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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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국제 영화제(이하 부산)에 다녀왔다. 항상 전주 국제 영화제(이하 전주)만 다녀왔던 나에게 부국제는 생경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주 같은 경우 아기자기하다. 영화하는 사람들이 전주의 그 귀여운 골목을 잠깐 빌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부산은 다르다. 부산은 왠지 부산에서, 아니 더 생각하면 나라에서 작정한 느낌이 든다. 높고 반짝반짝 빛나는 회색의 세련된 빌딩들이 그런 느낌을 주고, 백화점 안에 있는 영화관을 주로 이용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준다.
1층에서 각종 화장품 또는 향수 향기를 맡고서, 까르띠에를 지나, 롤렉스를 지나, 무슨 뜻으로 지었는지 모를 ‘컨템퍼러리’ 층을 지나, 어린아이와 함께 나온 가족들, 신혼부부들을 지난다. 정말이지 부산에서 혹은 나라에서 혹은 신세계나 롯데에서 작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전주는 보통 건물이 영화 관람의 목적만 있는 건물이어서 들어가서 에스컬레이터 한 개만 올라가면 영화관 층이어서, 사실 영화를 보지 않을 사람이 그 건물에 들어올 확률은 상당히 낮다.
물론 부산의 모든 영화를 그런 백화점에서만 봐야 했던 건 아니다. 야외극장도 있었고, 원래 목적이 뮤지컬 공연장이었을 것 같은 2층, 3층짜리 좌석까지 놓여있으며 곡선 형태로 이루어진 영화관도 있었다. 그러니 야외에 천막 쳐놓고 플라스틱 의자 많이 깔아놓은 전주랑은 달라도 한참 달랐다. 그렇다고 그게 전주가 부산에 비교도 안 되는 영화제라는 뜻은 아니다. 솔직히 어떤 순간엔 전주가 그립기도 했으니까. 내가 정치인도 아니고, 부산에 땅 보러 간 것도 아니고, 영화 보러 간 거 아닌가. 그럼 목적적인 마음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간 건데, 그 속에서 많은 빌딩에 예상하지 못했던 백화점 속 영화관을 만나니 사실 어느 정도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한 번은 웃겼던 날이 있었다. 첫 번째 영화가 끝나고 밥을 먹고 두 번째 영화를 보러 가려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너무 타이트했다. 엘리베이터도 층층이 서서 겨우겨우 타고 올라가는데, 또 한 번 섰다. 어떤 여자 두 분과 남자 외국인 한 분이었는데 딱 봐도 영화제에 오신 분들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분들도 우리처럼 상영 시간이 임박했는지 영화관 층에 내려서 우리랑 같이 불나게 뛰었다. 뛰는 우리들을 보며 지나가던 아주머니라 ‘사람들 다 뛰어다닌다’고 놀라듯 말했다. 애인과 나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고, 영화제 기간 동안 잊을 수 없는 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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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애인이 고른 영화들이 우연하게 그랬는진 몰라도 우리가 고른 12개의 영화 중 두 개 정도를 제외하면 모두 이야기 속에 죽음이 있었다. 철도의 죽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새의 죽음, 노인의 죽음, 땅의 죽음, 가족의 죽음 등. 팬데믹의 영향이 확연히 보이는 맥락이었다. 그리고 그 죽음엔 늘 정부의 시스템이 나오는데 예상했듯이 무능력하다. 그래서 결국 도움을 받지 못하고, 그들 안에서 개인적으로 문제가 해결된다. 아니 해결이라기보다, 뭐랄까 받아들인다고 하는 게 맞을 것 같다. 이것 또한 팬데믹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정부의 시스템보다는, 개개인이 나아갈 방향을 찾는 것.
그리고 또 다른 같은 지점은 영화에서도 누군가의 죽음 후에 남겨진 사람들에게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결국 죽음이란 건 남겨진 사람들에게도 찾아올 일이라는 것. 누구도 죽음을 벗어날 수 없고, 무언가를 잘못해서 죽은 게 아니며, 또한 무언가를 잘해서 살아있는 게 아니라는 것.
어떤 영화는 엉뚱하게, 어떤 영화는 유쾌하게, 어떤 영화는 서늘하게, 어떤 영화는 처연하게 죽음을 그리고 있다. 허나 이야기 모두 결과적으로 같은 지점이 있다면 사랑을 통해 이야기가 풀어진다는 점. 인물들은 사랑을 통해 희망을 갖고, 힘을 낸다. 요즘엔 소위 말해 ‘너는 너, 나는 나’ 같은 시니컬한 분위기가 되려 미덕인 것 같긴 하지만, 난 사람을 살게 만드는 건 지겹고 질리지만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돌아오는 길엔 이상하게 마냥 죽고 싶었던 때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그때의 마음에 빠져들어 슬펐다기보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죽을 텐데 왜 미리 죽고 싶었을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건 아마 더 이상 삶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상처받기 싫은 마음은 죽음까지도 생각하게 하는구나. 그만큼 인간은 연약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많은 것이 변했고, 하는 이야기들의 톤도, 듣는 애티튜드도 예전 같진 않지만 유일하게 같은 맥락이 있다면, 언젠가 끝을 상징하는 죽음이 우리에게 찾아와도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사랑하는 일인 것 같다. 영화는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고, 다르게 풀어가지만 결국 그런 말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쁜 것보다 좋은 것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나쁜 게 뭔진 모르겠으나, 좋은 것에는 틀림없이 사랑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