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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하 Jun 06. 2024

동물들의 위대한 법정

-지구공동생활자를 위한 짧은 우화 / 장 뤽 포르케 지음

무당벌레가 마이크에 앉는다  지구 위에는 사람 한 명당 곤충이 2억 마리 꼴로 살고 있고, 이세상엔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명체가 있으며, 과학자들이 아직도 모르는 생명체가 넘쳐 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당신들은 1,000만가지 종 가운데 한 종류일뿐입니다. 물론 우리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습니다. 인간들은 십자말풀이도, 체조도, 라이터도 발명해냈어요. DNA도 발견하고 화성에 로봇도 보냈습니다. ≪햄릿≫과 ≪전쟁의 기술≫도 썼고요. 신도 믿고 있죠. 여러 신을 섬깁니다. 신의 이름을 걸고 서로 죽일 듯이 싸우기도 하죠. 당신들은 놀라운 일들을 많이 해냅니다. 우리가 그걸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박쥐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다  그렇지만 인간은 이 세계에 완전히 속해 있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요. 바로 이 사실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죠. 당신들은 우리와 똑같은 공기로 숨을 쉽니다. 공기를 오염시키면, 그걸 들이마시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당신들도 똑같이 들이마십니다. 기후를 엉망으로 만들면,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하는 건 우리만이 아닙니다. 당신들도 똑같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살충제를 뿌려서 곤충을 말살하면, 곤충들만 죽는게 아닙니다. 당신들도 똑같이 죽습니다. 우리에게 저지른 해로운 짓은 결국 모두 당신들에게 돌아갑니다.

붉은 부리 갈매기가 웃음을 터뜨린다  인간은 자연과 동떨어져 고고하게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유일무이한 개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당신들 하나하나가 세상의 일부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균이 들끓죠. - 최대 3만 가지나 되는 세균이 당신들한테 있다고요! 아무리 못해도 인간세포만큼 많은 비인간 세포들이 인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미생물들이 이루는 어마어마한 공동체는 인간의 생존, 면역력, 소화와 배설 메커니즘과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뭐 그렇습니다. 이런 게 겸손한 기분을 안겨 주죠.

달팽이가 뿔을 휘젓는다  인간은 확실히 우리보다 똑똑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보다 훨씬 더 제정신이 아니죠. 자기만 이성을 지니고 있다며 한결 같이 주장해요. 아주 몰상식한 행동을 계속하면서요. 그렇게 당신들 세상도, 우리들 세상도 엉망으로 만들죠….

천장에서 거미가 내려온다  당신들이 우리를 보호하건 말건, 우리는 살아갈 겁니다. 당신들이 우리 목숨을 구해주겠다고 결정하건 말건, 우리는 살아갈 겁니다. 인간이 살아남건 멸종하건, 우리는 살아갈 겁니다. 모두가 살아남지는 않겠죠. 그렇지만 많이들 살아남을 겁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동물들이 당신들에게 쓸모가 있거나 호감을 살 만한 지와는 별 상관이 없습니다. 아무튼 살아갈 겁니다. 당신들이 역겨워하는 곤충들도, 징그러운 해양 생물들도, 시궁창에 사는 설치류도, 공공 쓰레기장에 사는 갈매기도, 인간이 먹을 수 없는 파충류까지도요. 당신들 눈에는 혐오스러운 이 모든 동물들이 살아갈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도록 허락해 달라고 당신들에게 요청한 적 없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요청할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한테는 당신들 허락이 필요하지 않아요.  -중략

---도대체 무슨 권리로 보호종, 유해종을 따지는 걸까요? 더군다나 단지 똥을 싼다는 이류로, 너무 많다는 이유, 아니면 너무 예쁘다는 이유로 사냥하고 죽이고 하는 걸까요? 그런 이유라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죽어야하는 거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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