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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Oct 05. 2024

설날에는 언니집에 간다

-공원고양이들 37 / 리리 2-2

 집에 온지 채 이틀이 지나지 않아 리리는 투명한 창으로 거실을 바라보며 시위를 했다. 베란다에서 안으로 들여보내달라며 소리를 질러댔다. 작은 고양이가 목소리도 우렁찼다. 어차피 병원에 70일이나 있었기에 감염의 우려는 없었다. 

하지만 거실에 불독처럼 버티고 선, 루나! 

리리를 바라보는 루나의 눈은 날카로웠다. 10시10분 모양이었다. 

 ‘루나한테 맞을 텐데?’ 

루나보다 더 큰 고양이들까지도, 모두 쫓겨 방에 가둬진지 2년이 넘어선 터였다.

 애기인데 맞으면 안 되잖아. 하지만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니. 설마 애기를 죽도록 때리지는 않을 거야. 고양이들이 애기는 좀 봐주잖아? 루나가 그래도 완전히 나쁜 애는 아니니까.

 난 고민 끝에 폴딩 도어를 열었다. 리리는 문에 붙어 있다가 거실로 들어왔다. 예상대로 루나가 리리를 덮치려고 다가갔다. 찰나의 순간 서로 눈싸움을 했던가? 안했던가? 둘은 서로 안고 한 바퀴 굴렀다. 누구 힘이 더 센지 겨루는 모양, 하지만 루나가 두 배 더 크지 않나. 애기가 다치면 안 되는데…. 

 다음 순간, 나는 눈을 의심했다. 루나가 도망치는 것이 아닌가? 작은 리리가 기세 등등 루나를 뒤쫓았다. 게임 끝이었다. 

 인간세계도 그럴까? 고양이들은 처음 기선제압이 가장 중요하다. 첫 싸움이 평생의 싸움을 지배한다. 힘이 세든 세지 않든 그것은 나중문제다. 솔직히 힘은 루나가 훨씬 셀 텐데도 리리의 파죽지세 공격에 루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그러고도 리리가 계속 공격해서 결국 루나를 안방에 가두었다. 

루이, 라온, 새온 어르신들은 함께 슬이방에 넣고 아리, 다온은 별이방에 넣고 결국 거실은 루나 대신 새로운 다크호스 리리가 차지해버렸다. 

 애기여서 그랬을까? 리리는 전혀 상대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냥 덤벼들었다. 그러나 다른 애기들은 그러지 않았는데. 처음 왔을 때 아리는 다른 고양이들을 엄청 무서워했잖아. 

 “루나, 사나운 게 아니었어?”

가족들 모두 놀랐다. 루나는 우리 집에 있던 다섯 마리의 고양이를 다 제압했었다. 그런데 4개월짜리 애기에게 쫓겨 방에 가둬지다니!


 이제 우리 집은 이중으로 가둬진 구조가 되었다. 루나에게서도 가둬지고, 리리에게서도 가둬지는 이중구조. 이렇게 되면 가두어진 고양이들(루이, 라온, 새온, 아리, 다온, 루나까지)은  방에서 나오기 힘들어진다. 리리도 피하고, 루나도 피해야 해서 다른 아이들이 나올 공간이 없다. 그동안은 합사가 되지 않았어도 루나를 가두고 거실에 교대로 나왔었다. 나름 그래도 교대로 자유로운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루나가 맞다니! 리리가 맞았다면 그나마 걱정이 덜 했을 터였다. 시간이 흘러 서로 익숙해져간다면 나아질 거라 기대했을 테니까. 하지만 루나와 다른 아이들이 맞는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렇게 된다면 상황은 더욱 더 나빠질 뿐 좋아질 수는 없다. 커가면서 수컷인 리리는 점점 더 힘이 세질 테니까. 

 고민 끝에 나는 언니를 떠올렸다. 언니는 동물을 키우지는 않지만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있어보였다.


 「나 이혼했어. 이제 가족모임에 불러줘.」 

 나는 1남 4녀 중 둘째였다. 우리 집은 아들을 낳기 위해 아이들을 낳았던 집이라 위에 4명이 여자, 막내가 남자였다. 어려운 가정형편이었기에 아빠는 남자만 교육시키고 싶어 했다. 그나마 나는 대학생 때부터 학비를 벌었지만 여섯 살 위, 맏이였던 언니는 중학교 때부터 학비를 벌어야했다. 

 슈퍼우먼이란 말은 사치였던가. 언니는 대학뿐만 아니라 대학원, 문학박사학위까지 취득하고 대학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사법고시 지망생이었던 남편 때문에 퍽이나 고생했었지. 형부는 20년이 넘는 결혼생활동안 돈을 벌기는커녕, 사업한다고 돈 빌려 망하고, 축구 코치한다고 하다가 그만두고 등등, 그 와중에 술도 엄청 마셔서 사고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도 언니는 2명의 자녀를 키워내면서 본인의 학업, 시인 경력(*언니는 20대 후반에 ‘시’로 등단했다) 또한 이뤄냈다. 그러나 형부가 친정, 처제들에게도 돈을 빌리면서 자연히 언니와의 관계도 멀어졌다. 연락을 거의 끊고 지낸지 15년쯤 되었던가.

 5년 전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에 언니가 나타났다. 그동안 언니의 부재 때문에 나는 장녀 아닌 장녀가 되어 있었다. 물론 계속 장녀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언니가 있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 합격했는데 어떡해.….”

 교대를 떨어지고 후기대에 붙었다. 부모님은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면 알바를 하면서 다닐 수 있다 하더라도 첫 학기 등록금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대학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자포자기상태였다.

 등록 마지막 날, 언니는 하얀 봉투를 내게 내밀었다. 언니의 5달치의 월급을 가불한 봉투였다. 나의 4년의 대학생활은 나에게도 언니에게도 길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바로 공무원이 되었고 등록금은 갚았다. 하지만 결혼해서 두 자녀와 남편까지 부양하는 언니는 계속 힘들었지. 이후, 나도 결혼하고 애기 둘을 키우면서 생활이 빠듯해서 언니를 보살피지 못했다. 


 「리리 데리고 와. 내가 잘 키워줄게. 정운이도 괜찮대.」

어릴 때 언니는 언제나 나의 힘이었다. 

 「진짜 고마워. 언니. 우리 설날에 보자. 우리 별이, 슬이도 리리보러 설날에 같이 간대.」

 「그래. 설날에 와. 내가 떡국 끓여줄게.」 

 하얀 머리털 같은 구름이 파란 하늘에 떠있다. 아빠가 돌아가신지 6개월이 지났구나. 이제 나는 엄마도 아빠도 없다. 하지만 언니는 있다. 

 힘들 때 누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창밖으로 『점 잘 보는 집』 광고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거짓 위로는 한낱 술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 건 필요 없다. 진정한 위로가 나에게 필요할 뿐.


 “루나. 너 말썽피우면 언니 집에 데리고 간다? 마루한테 또 맞을래? 착하게 지내. 알겠지?”

리리가 언니 집에 간지 한 달이 넘었다. 이름도 마루로 개명했다. 외동 냥이 되어 잘 지낸다지? 덕분에 루나도 왕 자리를 되찾았다. 거실의 햇볕을 독차지한 루나, 따뜻하게 데워진 루나의 등을 만진다. 

루나는 골골 송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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