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스쿼시 (스쿼시 3-3)
하나! – 끝까지 공을 보고
둘! - 정확한 자세를 잡고
셋! - 힘껏 친다
하나, 둘, 셋, 생각하면서 공을 친다. 까만 공은 벽에 탕! 맞는다. 코치 쌤은 “자세 정확하게!”, “굿샷”, “더 세게!” “이제 10번 더”, “마지막 한 번 더”를 외친다. 더 못 뛸 것 같지만 공만 보면 몸이 움직인다. 숨은 가빠지고, 한계에 다다른다. 땀이 샤워하듯 흐르지만, 다시 라켓을 들고 스쿼시 공을 바라본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5년 만이던가. 나는 다시 스쿼시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 번, 삼 개월째다. 2020년, 코로나로 문 닫았던 우리 동네 시립 스쿼시 센터는 23년 코로나가 끝났어도 열지 않았다.
다른 데를 찾아갈 수도 있었다. 22년 초, 전에 같이 스쿼시 하던 K가 연락해 와서 **동에 있는 새로 연 스쿼시 센터에 등록한 적도 있었다. 그곳에는 우리 동네 스쿼시 장을 다니던 사람들도 몇 사람 있었다. 열심히 하고 싶었지만, 나는 전처럼 칠 수가 없었다. 코로나 바로 전에 연골파열로 인한 무릎 수술을 했었고 거의 3년이 지났어도 회복이 되지 않았다.
6개월 동안 한 달에 한 번 갔던가. 더욱이 K가 다니는 **스쿼시 센터는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도 20분 넘게 걸어야 해서 교통편이 불편했다. 나는 전에 다니던 시립 스쿼시장이 열면 등록하겠다고 운동을 계속 미뤘다. 또다시 1년이 넘게 시간이 흘렀다. K와 그 친구들은 잘 치고 있겠지.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러나 괜찮은 것 같다가도, 많이 걷거나 하면 무릎이 아팠다.
시간이 흘러가도 운동하지 않을 핑계는 계속 생겨났다. 근무 후에도 사이버대학 강의 듣기, 리포트 쓰기에 바빴고, 4년 전 시작한 직장 근처 공원 캣맘 활동도 시간이 꽤 걸렸다. 모두 근무시간 이후에 해야 하기에 밤 10시 이전에 집에 가기는 힘들었다.
사실 나는 운동은 밥 먹는 것처럼 필수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은(무릎이 안 좋은 사람) 재활 운동을 해야 한다고 항상 말했다. 애초에 연골 파열된 이유도 스쿼시를 너무 무리하게 해서였지. 어쩌면 필라테스가 내게 맞는 운동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정적인 운동은 싫었다. 만약 운동해야 한다면 무조건 스쿼시여야 했다.
내 생에 처음 해 본 운동이라서 일까? 휴직했던 기간 동안 푹 빠져서 했기 때문에, 좋은 기억 속에 있어서 일까? 아니면 격렬하고 스피디한 스쿼시는 운동할 때마다 한계를 만나게 되고 그 한계를 극복하는 성취감이 매력적인 걸까? 왠지 몰라도 스쿼시는 내게 인생운동이었다. 문제는 회복되지 않은 내 무릎, 이것은 가장 격렬한 운동인 스쿼시에 있어서는 치명적인 문제였다.
올해 사이버대학도 4학년이 되어 바빴다. 정신없었지만 그래도 스쿼시는 계속 생각났다. 운동이라는 것을 시간 날 때 한다면 은퇴 후에 해야 할 걸? 하지만 그땐 다리가 아파서 못하겠지. 스쿼시 장에 사실 4, 50대도 거의 없지 않은가. 지금도 적지 않은 나이다. 시립 스쿼시 장을 검색해 보니 폐업했다는 공지가 떴다. 이제 기다릴 핑계도 없어졌다. 근처 세 정거장쯤에 스쿼시장이 있다는 정보를 몇 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여름방학이 된 7월 초, 퇴근 후 그곳을 찾아갔다. 3개월 치를 끊었다. 도심에 있는 스쿼시 장이었지만 그래도 그곳은 세미 코트(*정식 코트가 아닌 지붕이나 면적이 약간 작은 코트) 가 3개나 있어서 강습이 끝나고도 연습하거나 게임을 더 할 수 있었다. 무릎이 다시 아플까 봐 조심스러웠어도 라켓을 들면 나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이어서 오히려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5년이나 쉬었으니, 처음부터 하는 게 당연하지. 모든 게 새로웠다. 그래도 무언가 돌아오는 감각 같은 게 느껴졌다.
스쿼시 할 때마다 내가 너무 심각했던가? 어느 날 코치 선생님이 물었다.
“무엇이 고민이세요? 스쿼시에서?”
“… 무언가 타점이 정확히 안 맞는 것 같아요. 포핸드, 백핸드 둘 다.”
“잘하고 있어요. 잘 맞고 있어요.”
코치 선생님은 조금만 고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라켓을 똑바로 들고, 자세를 정확히 잡고, 항상 하나둘 셋을 마음속으로 외치라고.
벌써 삼 개월이 다 되어간다. 무리하지 않아서 그런지 다행히 무릎은 괜찮았다. 5년이나 지났으니, 그리고 그동안 매일 1만 5천 보는 걸었으니까 조금 다리 근육이 생겼을까?
보통 화, 목에, 스쿼시에 간다. 7시 반 정도 출발해서 8시에 강습 30분, 게임 30분, 연습 30분, 보통 한 시간 반 정도 운동하면 9시 30분이 넘는다. 그 후 30분 샤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10시가 훌쩍 넘어선다.
토요일에도 가려 했다가 나는 마음을 접는다. 무리하면 안 돼. 무리한다면 다시는 스쿼시를 하지 못할 수도 있어. 어차피 스쿼시는 아마추어야. 프로가 될 수 없지. 그러니까 목숨 걸지 말자. 나는 퇴근 후 자꾸 스쿼시 장을 향하려는 나를 다독인다.
하지만 내 생에 총소리 한 번 만큼은 내보고 싶다. 라켓으로 공을 쳐서 벽에 세게, 맞을 때 나는 탕! 하는 총소리를 나도 낼 수 있다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내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난 포기할 수 없으니까.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라 해도 스쿼시를 너무 사랑하니까.
스쿼시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 마음이 산뜻하다. 건널목을 건너려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너편에 어디서 본 듯한 사람이 서있다. 빨간색 등산 모자에 같은 색 등산점퍼와 노란색 반바지, 배낭, 등산 스틱까지 온몸으로 ‘나는 등산 간다’라고 광고하는 옷차림, 직원 Y다.
내가 연골파열로 수술하고 스쿼시를 하지 못할 때 Y도 연골 마모로 인해 그 좋아하던 등산을 못 갔었다. 우리는 힘들어하는 서로를 위로했었지.
몇 달 전, 유난히 얼굴이 환해진 그는 다시 등산하러 다니게 되었다고, 이제 다리가 괜찮다고 말했었다. 그때 나도 다시 스쿼시를 해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등산 가는 거예요? 너무 좋겠네.”
“아, 네, 등산가요. 야간산행. 하하. 스쿼시 다시 해요?”
“네! 다시 해요. 재밌어요. 하하. 아, 신호등 바뀌어요. 잘 다녀와요!”
햇볕에 탄 얼굴이, 흡수했던 그동안의 햇빛을 발산하는 것처럼 Y는 환했다. 그래!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지. Y와 나는 활짝 웃으며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다.