함이었다.
처음엔 학문적인 목적으로 접근한 것이었지만, 절에서 잠도 자고 공양밥도 먹고 보살님, 거사님들과 가까워지고, 잠을 이루지 못한 날에는 밤 산책을 하다가 눈을 부릅뜬 사천왕이 무서워서 헐레벌떡 방으로 들어가고, 여지없이 울리는 새벽 종소리에 깼다가 다시 잠들고…, 그런 날이 계속되자 문득 놀라운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월세도 내지 않는 나는 어떻게 여기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내고 있는 건가? 이 절간은 도대체 왜 성가신 학생에게 혼자 쓰는 방도 내어주고 밥도 먹여주는 넉넉한 인심을 쓰는가?
스님은 종종 나를 불러 차담을 나누자고 하셨다. 스님이 부르시면 익숙하지도 않은 절도 해야 하고, 뭐라고 운을 떼야할지도 모르겠어서 약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군식구 된 입장으로 어찌 스님의 말씀을 거스른단 말인가. 나는 산을 기어올라 굴뚝에 연기가 폴폴거리는 암자에 가서 스님 앞에 앉았다. 그곳은 찻물의 때가 스며든 다기와 물을 끓이는 주전자 소리, 그리고 오래 묵은 나무 향이 배어있는 공간이었다. 스님이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자고 부르신 게 아니라는 걸 알고는 아무 생각 없이 들르는 곳이 되었다.
스님은 나에게 따뜻한 방석을 스윽 밀어주고 오늘은 어떤 차를 마시자며 마음에 드는 찻잔을 골라보라고 하신다. 스님의 다기 컬렉션을 보는 일은 재미있다. 아무런 특색이 없는 건 하나도 없다. 언뜻 심심해 보이는 하얀 찻잔이어도 부드러운 곡선 끝에 이파리처럼 살짝 벌어진 입모양이 귀엽다. 스님은 내가 고른 찻잔을 뜨거운 물로 흠뻑 적시듯 데운 후 다시 비워낸다. 그리고 마른 찻잎을 뒤적이며 서걱거리는 소리는 차의 세계로 들어가는 신호다. 찻수건으로 주전자 입구를 훑고, 숙우로 물을 식히는 스님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곧이어 찻잎의 색이 다관 안에 퍼져나간다. 고아한 손짓으로 찻물이 채워지는 찻잔을 빤히 바라보면 절로 마음이 경건해진다.
학위를 마친 것도 8년이 되었으니 오래전의 일이다. 그 이후로 차를 마신 게 언제였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특별히 차를 좋아하지 않고는 별로 마실 일이 없다. 손 닿는 곳에는 에스프레소 머신과 드립커피가 있고, 직장 동료들과 저녁 모임을 잡아서 들르는 요즘 인스타그램에 뜬다는 레스토랑에서는 이탈리아 요리와 페어링 한 와인을 마신다. 잘 보이지 않아서, 그래서 그런 걸까. 차는 커피나 와인보다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진다. 다도(茶道)는 더욱 어렵다. 차를 마시는 행위에 일정한 절차와 문화적 소양을 접목하니 어디선가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고는 알기 어렵다.
지하철을 타고 오사카의 이케다(池田)로 향하는 길이었다. 차량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그나마 있는 사람들도 꾸벅꾸벅 졸거나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는 주말의 정오였다. 어느 중간 정류장에서 유모차를 끄는 젊은 아기 엄마들이 올라탔다. 유모차 때문인지 빈자리가 많아도 앉지 않고 아기를 살폈다. 아기들은 희한한 옹알거림을 하다가 갑자기 빽 소리를 지르고 다시 웅얼거렸다. 나는 아기의 재미있는 얼굴을 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층짜리 주택가가 빈틈없이 이어지는 이케다의 풍경이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평화롭기까지 하다면 그건 내가 여행자이기 때문일까. 관광객이 떠밀리듯 우르르 내리는 우메다나 난바와는 전혀 딴 세상이다.
이케다역까지 나를 데려다준 한큐 전철이 다음 정거장으로 떠났다. 새삼 지금 향하는 이츠오 미술관이 한큐 전철의 창업자, 고바야시 이치조(小林一三, 1873~1957)가 소장했던 예술품을 전시한 미술관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고바야시 이치조는 간사이 지방에서 영향력이 대단했던 인물이다. 은행에서 근무하던 그는 철도 사업에 손대면서 이곳 일대의 부동산과 백화점 소매업 등을 연결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우메다역에 있는 한큐 백화점이 그 시작이었다. 지금도 일본은 철도를 중심으로 상권이 거미줄처럼 엮여있다. 그가 만들어낸 시스템이 일본 철도만의 독특한 골자를 이룬 것이다.
고바야시 이치조가 문화예술 분야에 끼친 힘도 빼놓을 수 없다. 프로야구단 오릭스 버팔로스와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다카라즈카 가극단, 영화 배급사인 도호 등 다양한 문화사업에도 뻗어 나가며 의욕이 넘쳤다. 예술품에 대한 수집욕도 대단하여 소장품을 모아 이츠오 미술관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츠오 미술관은 문화재로도 등록된 중요한 미술품도 많이 소장하고 있다. 이번 기회에 혹시 요사부손의 작품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며 입장했지만 미술관은 고바야시 이치조가 태어나고 150주년을 기념해 그가 사랑했던 다구를 전시하고 있었다.
그는 다인(茶人)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다구를 일괄적으로 구입하지 않고 하나하나 눈으로 확인해 그의 미적 취향에 맞는 걸로 골랐다. 일본에서는 손님을 초대해서 차를 끓이고 함께 마시는 모임을 ‘차노유(茶の湯)’라고 한다. 단어를 그대로 풀이하면 차를 끓이는 물이겠지만, 차노유는 주인이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는 환대의 미학과 예의를 포괄하는 일종의 의식이다. 그래서 전시의 제목도 ‘즐거운 차노유(楽しい茶の湯)’. 다도가 즐거우려면 얼마나 차에 통달해야 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티켓을 구매했다.
전시실은 아무도 없어 조용했다. 모든 유물을 한눈에 담을 수 있을 만큼 작은 전시실이었다. 구석에 나무 의자 있어서 앉았다. 관내는 촬영이 금지되어 핸드폰은 아예 꺼내지도 않고 대신 연필로 리플릿에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 소란한 소리가 들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전시실로 들어왔다.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들이었다. 아마도 다과회 모임에서 함께 찾아오기로 한 것일 테다. 가장 앞장섰던 할머니는 연필로 뭔가 열심히 적는 나를 발견하고, 뒤를 돌아 ‘쉬잇!’이라며 친구들을 단속했다. 미술관에서 공부하는 학생을 위한 배려였을 텐데, 사실은 패널에 적힌 한자가 어려워 나중에 찾아보려고 한자 그림을 그리던 외국인 관광객이었다.
떠듬떠듬 컬렉션의 이름과 짤막한 전시 설명을 읽으며 전시를 구경하던 중이었다. 족자에 걸린 그림 한 점이 눈에 들어왔다. 이름은 다이코쿠와 가랑무 그림(大黒股根図), 에도시대 작품이고, 출품목록에는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의 것이라 적혀있었다.
아이가 장난을 쳐도 너털웃음으로 넘길 것 같은 푸근한 인상의 남자가 거대한 가랑무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다. 무거운지 몸은 잔뜩 움츠러들었는데, 그래도 얼굴에 미소는 가시지 않았다. 간단히 설명된 패널을 읽으니 그는 다이코쿠사마(大黒様), 일본에서 모시는 신이다.
원래 대흑천(大黑天)은 인도의 마하칼라 신을 말하는데, 불교가 일본에 전래되는 과정에 토착화되어 ‘다이코쿠(大黑)’, 그리고 신이라 높임말인 ‘사마(様)’를 붙여 ‘다이코쿠사마’라고 부른다. 한국에는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자손 번영이나 사업 번창을 위해 기도하는 대상이라 인기가 많은 신이다. 그래서 다이코쿠사마를 모시는 신사도 여럿이고 매년 1월 도쿄에서는 다이코쿠 마츠리도 연다.
그런데 다이코쿠 신은 왜 뿌리가 갈라진 가랑무를 짊어지면서 웃고 있는 걸까? 일본에 전해 내려오는 옛 민담에 그 해답이 있다.
옛날 옛적, 눈이 내리기 전인 음력 11월에 사람들은 무를 뽑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리고 무를 많이 뽑으면 한 해의 풍작이 좋았다고 다이코쿠사마에게 가서 감사 인사를 했다. ‘올해 다이코쿠사마 덕분에 풍작이었습니다. 내년에도 큰 수확을 얻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러면 다이코쿠 신은 허허,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내년에도, 그 후년에도 도와주리라 약속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따르고 좋아할 수밖에.
북쪽 산에 살던 다른 신들은 그 모습을 보고 질투를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북쪽 산의 신들은 다이코쿠 신을 죽일 계획은 세웠다. 어떻게 죽이냐면, 떡을 아주 많이 먹여서 배가 터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떡을 많이 만들어 다이코쿠 신을 초대해 대접하기로 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이코쿠 신은 떡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이 준비한 떡을 웃으면서 다 먹어버렸다. 북쪽 산의 신들은 다이코쿠 신을 죽이는 데 실패했다고 좌절했다.
문제는 다이코쿠 신이 북쪽 산을 내려오면서 생겼다. 떡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불룩해진 다이코쿠 신은 데굴데굴 구르면서 복통을 호소했다. ‘배가 아프다! 너무 아파!’ 그 소리를 듣고 냇가에서 무를 씻고 있던 마을의 여인이 달려왔다. 여인은 큰 저택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다이코쿠사마, 무슨 일이세요?’ 여인이 묻자 다이코쿠 신은 떡을 너무 많이 먹어 배탈이 났으니 무를 좀 달라고 부탁했다. 무를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여인은 눈물을 흘리며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무를 드리면 무의 개수가 맞지 않다고 저택에서 쫓겨나고 말 거예요.’ 마음씨 착한 다이코쿠 신도 억지로 무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때, 여인에게 좋은 생각이 났다. ‘다이코쿠사마, 이렇게 하면 무를 드릴 수 있겠어요.’ 그러더니 뿌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가랑무 한쪽을 뚝 잘라서 다이코쿠 신에게 주었다. 이렇게 하면 무의 개수는 그대로다.
가랑무 한쪽을 먹은 다이코쿠 신은 배가 쏙 들어갔다. 그림 속 그의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복통이 사라져 후련한 표정인 것이다. 무가 소화제 역할을 하는 건 영양학적인 사실이기도 하니 참 흥미로운 옛날이야기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다이코쿠 신에 제사를 지낼 때, 오소나에(お供え; 둥그런 찰떡)와 가랑무를 함께 바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외친다. 다이코쿠사마, 귀를 열고 있을 테니 좋은 소식을 들려주세요.
※ 다이코쿠 신과 가랑무 민담을 각색해 보았습니다.
그림 한 점, 찻잔 하나도 직접 취향껏 골랐을 고바야시 이치조는 다과회를 준비하면서 다이코쿠사마가 그려진 작은 그림을 꺼냈을 것이다. 그리고 족자를 도코노마에 걸며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초좌(初坐), 즉 다과회를 시작하면서 먼저 드리는 떡을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됩니다. 배가 아플 수 있거든요. 그러면 손님들은 속뜻을 알아차리고 배가 부르지 않게 조금씩만 먹었을 것이다. 그래야 후좌(後座)에서 주인이 정성껏 우려낸 차를 음미하는 데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
이츠오 미술관에서 일요일은 특별한 요일이다. 미술관 입구에 마련된 작은 다실에서 간소한 차노유가 열리기 때문이다. 고바야시 이치조가 직접 자신의 산장에 만들었던 즉암을 미술관에도 재현하여 이름을 ‘즉심암(即心庵; 소쿠신안)’이라 붙였다. 즉심암에서는 차를 끓이는 다다미 공간이 무대가 된다. 주인은 다다미에 앉아 공기를 훈훈하게 덥히며 물을 끓이고, 손님은 무대 아래 마련된 의자에 앉아 말차를 즐긴다.
차는 어렵다. 하지만 다과회에서 손님은 그저 주인이 준비한 다과를 즐기면 된다. 오늘은 어떤 차인지, 찻잔이 예쁜데 어디서 구했는지, 뒤에 걸린 그림은 어떤 시구가 적혀 있는지 관심을 갖고 눈여겨 살핀고 묻는다면 주인은 보람되고 다과회는 더욱 뜻깊어진다. 따뜻한 차 한 잔에 손님을 위한 배려와 반갑게 맞아주고픈 마음이 담겨 있으니. 만약 그조차도 어렵다면, 차를 내어준 주인에게 객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이렇게 화답하면 된다. 차향이 참 좋습니다.
※ 다이코쿠 신과 가랑무 그림은 이츠오 미술관에서 사진 촬영이 불가하고 컬렉션이 공개되지 않아 가장 유사한 그림으로 대신하였습니다. (출처: 시마네현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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