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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는여름 Nov 14. 2021

마흔여덟, 신입입니다_2주차

신규공무원 2주차: 자격지심이 강화하지만 여전히 서툰 은신술

 어땠냐면 마르고 까맣고 어깨가 처진 볼품없는 어린애였다. 그런 데다 붙임성도 없어 귀여운 구석이라곤 1도 없었으니 누가 먼저 손 내밀어 친하게 지내자고 할 만한 타입이 아닌 거다. 성장하면서는 적당히 사회화도 하고 운도 따라 마음 맞는 이들을 간혹 만나 나대던 시간도 좀 있긴 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걸 잘했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여행 가고.

 그랬는데! 지금은 혼자일 수 없다. 아무도 나를 주시하는 이 없거늘 나 스스로 자가 검열 중이라. 내가 혼자 밥을 먹는다? 혼자 커피를 마신다? 이 모습이 눈에 띄는 순간 내가 무리에 적응을 못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는 셈이 될까 봐.

 아하, 땡땡 씨, 역시 우려했던 대로 조직에 전혀 적응을 못하는구먼. 역시 공무원 시험에도 어느 정도 나이 제한을 두긴 해야 할 것 같아. 이렇게까지 이야기가 진행돼 무수히 많은 연로한 취준생들의 꿈을 꺾는 계기를 만들면 어쩌냔 말이오.

 하여 나는 현장실습 주간을 포함 3주 동안 미적미적 젊은 신입들 틈에 끼어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신다. 그러던 것이.


 하아, 마침내 동기 회식이 잡혔다. 아니, 요즘 젊은이들은 회식을 극혐 하며 지극히 개인플레이를 펼친다더니 이곳 젊은이들은 어찌하여 이토록 함께하는 것을 선호한단 말이오.

 위드 코로나의 시대가 열리고 나의 고민도 열리고. 나는 조금 갈등을 한다. 참석을 할까. 차후는 어떠하든 첫 회식부터 불참은 아니지 않나? 아니지, 내가 참석하지 않는 편이 그들에게 오히려 좋지 않나? 그 사이에서 결국 지극히 사회인적 결론을 내려 참석을 하긴 했다. (물론 바람직한 국가 공무원의 자세로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킨 회식이었다.)

 일을 마치고 걸어서 십 여 분 저물녘의 거리를 걸었다. 한껏 들뜬 젊은이들의 대화에 적당히 끼려고 좀 기웃대면서.


 회식장소에 자리를 잡았다. 은신술 실패의 예.

 나는 오른쪽으로 한 자리 더 이동했어야 했다. 내 오른쪽에 앉은 94년생 남자 신입에게 이 무슨 몹쓸 짓을 한 게요! 나는 그에게 자리를 바꾸도록 권유해 그가 또래들과 가까이 앉도록 했어야 했거늘.

 나는 대화의 중심에는 올라타지 않도록 변방에서 적당히 웃고 말을 걸고 답을 하고 시간을 보내다 9시쯤 먼저 일어섰다. 그쯤이면 나쁘지는 않았겠지 위로를 하면서.


 다음날은 과장님이 신입들을 인솔해 방문할 곳이 있다셔서 또 다 같이 거리를 걸었다. 지난날 회식 때 거리를 걸으며 느꼈던 소심함이 또 온몸을 감싼다. 되게도 모여 다니네, 그런 생각도 좀 했다. 예정보다 일정이 이르게 끝나 과장님이 커피나 한 잔 하자셔서 가까운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은신술 성공의 예.

 나는 될 수 있으면 옆자리 신입에 가려 내 존재가 보이지 않도록 몸을 접었다. 힘든 점이 없느냐, 궁금한 점이 없느냐는 대화가 오가는 동안 절대 말하지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하아. 나는 그만 고개를 왼쪽으로 디밀며 쓰잘데 없는 질문 하나를 던지고 말았다.

 직전 오가던 주제가 B팀 팀장님에 대한 이야기 같아서였다. 개그를 시전 하는 A팀 팀장님과 달리 내가 속한 B팀 팀장님은 주로 혼자 오가는, 말이 없는 분이다. 즉 비주류인 게다.

 점심 먹으러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점심 드셨어요?

 팀장님은 내가 점심을 먹으러 나갈 때도 먹고 돌아왔을 때도 대부분 자리에 계셨는데 나는 그게 조금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다.

 과장님, 저희 팀장님은 누구랑 점심 식사하세요?

 

 지난주 내가 절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리고 말았어. 배려의 다른 이름은 무심임을 깨달았으면서도.

 내가 혼자 밥 먹을 때 땡땡 씨는 왜 혼자 밥 먹어, 누구랑 밥 먹지? 굳이 아는 척 않길 바라면서 정작 나는, 팀장님이 혼자 식사하시는 게 신경이 쓰였던 게다. 어쩌면 B팀 팀장님이 겉돌고 있는 모습이 조금 나 같아 보였는지도 모른다. B팀 팀장님은 혼자 식사를 자주 하시는 것 같다는 과장님의 답을 듣고 커피 타임이 끝나 돌아오는 길, 또 한 뼘이나 키가 줄었다. 정작 B팀 팀장님은 혼자 밥 먹는 걸 가장 편해할지도 모르건만 내가 뭘 안다고.

 

 이래요, 사람이.

 그나마 내 마음과 말을 통해 알게 된 좋은 점 하나. 과장님과 A팀 팀장님이 던지는 나이 개그나 아들 관련 질문도 별 뜻 없구나, 하는 거. 그들도 조직에서 겉돌고 있을 내가 그냥 안돼 보였던 게다. 사람들이랑은 잘 어울리고 있나, 나이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 어색하지는 않나.

 

 아직은 20대 동기들과 떼로 몰려다니며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 좀 불편하다. 조금 먼 곳으로 가야 해서 함께 걸어야 하는 길은 더 그렇고.

 하나 이거는 이 나이에 어느 조직을 가도 겪어야 할 일임을 안다. 가끔 이 불편함이 순리대로 살아오지 못한 지난날에 대한 벌같이 느껴져 슬플 때도 있는데, 나 좋을 대로 젊은 날 보내고도 갖게 된 이 기회에 감사함이 더 크다.


 나이를 먹을 때 손도 발고 얼굴도 쪼글쪼글 주름이 지는 대신 마음이 댑따 넓어지면 좋겠다. 그래서 세상을 꼬고 꼬아 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죄다 담을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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